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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일기

경연일기

(조선의 미래를 고민한 실천적 지성의 기록)

이이 (지은이), 유성선, 유정은 (옮긴이)
arte(아르테)
3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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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일기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경연일기 (조선의 미래를 고민한 실천적 지성의 기록)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중기(임진왜란~경종)
· ISBN : 9791171172573
· 쪽수 : 632쪽
· 출판일 : 2023-12-18

책 소개

아르테의 새로운 고전 시리즈, 〈클래식 아고라〉의 네 번째 편인 『경연일기』는 조선의 천재 유학자이자 경세가였던 율곡 이이의 저작으로, 1565년(명종 20년)부터 1581년(선조 14년)까지의 경연 내용을 담고 있다.
유교적 이상사회를 꿈꾼 대학자
현실에 발을 붙인 개혁에 몰두하다


아르테의 새로운 고전 시리즈, 〈클래식 아고라〉의 네 번째 편인 『경연일기』는 조선의 천재 유학자이자 경세가였던 율곡 이이의 저작으로, 1565년(명종 20년)부터 1581년(선조 14년)까지의 경연 내용을 담고 있다. 경연은 국왕이 학문을 닦기 위해 신하 중에 학식과 덕망이 높은 이를 불러서 경전이나 역사서 등을 강론하던 일을 의미한다. 강론이 끝난 뒤에는 국왕과 신하가 함께 고금의 도의를 논하고, 정치와 국정 현안 등을 토론하기도 했다.

율곡은 흔히 이기일원론을 정립한 유학의 거두로 알려져 있지만, 이론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에 기반해 개혁을 주장한 정치가로도 크게 활약했다. 『경연일기』는 율곡이 중앙에서 관직을 지내던 당시에 남긴 것으로, 국정 전 분야의 구체적 개혁안이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었던 공납 문제는 이이가 제안한 수미법으로 개선되었고, 수미법은 후에 큰 변화 없이 대동법으로 정착되었다.

율곡이 경연에 참석하던 시기는 조선의 크나큰 폐단이었던 붕당 정치가 심화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율곡은 붕당 간 대립 해소에 힘썼을 뿐 아니라 정쟁에만 치중하는 붕당을 가리지 않고 비판했다. ‘편들기’를 기대한 이들에게 미움이나 비난을 받음에도 ‘모난 돌’이 되기를 꺼리지 않았다.

그는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였지만 불교, 도가 등을 폭넓게 수용했을 뿐 아니라, 실리를 추구하는 실학 정신을 보여주었다. 대학자임에도 대동사회를 건설하고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개방적인 자세로 현실에 발 디딘 개혁안을 끊임없이 주장했다. 당파 싸움에 몸담지 않고 백성과 나라만을 고민한 그의 개혁 정신이 『경연일기』에 잘 담겨 있다.

지성의 광장, 클래식 아고라

지루하기만 한 고전은 가라!
흥미진진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새로운 품격의 고전 시리즈!

중역과 낡은 번역으로 점철된 고전이 아니라
젊은 학자들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고전의 새 시대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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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경연일기
1565년(을축) 명종 20년
1566년(병인) 명종 21년
1567년(정묘) 명종 22년, 선조 즉위년
1568년(무진) 선조 1년
1569년(기사) 선조 2년
1570년(경오) 선조 3년
1571년(신미) 선조 4년
1572년(임신) 선조 5년
1573년(계유) 선조 6년
1574년(갑술) 선조 7년
1575년(을해) 선조 8년
1576년(병자) 선조 9년
1577년(정축) 선조 10년
1578년(무인) 선조 11년
1579년(기묘) 선조 12년
1580년(경진) 선조 13년
1581년(신사) 선조 14년

해설
성리학과 실학의 절묘한 조화
하나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
사회 개혁의 대하드라마, 경연일기
과거와의 대화, 오늘의 거울

