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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서양근현대사
· ISBN : 9788990106865
· 쪽수 : 644쪽
· 출판일 : 2009-05-19
책 소개
목차
서문
1. 버려진 성전 : 민주주의의 부상과 몰락
헌법 만들기
유럽의 내전
부르주아의 의심
의회주의 비판
민주주의의 위기
우파의 모습들
법과 국가사회주의 국가
2. 제국, 민족국가, 소수민족
대제국의 해체
자유주의의 변형들
이상주의자들과 현실주의자들
자유주의적 신질서에 대한 역행
파시스트 제국
3. 건강한 육체, 병든 육체
전쟁과 육체의 파괴
가장이 된 국가
양과 질
4. 자본주의의 위기
공산주의가 이룩한 것
국가의 복원
파시즘적 자본주의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개혁하기
5. 히틀러의 신질서, 1938~45년
히틀러의 잃어버린 기회
역사적 시대를 산다는 것
유럽의 조직화
총력전
인종적 실체로서의 유럽
인종 전쟁⑴ : 폴란드, 1939~41년
인종 전쟁⑵ : 절멸 전쟁, 1941~45년
6. 황금기를 위한 청사진
민주주의의 부활
국가에 반(反)하는 개인
민족국가와 국제질서
새로운 합의 : 한계와 모순
유토피아와 현실
7. 가혹한 평화, 1943~49년
난민의 발생과 사회적 위기, 1944~48년
가족과 도덕
점령의 정치, 1943~45년
새로운 출발
독일의 분단
유럽의 냉전
8. 인민민주주의의 건설
정치적 통제의 수립
스탈린주의를 향하여
공산주의를 개혁하기?
새로운 사회
제국의 종말?
9. 민주주의의 변화 : 서유럽, 1950~75년
민주주의의 부활
성장의 기적
복지국가
개인주의 불러내기
유럽의 미국화?
성장하는 사회에서의 저항
이민
10. 위기에 처한 사회 협약
인플레이션 위기
대처주의자들의 실험
견고한 국가
좌파의 쇠퇴?
진보의 후퇴
개인주의의 승리?
세계화와 민족국가의 위기
11. 상어와 돌고래 : 공산주의의 붕괴
세계적 경제 위기와 동유럽
공산당의 쇠락
소련 정책의 변화
1989년의 위기
독일의 통일
유고슬라비아 전쟁
에필로그 : 어떤 유럽을 만들 것인가
부록
옮긴이 후기
미주
좀 더 읽을 만한 책
인명사전
찾아보기
리뷰
책속에서
살로니카에서는 부두 노동자들도 6~7개 언어를 할 줄 알았다
극작가 폰 호르바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 국적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크로아티아의 피우메에서 태어났고, 베오그라드·부다페스트·프레스부르크·빈·뮌헨에서 자랐다. 지금은 헝가리 여권을 가지고 있지만, 내겐 조국이 없다. 나는 헝가리인·크로아티아인·독일인·체코슬로바키아인으로 살아온 전형적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사람이다. 현재 국적은 헝가리지만, 모국어는 독일어다.”
19세기에서 20세로 넘어가던 당시에는 이런 사람들이 매우 흔했다. 오스만제국의 살로니카에서는 부두 노동자들조차도 보통 6~7개 언어를 사용할 줄 알았으며, 7만 명의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그리스인?아르메니아인·투르크인·알바니아인·불가리아인까지 섞여 살았다. 이런 다민족적 분위기는 동유럽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으며, 도시와 작은 마을에는 다양한 종교와 인종이 뒤섞인 채 살아갔다 (74쪽).
