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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72757030
· 쪽수 : 388쪽
책 소개
목차
1권
색 없는 수채화
폐허가 된 마을의 소년
향기 없는 꽃
갇힌 두 사람
투명 소년
타오르는 벽
조촐한 무리
얽매인 사랑
배신의 기도
2권
미로의 별
짐승의 여행
멀어지는 소원
기적의 방문
선과 악의 나선
이별의 잔치
약속의 오늘
젊은 사람들에게?감사의 말을 대신하여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발끝에서 힘이 빠져 세숫대야를 바닥에 놓고 주저앉는다. 지금까지 울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쓰러져도 울지 않았는데, 무시해도 좋았던 자신이 확실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뜨거운 꿀이 끼얹어진 것처럼 얼음이 녹아 가슴에서 흘러넘친다. 소리를 낼 뻔했다. 안 된다, 여기서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참을 수가 없다.
반쯤 열린 쇼지의 입가에 루슬란이 구부러진 팔뚝을 내밀었다. 역광으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살짝 쇼지의 이에 팔뚝을 바짝 댄다. 그의 마음이 전해져서 호의를 받아들여 팔뚝을 물었다. 물고 소리를 죽여 마음껏 울었다.
무척 아팠을 텐데도 팔뚝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쇼지에게 맡긴 채 있어 주었다. 치아 아래의 부드러운 감촉이 왠지 정겹고 따뜻하다. 복받치는 것을 모두 그의 팔뚝에 발산하고 울면서 난생처음 죽음을 생각했다. 지금이라면…… 죽어도 좋다.
- 투명 소년
“그만둬. 전부 네가 선택한 일이잖아. 사랑받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꿈을 이루고 싶다…… 나는 너희 마음속에 있는 바람을 이루게 해 주려고 했을 뿐이야. 아이코 씨를 나한테 소개한 것은, 벨라한테 그녀에 대해 알려 주기를 바랐기 때문 아니었어? 두 사람만으로는 결혼하기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은 너희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날 끌어들였지. 이번에도 장래를 위해 부자 고객한테 좋은 평가를 얻고 싶어서 내 이야기에 응한 거고. 그런데도 뭔가 잘못되면 다 내 탓이야? 선인일수록 욕심에 눈이 멀어 자신이 선택했으면서도 실패하면 책임을 누군가한테 덮어씌우지.”
어둠 속에 숨은 사촌 형의 얼굴 언저리에서 희미하게 쓴웃음의 숨결이 들려왔다.
“노부미치. 나는 정말 존재하는 걸까? 너희의 어두운 욕망의 분신 아닐까?”
- 얽매인 사랑
“……자신한테 돌아오거든. 자기가 당하기 싫은 일은 하는 게 아니야.”
마코토가 갈 곳을 잃은 발을 천천히 내리고 무릎을 치신없이 까부는 것처럼 몇 번 위아래로 움직였다.
“……정말 돌아올까?”
마코토가 말한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늘을 향해 숨을 내쉬며 말을 잇는다.
“돌아온다면 인간은 진작 멸종되지 않았을까? 개미나 동물에게만 그런 게 아니야. 인간끼리 서로 짓밟는 일을 한다거나 돈 때문에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기도 하고, 당하는 게 싫은 것만 흘러넘치고 있잖아. 그런데 왜 인간이 멸종되지 않는 건지 참 이상해.”
- 멀어지는 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