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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언봉사, 목숨을 건 직설의 미학

만언봉사, 목숨을 건 직설의 미학

(우리고전 내면읽기)

이이 (지은이), 강세구 (옮긴이)
꿈이있는세상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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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언봉사, 목숨을 건 직설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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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만언봉사, 목숨을 건 직설의 미학 (우리고전 내면읽기)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우리나라 옛글 > 산문
· ISBN : 9788991309135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07-05-15

책 소개

조선 선조 7년 1월 4일, 선조가 당시 어려운 시국을 타개하기 위해 신하들로부터 의견을 들으려는 교지를 내리자, 율곡 이이가 올린 상소문. 11600여자에 이르는 긴 글로 이루어져 있으며, 시의 적절한 변법을 통해 개혁을 해야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치를 함에 있어 정성을 들여하는 실공을 강조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1장 선조의 구언과 배경
1.선조의 구언
2.구언의 배경

2장 만언봉사, 목숨을 건 직설의 미학
1.재앙이 없는 재앙이야말로 천하에 가장 큰 재앙입니다
2.시의에 맞게 변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3.다스림에는 실공에 힘써야 합니다
4.자신을 수양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합니다
4-1. 임금님의 수양
4-2. 백성을 편안하게 함
5.10년 안에 난리가 일어나니 언로를 열고 왕도정치를 회복하소서