율곡 이이의 생애(연보)와 관직
미주

저자소개

이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 1536년(중종31년) 1세 : 12월 26일 강릉부 북평촌 외가에서 출생함. 부친은 이원수(李元秀), 모친은 신사임당(申師任堂), 본관은 덕수(德水), 字는 숙헌(叔獻), 號는 율곡(栗谷), 시호는 문성(文成) - 1541년(중종36년) 6세 : 강릉에서 한양으로 올라옴. - 1542년(중종37년) 7세 : 「진복창전(陳復昌傳)」 지음. - 1543년(중종38년) 8세 :파주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 「화석정(花石亭)」 시 지음. - 1545년(중종40년) 10세 : 「경포대부(鏡浦臺賦)」 지음. - 1548년(명종3년) 13세 : 진사초시에 장원급제함. - 1551년(명종6년) 16세 : 5월 어머니 신사임당 별세, 「선비행장」을 지음. 파주 두문리에 어머니를 장례하고 3년간 시묘함. - 1554년(명종9년) 19세 : 우계 성혼(1535~1598)과 도의의 교분을 맺음. 3월 어머니 시묘 3년을 마치고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함. - 1555년(명종10년) 20세 : 금강산에서 강릉으로 돌아와 「자경문(自警文)」을 짓고 유학에 전념함. - 1556년(명종11년) 21세 : 봄에 한양으로 돌아와 漢城試에 장원급제함. - 1557년(명종12년) 22세 : 9월 성주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 곡산 노씨와 혼인함. - 1558년(명종13년) 23세 : 봄에 경북 예안 도산(陶山)을 방문하여 퇴계 이황을 만남. 겨울에 別試에서 「천도책(天道策)」으로 장원급제함. - 1561년(명종16년) 26세 : 5월 아버지 이원수 별세. - 1564년(명종19년) 29세 : 7월 생원 진사시에 장원급제함. 8월 明經試에 급제하여 호조좌랑으로 첫 벼슬길에 나아감.(모두 9번 장원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림.) - 1565년(명종20년) 30세 : 봄에 예조좌랑에 전임. 8월 요승(妖僧) 보우(普雨)와 권간(權奸) 윤원형(尹元衡)을 단죄하는 상소를 올림. 11월 사간원 정언에 임명되자 사퇴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불허. - 1566년(명종21년) 31세 : 2월 병조좌랑에, 3월 다시 사간원 정언에 임명됨. 겨울에 이조좌랑에 임명됨. - 1568년(선조원년) 33세 : 2월 사헌부 지평에 임명됨. 가을에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갔다 돌아와 홍문관 부교리 겸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에 임명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함. 11월에 다시 이조좌랑에 임명되었다가 강릉 외조모 이씨의 병환으로 사직하고 강릉으로 내려감. - 1569년(선조2년) 34세 : 6월 교리에 임명됨. 9월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올림. - 1570년(선조3년) 35세 : 4월 교리에 임명됨. 10월 병으로 사직하고 해주로 감. - 1571년(선조4년) 36세 : 1월 이조좌랑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여름에 교리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해주로 감. 6월 청주목사에 임명됨. - 1572년(선조5년) 37세 : 여름에 부응교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파주로 돌아감. 8월에 원접사 종사관, 9월에 사간원 사간, 12월에 홍문관 응교, 홍문관 전한을 제수 받았으나 모두 사퇴함. - 1573년(선조6년) 38세 : 7월 홍문관 직제학에 제수되었으나 3차례 상소를 올린 후 사임하고 8월에 파주로 돌아감. 9월 다시 직제학에 임명되어 사퇴하였으나 허락을 받지 못함. 겨울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 지제교 겸 경연 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으로 임명됨. - 1574년(선조7년) 39세 : 1월 우부승지에 임명되어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지어 올림. 3월 사간원 대사간에 임명됨. 10월 황해도 관찰사에 임명됨. - 1575년(선조8년) 40세 : 8월 홍문관 부제학으로 임명됨. 9월 『성학집요』를 지어 올림. - 1576년(선조9년) 41세 : 우부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전라감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병으로 나아가지 않음. 10월 해주 석담에 청계당을 지음. - 1577년(선조10년) 42세 : 1월 해주 석담에서 「동거계사」를 지음. 5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12월 『격몽요결』 지음. - 1578년(선조11년) 43세 : 해주 석담에 은병정사를 지음. 3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6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 1579년(선조12년) 44세 : 5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 1580년(선조13년) 45세 : 5월 「기자실기」 지음. 9월 홍문관 부제학에 임명. 12월 대사간에 임명. 1581년(선조14년) 46세 6월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으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다시 예문관 