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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후기(영조~순종)
· ISBN : 9788992114936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14-05-08
책 소개
목차
1장_ 궁궐의 잔치
2장_ 지는 해와 뜨는 달
3장_ 분주한 경복궁
4장_ 사바찐의 궁궐 순찰
5장_ 위병소와 집옥재
6장_ 공덕리의 흥선 대원군 저택
7장_ 대원군이 경복궁에 끌려간 이유
8장_ 대원군의 침묵과 개화파의 참가
9장_ 대원군의 출발
10장_ 미우라 공사의 정변 계획
11장_ 일본 공사관의 긴박한 움직임
12장_ 일본 정부의 조직적 개입
13장_ 이학균의 다급한 목소리
14장_ 춘생문과 추성문
15장_ 한 발의 총성
16장_ 무청문의 총격전
17장_ 광하문과 근정전
18장_ 사바찐과 현응택
19장_ 사바찐의 경복궁 관문각 공사
20장_ 현응택과 오카모토
21장_ 개국기원절 행사
22장_ 궁내부협판 이범진
23장_ 사바찐에 관한 의혹
24장_ 진실과 거짓 사이
25장_ 사바찐의 행적
26장_ 왕실의 위기 대응
27장_ 곤녕합, 사바찐의 목격
28장_ 명성황후 시해 현장
29장_ 명성황후 시해범 추적
30장_ 명성황후의 인내심
31장_ 명성황후의 반일 정책
32장_ 명성황후의 시신과 화형
저자 후기
참고문헌
인명 색인
저자소개
책속에서
해질 무렵. 초가을의 서늘한 느낌, 뜨거움과 차가움이 교차하는 옅은 바람이 불었다. 강한 햇빛이 옅어지고 점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였다. 검은 하늘과 파란 하늘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모든 존재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태양이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다, 이내 사라지고 사람들이 하나둘 등불을 밝히기 시작하였다.
1895년 10월 7일 저녁 7시, 강렬한 태양이 지평 위에 사라지고 있었다. 어제 이맘때보다 오른쪽 윗부분이 조금 기울어진 발그스레한 보름달이 좀 더 높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는 해와 뜨는 달이 교차하는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서쪽 하늘에 별빛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차가운 바람이 사바찐의 등 뒤를 스쳤다. 바람소리가 가을의 차가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포장되지 않은 서울 거리에서 대궐로 들어가거나 나오는 전령의 말발굽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에 띄는 것이라고는 옆으로 흔들거리며 소리 없이 지나가는 어떤 관리의 가마가 있을 뿐이었다. 몸이 불편하여 우는 어린아이 울음소리, 개들이 짓는 소리, 당나귀의 울음소리, 재난을 당한 집에서 울부짖는 무당의 푸닥거리 소리들만이 먼 곳에서 들려왔다.
집들과 건물을 둘러싼 하얀 벽들이 줄지어 있는 적막한 길가에는 고정된 등화도 없었고, 불이 켜진 창문들도 드물었다. 저 멀리 통행인이 들고 있는 초롱불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초롱불이 따스하고 포근해 보였다. 언제나 그러하듯 사바찐은 경복궁으로 향하는 출근길을 재촉했다.
- 2장_지는 해와 뜨는 달
대원군은 1896년 5월 을미사변에 관한 자신의 의혹에 대해 짤막히 답변했다.
“아직도 이 문제가 세간에 걱정거리로 남아 있다 하니 참기 어려운 일이며 한스럽기 그지없다. 작년 8월 사변에 대해서는 여론이 제멋대로인데 나의 말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나는 그저 조용히 있을 뿐이다.”
대원군은 어쩔 수 없이 을미사변에 가담했다. 하지만 을미사변에 가담했다는 자체가 대원군에게는 정치적으로 치명적이었다. 대원군은 해명보다는 침묵을 선택했다.
말이란 아무리 화려하고 깊이가 있어도 별다른 감정이 없는 사람에게만 효력을 발할 뿐, 행복이나 불행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만족을 주지 못하는 법이다. 따라서 침묵이 때로는 행복이나 불행을 표현하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랬던 대원군도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복잡한 심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대원군은 1897년 12월 13일(음력 11월 20일) 아무르총독 그라제꼬프(Н.И. Гродеков)에게 한통의 편지를 보냈다. “우둔한 자들이 음모를 꾸며 부자지간을 이간시켜 놓았다. 고종은 천성이 선량하나 나쁜 신하들의 영향을 받았다. 자신은 지금 어둠 속에 있고 누구에게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결백하고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대원군은 자신을 향한 올가미가 서서히 죄어오는 사실을 느꼈다. 그렇지만 대원군은 을미사변에 관한 진실을 구체적으로 증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대원군은 자신이 죽기 석 달 전 자신의 정치적 결백만은 스스로 주장하고 싶었다.
천하의 대원군도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억울한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주변은 고요하고 평온하다. 주변이 평온한 건 불행한 사람들이 말없이 자기 짐을 지는 덕분이다. 불행한 사람들이 침묵하지 않으면 주변의 평온이란 불가능하다.
- 8장_대원군의 침묵과 개화파의 참가
쉰 목소리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다. 저 멀리 누르스름한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건청궁 주변에 세워진 전등불 때문이었다.
사바찐은 시위대 1대대장 이학균의 다급한 소리에 잠을 깼다.
미세한 떨림이 사바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쳐 지나갔다. 마치 뒤통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그 구명에서 작은 파편이 알몸을 타고 아래로 떨어진 것 같았다. 서늘함과 다급한 소리에 사바찐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평상복을 입고 잠을 청했기 때문에 바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는 옆방에 있던 다이와 함께 이학균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옆방에 누운 다이(W. M. Dye, 茶伊, 1831-1899)는 1888년 연무공원(鍊武公院)의 군사교관으로 조선에 초빙되었다. 다이는 1890년 병조참판으로 승진하였다. 다이는 미국 남북전쟁 참전용사로 이집트 파견 근무를 마친 예비역 대령이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근무지로 조선을 선택하여 조선 군대를 양성하였다. 그는 고종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은 강직한 인물이었다.
- 13장_이학균의 다급한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