게르만 인종의 이상과 현실
“이웃나라 독일에서는 자신들이 피부가 희고, 머리가 길쭉하며, 키가 크고 남자답게 생긴 게르만 민족의 전형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런 견해를 옹호하는 저명한 인물들로 전형적 게르만인의 외모를 합성해 보자. 히틀러처럼 금발이며, 로젠베르크(Rosenberg)처럼 두상이 길고, 괴벨스(Goebbels)처럼 키가 크며, 괴링(Goring)처럼 날씬하고, 슈트라이허(Streicher)처럼 남자다운 인물이다. 이런 사람이 과연 그들이 말하는 독일의 이상과 얼마나 닮았을까?”(150~151쪽). → 실제로는, 히틀러의 머리칼 색은 흑갈색이며, 괴벨스는 키가 작달막하며, 괴링은 뚱뚱했다. 주요 나치 지도자들의 외모가 그들이 이상화한 게르만족이나 아리안족의 표준적 용모와 상반된다는 사실을 말한다.
유대인을 죽인 것은 무죄, 명예롭고 신사적이지 않은 방법이 문제
1943년 5월 뮌헨의 나치 친위대?경찰최고법원에서 진행된 친위대 요원 막스 토이프너Max Taubner―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독단적으로 유대인들을 사살한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다―에 대한 재판은, 당시 제3제국의 도덕 기준이 어땠는지를 잘 보여 준다. 판결문은, 유대인을 죽인 일 자체는 범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유대인들은 멸종되어야 하며, 유대인의 죽음은 조금도 손실이 아니다.” 재판정의 시각에서 이 자의 범죄는 살인이 아니라 잔인한 방법으로 죽인 사실과 부하들을 야만인처럼 행동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즉 비록 그의 행동이 ‘가학적 이유’가 아니라 ‘유대인 혐오’라는 정당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고도의 잔인한 행동은 그의 ‘열등한’ 특질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판결문은 “피고의 행위는 결코 명예롭고 신사적인 독일인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243쪽).
아우슈비츠 포로의 옷가지를 독일 정착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1942년, 아우슈비츠 피수감자의 옷가지와 개인 소지품을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독일 정착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누어 주는 계획이 결정되었다. 이 계획은 나중에 더욱 확대되어, 열차에 가득 실린 물자가 동유럽으로 이주한 독일인 개척자들에게 보내졌다. 집단 학살과 재정착은 따로 분리할 수 없을 만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히틀러의 전쟁이 전 유럽을 인종적으로 완전히 재편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250쪽).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유럽 국가들이 유대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치르게 된 대가
유대인 생존자들은 대부분 귀환할 의사가 없거나 그럴 수도 없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살던 집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재산도 사라지고 없었다. 사실, 유대인 난민은 전후에 오히려 증가했으며 약 22만 명의 유대인들이 동유럽에서 서유럽으로 이동했다. …… 그러나 서유럽의 반유대주의로 말미암아 발트인과 동유럽인들과는 달리 유대인 난민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유럽에서 유대인 난민의 숫자는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미국난민법이 유대인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할 때까지 계속 증가했다. 1948년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제1차 중동전쟁]으로 50만 명의 아랍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한 것은, 유럽 국가들이 유대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치르게 된 대가였다. 유럽은 이제 유대인들의 주요 거주 지역이 아니었다. 1945년 이후 두드러지게 강화된 반유대주의는, 비록 학살을 저지른 것은 독일이었지만 그 사회적·경제적·문화적 반향이 전 유럽에 걸쳐 폭넓게 남아 있었음을 보여 준다.
소동구의 붕괴는 타살인가 자살인가? 혁명인가 후퇴인가?
똑같은 질문들이 영국의 인도 지배나,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지배가 종식될 때에도 제기되었다. 1989년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공산주의의 붕괴는 20세기 이후 유럽의 탈식민지화라는 큰 그림의 일부를 형성했다. …… 결국, 현대 세계에서는 군사적 패배가 반드시 제국을 굴복시켰던 것은 아니다. …… 크렘린은 정치적 세련미를 갖추면서도 신속하게 동유럽에서 철수하기로 선택했고, 제국은 불과 하룻밤 사이에 해체되었다. 그것은 자살이었지 타살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