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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91931930
· 쪽수 : 792쪽
· 출판일 : 2012-07-20
책 소개
목차
상권
제1부 환세의 기도
제2부 조난자의 꿈
제3부 아들의 손길
하권
제4부 순례자들
제5부 아직은 먼 빛
옮긴이 후기
리뷰
책속에서
아들이 웃었다. 이목구비는 모호한데 웃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 비극은 머릿속으로 보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런 번거로운 일은 아무도 하지 않아. 그러니까 세계적으로 보자면 엄마도 존재하지 않는 거야.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사람이 죽어도 세계 각국의 텔레비전에는 나오지 않을 테니까. 엄마의 죽음도 우리 가족의 죽음도 말하자면 제로인 거야.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아들이 테이블 너머로 팔을 쑥 뻗었다. 유코는 엉겁결에 몸을 뒤로 뺐다. 아들은 피가 묻은 칼을 쥐고 있었다. 테이블을 보니 남편도 시아버지도 음식 접시들 위로 몸을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등에는 칼자국이 나 있다. 아들이 웃으며 “엄마,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엄마” 하고 칼을 휙휙 휘둘렀다.
- 상권
“마미하라 씨…… 지난 십삼 년 동안 묻고 싶었던 게 있어요.”
후지사키가 말했다. 그는 옆구리에 손을 짚은 채 마미하라 쪽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사건에서…… 용의자는 자기를 학대하고 이혼한 어머니, 말하자면 자기를 버린 모친 앞에 이십 년 만에 나타난 거였습니다. 수사본부나 저는 용의자가 아무런 정도 없는 어머니에게 돌아갈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마미하라 씨는 틀림없이 돌아올 거라고 주장했죠. 그 뒤로 상황이 복잡해져서 마미하라 씨한테는 끝내 묻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쓸데없는 물음이긴 하지만,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요.”
“왜 놈이 거기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느냐고? 그건, 그냥 직감 같은 거지.”
마미하라는 대답했다.
후지사키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렇겠죠. 저도 경부보님다운 뛰어난 직감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라…… 용의자는 무엇 때문에 어머니를 만나러 갔을까요? 놈은 식칼을 품고 있었어요. 그 식칼은…… 누구에게 휘두르려고 준비한 걸까요? 자기가 야쿠자가 되고 처자식까지 죽이게 된 것도 다 어머니 탓이라는 원망 같은 게 있었을까요? 어머니를 죽일 생각이었을까요? 마미하라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미하라는 저도 모르게 오른쪽 눈썹의 흉터를 만졌다. 그러다가 그대로 얼굴을 손바닥으로 거칠게 쓸고 말했다.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어서지.”
- 하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