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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92492522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09-02-17
책 소개
목차
제1장 뫼비우스의 바다
후지산을 바라보는 소년
1968년의 사티안
파르테논
알라딘의 불씨
원화怨火의 바다
미로
조용한 아침의 증언
제2장 황천의 개
편지
창窓
1993년의 카타스트로프
성화聖火
TV의 순례자
불의 마술
불로 돌아오는 것들
황천의 개
꽃과 뼈의 강가
픽셀의 만다라
달과 재
제3장 어느 성의의 표박
아득히 먼 여행
한 장의 사진
태양 아래의 달빛
사두의 옷
어느 성의聖衣의 표박漂迫
제4장 히말라야의 할리우드
번뇌력
거기서 세계가 시작되었다
어느 공중 부유자
월광수月光水
히말라야의 할리우드
명상 바이러스
제5장 지옥 기조음
지옥을 방황하는 에리카
붉은 램프
황야의 퍼즐
산양의 뿔에 손을 내밀어라
푸르름의 군상
고릴라가 사라지다
지옥 기조음
후기
옮긴이의 글
리뷰
책속에서
천천히 뒷걸음질로 시체에서 떨어졌지. 그런데 개들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계속 다가오는 것이었어. 개들은 시체가 확보된 후에도 시체를 지나쳐 계속 다가오는 것이었어. 개들이 시체를 무시하고 내게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자 소름이 돋더군. 녀석들은 인간이 어떤 맛인지를 알고 있었던 거야. 신선한 물고기가 맛있는 것처럼 당연히 살아 있는 인간이 더 맛있었겠지. 태어나 처음으로 다른 동물의 먹잇감이 된 거야. 기묘하고 한심스러운 기분이었지.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인간은 동물이나 벌레와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닫고 혼자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굶주린 아귀 같은 개들에게 한낱 사료에 불과한 존재로까지 전락해버린 거야. - 2장 황천의 개, 150쪽
신사는 입구부터 기둥으로 만든 칸막이가 세워진 폐색 공간이야. 세월과 함께 그곳의 공기도 부패해져. 섬나라 일본의 모형 같은 곳이야. 이세신궁은 그런 일본과 일본인의 마음을 본뜬 모형이야. 과거에는 이슬람교도의 메카처럼 일본인의 일상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어. 마음의 규범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일정한 주기마다 파괴된다는 것은 20년에 한 번씩 마음의 카타스트로프가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의미였을 거야. 그리고 다시 재생되는 거지. 이건 무척 재미있는 발상이야. 이런 행위는 섬나라라는 폐색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정체되어 있는 공기를 정화시키는 목욕재계 같은 기능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돼. - 2장 황천의 개, 109쪽
여행을 선택한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만약 젊은 날의 충동적인 행위에 스스로 이유를 붙일 수 있거나, 객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청년이란 사리나 이치가 아닌 동물적 감성으로 세계를 헤아리고, 온몸으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려고 한다. 사리나 이치는 육체적 열광이 식어버린 후에 찾아오는 변명에 불과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쿄에서의 내 존재는 막연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는, 또는 신체감각이 점점 옅어지면서 ‘이대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져 있었다. 머잖아 도래할 정보화사회가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추상화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신체감각마저 가상현실처럼 취급해야 하는 훗날의 시대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을 떠나 인도로 눈을 돌린 이유는 그 가혹한 원시의 자연 속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지금 이곳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감각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나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으나 이 여행은 신체와 연관이 깊은 여행이었다.
- 1장 뫼비우스의 바다, 18-19쪽
이 원초적 대지에서 시계의 초침은 뭔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당황한 모습으로 작은 원주 속을 미친 듯이 맴돌고 있었다. 그 모습이 보면 볼수록 기묘했다. 초침은 분명 도망치고 있었는데, 이 도주는 끝없는 원운동에 불과했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또 도망친다. 이 광대한 벌판 속에서.
이 끝없는 레이스. 대체 이런 레이스를, 그리고 시계라는 물체를 누가 고안해낸 걸까. 시계는 인간이라는 이해 불가능한 동물의 진화에 대한 환상 또는 강박관념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 5장 지옥 기조음, 279-280쪽
Y와 나는 동일한 것을 찾아 이 땅을 찾았다. 그런데 대체 어디쯤에서 길이 어긋나게 된 걸까. 나는 오직 리얼을 위해 예술을 버리고 가시밭길 같은 현실에 몸을 던졌다. 반대로 Y는 현실에 등을 돌리고 명상 속에서 그가 리얼이라고 믿었던 진아를 구했다. 우리가 지나온 길과 이곳은 무엇이 다른가. 만일 같은 것이라면 진아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도, Y도 어떤 잘못을 범하고 있었던 것일까. - 5장 지옥 기조음, 316-317쪽
젊은이들은 간혹 이런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물질을 과신하는 것이지요. 물질은 마야일 뿐입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해요. 정신이 있기에 그 물질이 느껴지는 겁니다. …마음과 물질의 등질성이 간혹 어긋나는 때가 있습니다. 마음속의 실재를 마야(물질)로 환원시키겠다는 생각에서 번뇌가 싹트기 시작합니다. 요술처럼 손에서 물질을 만들어 내거나, 공중을 떠다니고 싶은 욕망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예부터 정신의 물질화는 비속으로 떨어지고, 권력을 가져오고, 그리고 권력에 이용되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수행승이 이 마경에 유혹되는 모습을 나는 자주 봐왔습니다. - 5장 지옥 기조음, 318쪽
정신의 물질화는 그것을 생각하는 순간에만 사악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물질로 인해 너의 거짓 없는 마음이 봉해진다는 게 문제다. 절대로 서둘러서는 안 된다. 물질을 과신하는 것도, 마음을 과신하는 것도, 물질을 가벼이 여기는 것도, 마음을 가벼이 여기는 것도 안 된다. 이 세계는 정신과 물질의 균형 위에서 존재한다. 인간은 그 둘 사이에서 중용을 지켜야 하고, 그 중용을 통해 각성해야 하고, 깨달아야 하는 법이다. - 5장 지옥 기조음, 31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