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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현대철학 > 현대철학 일반
· ISBN : 9788990989567
· 쪽수 : 320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장 침묵이라고? 사양할게!
2장 산의 침묵
3장 사막의 신부들
4장 어느 죄수의 이야기
5장 무대 위의 침묵
6장 침묵의 연주
7장 쉿! 조용히 하세요!
8장 내면의 소리
9장 선의 엄격함
10장 인도, 침묵의 유전자
11장 성자와 성녀
12장 정적인 삶을 택하다
13장 내려놓음
14장 침묵의 나눔
15장 총알보다 나은
16장 침묵의 힘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걷다 보니 어느새 거대한 수브레타 알프스의 기슭에 이르렀다. 무너져 내린 바위 조각들이 보이는 산 사면 위로 여름의 환한 구름이 정상에 걸려 있었다. 그제야 침묵이 회복되었고, 뿌리 깊은 위로가 찾아왔다. 지극히 편안하고도 상쾌한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설사 그것이 모차르트의 곡처럼 아름다운 음악일지라도, 그런 곳에서의 침묵이 자아내는 우아함과는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고통스러운 대비가, 산의 침묵에 깊이 감사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통렬히 느껴졌다.
식사는 손님 접대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우선 식탁이 지저분했으며, 어둡고 음침한 구석에 놓여 있었다. 접시나 날붙이 또는 도자기라 이름 붙일 만한 도구들도 전혀 없었다. 음식은 그날그날 여러 단으로 된 철가방에 담겨 방으로 배달되었다. 예를 들어 첫날의 메뉴는 삶은 계란 세 개, 아무 맛도 없는 요구르트 약간, 기가 막힐 정도로 짠 홈메이드 치즈였다. 나는 늘 혼자서, 오로지 모기들만을 벗하여 식사를 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D신부의 대답들이 침묵의 깊은 우물로부터 길어 올려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대답은 인간적인 접촉을 거의 단절하다시피 하고 오로지 스스로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을 창조하고 거두어들이는 신 앞에 발가벗고 선 남자의 음성이었다. 그만큼 그의 대답에는 조금의 가식도 없었으며, 나에게 잘 보이려 하거나 설득하려는 욕망이 단 한 점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