제학으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8월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됨. 9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10월 호조판서에 제수됨. 11월 『경연일기』 완성 - 1582년(선조15년) 47세 : 1월 이조판서에 제수됨. 7월 선조의 명으로 「인심도심설」, 「김시습전」, 「학교모범」, 「사목(事目)」을 지어 올림. 8월 형조판서에 임명됨. 9월 의정부 우참찬에 임명되고 숭정대부로 특진. 10월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원접사가 되어 「극기복례설」을 지음. 12월 병조판서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 1583년(선조16년) 48세 : 2월 「시무육조」 지어 올림. 3월 경연에서 십만양병을 건의함. 6월 동인의 탄핵을 받고 파주로 돌아갔다가 7월에 석담으로 돌아감. 9월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 1584년(선조17년) 49세 : 1월 「육조방략」을 최후로 지음. 1월 16일 한양 대사동에서 별세함. 3월 20일 파주 자운산에 안장됨. - 1624년(인조2년) : 문성(文成)의 시호를 받음. - 1681년(숙종7년) : 문묘의 종사를 허락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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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선 (옮긴이)    정보 더보기
강원대학교 및 대학원을 수료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栗谷心論硏究」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강원대학교 인문학부 철학전공 교수이다. 중국 정강산대학과 월수외국어대학 객원교수로, 전 한중인문학회장과 현 율곡학회장으로 소임 중이다.주요저서및 논문으로 「율곡심론연구」(박사학위논문), 『율곡의 『순언(醇言)』: 유학자의 노자 『도덕경』 이해』(공역), 『일곱주제로 만나는 동서비교철학』(공역), 『율곡철학의 이해』(저서), 『경연일기』(공역), 「율곡철학의 일상과 이상의 글로컬 실천 연구」(논문), 「「기자실기」의 기자동래설 분석과 철학실천 연구」(논문), 「『순언(醇言)』의 일상과 이상에 관한 연구-‘경계(境界)’의 범주를 중심으로-」(공저논문), 「4차 산업혁명 AI시대 인성교육의 방법과 전망(논문)등 다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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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은 (옮긴이)    정보 더보기
강원대학교 철학실천연구소 연구교수.강원대학교 철학과에서 「신사임당 예술철학 연구」로 박사학위 를 받았다. 한국철학과 여성철학, 그 중에서도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과그시기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근 주요 연구 실적으로는 저서 『사임당 평전』(2016), 번역서『경연일기』(2023, 공역)이 있다. 논문으로는 「율곡의 「선비행장」에 나타난 신사임당 연구」(2019), 「신사임당 의 소재에 나타난 상징성 연구」(2021), 「이매창의 회화 연구」(2021), 「임윤지당의 『윤지당유고』에 나타난 안회 연구」(2022), 「『윤지당유고』의 傳에 구현된 여성관 연구」(2022), 「율곡의 「경포대부」에숨겨진 신사임당의 사상 연구」(2023), 「강정일당의 「척독」에드러난 공부론 연구」(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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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경연일기』는 율곡의 나이 30세 때인 1565년(명종 20년) 7월에 시작하여 46세 때인 1581년(선조 14년) 11월에 끝나는 약 17년간의 방대한 기록이다. 당시 조정에서 일어난 왕과 여러 대신들의 정사 집행 내용과 함께 인물에 대한 평론, 그리고 율곡의 생각도 사론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경세서이면서 수양서이기도 하다. 또 율곡 자신이 ‘금상실록’이라고 명명한 데서 엿볼 수 있듯이 스스로 사관의 위치에서 당시의 역사를 공정하게 이실직서 以實直書 하여 直書, 直筆의 전통을 세우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다.
_서문


삼가 살피건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곧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 것이다. 요순도 이를 어렵게 여겼으니, 어찌 사실이 아니겠는가. (…) 그러나 이준경은 영의정 자리에 있으면서 임금을 도학으로 인도하지도 못했고, 인재들을 널리 불러들이지 못했다. (…) 기대승은 재주는 뛰어났지만 기질이 거칠어서 학문이 정밀하지 못하고 자신만 잘난 체하며 다른 선비들을 가볍게 여겼다. 또한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자기와 의견이 같은 사람만 좋아하였다. 만약 그가 임금의 신임을 얻는다면 그의 비뚤어지고 고집스러운 병폐로 나랏일을 그르치고 말 것이다. 이황 같은 현명함을 가지고서도 그 추천하는 인물이 이와 같으니,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어찌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_1569년(기사) 선조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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