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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88992492966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11-03-25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비행기
포플러
쇠울음
흰쌀밥
그믐께
아버지의 바다
첫여름
무대
산을 넘어 바다로 간다
겨우살이
졸업식
고동소리
아침
럭키
사랑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가난을 면하기 어려웠던 남편은 마침 해외에서 일할 노동자 대열에 섞여 중동으로 갔다고 했다. 국내에서 버는 것보다 열배 가까이 많았던 월급이었다. 계약 기간을 무사히 마치면 집을 장만할 수도 있고 더욱이 연안 조업이 가능한 통발 어선도 마련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이 할미의 삶 전체에서 처음으로 싹트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 월급이 전신환으로 부쳐 오고 두 달 급여를 기다릴 즈음 한 통의 편지가 할미 손에 들려졌다. 글을 몰랐던 할미를 대신해 이웃 중학생이 읽어 내려간 편지는 뜻밖에도 남편이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 비행기 중에서
칠순에 이른 할미는 관절염이 심한 상태였다. 무리한 밭일이 오십 여 년 넘게 이어오면서 당연히 따라붙은 퇴행성관절염이었다. 그렇게 굽고 쥐어지지 않는 손으로 할미는 플라스틱 밥상에 저녁을 차려 놓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마을에서 이따금 건네는 마른 반찬 두엇과 양배추김치가 놓인 저녁상에서 세 사람은 말없이 밥을 먹는 일이 많았다. 나는 가져간 여러 통조림과 소시지를 밥상에 내 놓았고, 형제는 바람에 깃털이 쓸리는 모양 그대로 그 맛에 빠져들었다. 언 발에 오줌 누듯, 형제는 그렇게 순간을 잊고 있었다. - 포플러 중에서
밥집 뒤편 산기슭에 자리 잡은 블록 벽채의 세 칸 일자형 슬레이트집이 홍 씨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십여 년 전 혼인했다는 각시가 여태 붙어 있는 게 신기할 만큼 살림은 볼 품 없었는데, 그 사이에 여덟 살 난 머슴애가 혹처럼 홍 씨에게 달라붙은 형국으로 그저 남루하기만 했다. 지금 기억에도 그이가 사는 집에서 따스한 온기를 찾는 것은 옹색한 토방 가에서 빗살 창호 문으로 비치는 불빛을 맥없이 쳐다볼 때뿐이었다. 그러면 문창살 빛과 함께 걸걸한 홍 씨 목소리가 두-런, 궁시렁 하며 흐릿한 불빛에 묻혀 밤공기를 가르곤 했다.
- 고동소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