3장 만언봉사의 의의와 율곡 이이
【만언봉사 이후의 변화】
【만언봉사의 의의와 율곡의 개혁사상】
【율곡 이이의 생애】

부록_만언봉사 원문

저자소개

이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 1536년(중종31년) 1세 : 12월 26일 강릉부 북평촌 외가에서 출생함. 부친은 이원수(李元秀), 모친은 신사임당(申師任堂), 본관은 덕수(德水), 字는 숙헌(叔獻), 號는 율곡(栗谷), 시호는 문성(文成) - 1541년(중종36년) 6세 : 강릉에서 한양으로 올라옴. - 1542년(중종37년) 7세 : 「진복창전(陳復昌傳)」 지음. - 1543년(중종38년) 8세 :파주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 「화석정(花石亭)」 시 지음. - 1545년(중종40년) 10세 : 「경포대부(鏡浦臺賦)」 지음. - 1548년(명종3년) 13세 : 진사초시에 장원급제함. - 1551년(명종6년) 16세 : 5월 어머니 신사임당 별세, 「선비행장」을 지음. 파주 두문리에 어머니를 장례하고 3년간 시묘함. - 1554년(명종9년) 19세 : 우계 성혼(1535~1598)과 도의의 교분을 맺음. 3월 어머니 시묘 3년을 마치고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함. - 1555년(명종10년) 20세 : 금강산에서 강릉으로 돌아와 「자경문(自警文)」을 짓고 유학에 전념함. - 1556년(명종11년) 21세 : 봄에 한양으로 돌아와 漢城試에 장원급제함. - 1557년(명종12년) 22세 : 9월 성주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 곡산 노씨와 혼인함. - 1558년(명종13년) 23세 : 봄에 경북 예안 도산(陶山)을 방문하여 퇴계 이황을 만남. 겨울에 別試에서 「천도책(天道策)」으로 장원급제함. - 1561년(명종16년) 26세 : 5월 아버지 이원수 별세. - 1564년(명종19년) 29세 : 7월 생원 진사시에 장원급제함. 8월 明經試에 급제하여 호조좌랑으로 첫 벼슬길에 나아감.(모두 9번 장원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림.) - 1565년(명종20년) 30세 : 봄에 예조좌랑에 전임. 8월 요승(妖僧) 보우(普雨)와 권간(權奸) 윤원형(尹元衡)을 단죄하는 상소를 올림. 11월 사간원 정언에 임명되자 사퇴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불허. - 1566년(명종21년) 31세 : 2월 병조좌랑에, 3월 다시 사간원 정언에 임명됨. 겨울에 이조좌랑에 임명됨. - 1568년(선조원년) 33세 : 2월 사헌부 지평에 임명됨. 가을에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갔다 돌아와 홍문관 부교리 겸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에 임명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함. 11월에 다시 이조좌랑에 임명되었다가 강릉 외조모 이씨의 병환으로 사직하고 강릉으로 내려감. - 1569년(선조2년) 34세 : 6월 교리에 임명됨. 9월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올림. - 1570년(선조3년) 35세 : 4월 교리에 임명됨. 10월 병으로 사직하고 해주로 감. - 1571년(선조4년) 36세 : 1월 이조좌랑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여름에 교리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해주로 감. 6월 청주목사에 임명됨. - 1572년(선조5년) 37세 : 여름에 부응교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파주로 돌아감. 8월에 원접사 종사관, 9월에 사간원 사간, 12월에 홍문관 응교, 홍문관 전한을 제수 받았으나 모두 사퇴함. - 1573년(선조6년) 38세 : 7월 홍문관 직제학에 제수되었으나 3차례 상소를 올린 후 사임하고 8월에 파주로 돌아감. 9월 다시 직제학에 임명되어 사퇴하였으나 허락을 받지 못함. 겨울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 지제교 겸 경연 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으로 임명됨. - 1574년(선조7년) 39세 : 1월 우부승지에 임명되어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지어 올림. 3월 사간원 대사간에 임명됨. 10월 황해도 관찰사에 임명됨. - 1575년(선조8년) 40세 : 8월 홍문관 부제학으로 임명됨. 9월 『성학집요』를 지어 올림. - 1576년(선조9년) 41세 : 우부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전라감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병으로 나아가지 않음. 10월 해주 석담에 청계당을 지음. - 1577년(선조10년) 42세 : 1월 해주 석담에서 「동거계사」를 지음. 5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12월 『격몽요결』 지음. - 1578년(선조11년) 43세 : 해주 석담에 은병정사를 지음. 3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6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 1579년(선조12년) 44세 : 5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 1580년(선조13년) 45세 : 5월 「기자실기」 지음. 9월 홍문관 부제학에 임명. 12월 대사간에 임명. 1581년(선조14년) 46세 6월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으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다시 예문관 제학으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8월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됨. 9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10월 호조판서에 제수됨. 11월 『경연일기』 완성 - 1582년(선조15년) 47세 : 1월 이조판서에 제수됨. 7월 선조의 명으로 「인심도심설」, 「김시습전」, 「학교모범」, 「사목(事目)」을 지어 올림. 8월 형조판서에 임명됨. 9월 의정부 우참찬에 임명되고 숭정대부로 특진. 10월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원접사가 되어 「극기복례설」을 지음. 12월 병조판서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 1583년(선조16년) 48세 : 2월 「시무육조」 지어 올림. 3월 경연에서 십만양병을 건의함. 6월 동인의 탄핵을 받고 파주로 돌아갔다가 7월에 석담으로 돌아감. 9월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 1584년(선조17년) 49세 : 1월 「육조방략」을 최후로 지음. 1월 16일 한양 대사동에서 별세함. 3월 20일 파주 자운산에 안장됨. - 1624년(인조2년) : 문성(文成)의 시호를 받음. - 1681년(숙종7년) : 문묘의 종사를 허락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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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구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학력] 대전사범학교,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연세대학교교육대학원(역사교육전공), 홍익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저서 및 번역서] <東史綱目硏究>(民族文化社, 1994), <순암 안정복의 학문과 사상 연구>(혜안, 1996), <성호학통 연구>(혜안, 1999), <염소가 밭을 갈고 쌀을 심으면 싹이 난다>(혜안, 2003), <廣州와 實學>(편저, 광주문화원, 2005), <만언봉사, 목숨을 건 미학>(번역서, 꿈이있는세상, 2007), <忠烈公 沙月亭 姜壽男>(진주강씨충렬공파종회, 2010), <순암 안정복의 동사강목 연구>(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2), <순암 안정복의 사상과 학문의 세계>(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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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다스림에는 시기를 아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일을 함에는 실제에 힘쓰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정치를 하는데 시기가 적절한가를 알지 못하거나 일을 함에 있어 정성을 들여 하는 것에 힘쓰지 아니하면, 비록 어진 임금과 현명한 신하가 서로 만나더라도 다스림의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니다.-p28 중에서

소신은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니 백번 죽어도 보답하기 어렵습니다. 진실로 나라에 이익이 된다면 끓는 가마솥에 던져지고 도끼로 목을 잘리는 혹독한 형벌을 받는다 하더라도 신은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 전하께서는 언로를 활짝 여시고 의견을 거리낌이 없이 받아들이려고 손수 교지를 내리시어 이르심이 간곡하신데, 신이 만약 아뢰지 않는다면 이는 실로 전하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 되겠기에, 충정으로 솟구친 바를 모두 말씀드렸습니다.-p14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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