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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88993119152
· 쪽수 : 344쪽
책 소개
목차
저자의 글
1부 악역을 자처한 임금들 - 태종과 세조
1. 태종
하늘이 시킨 일 오명을 마다하리 - 정몽주 제거 | 집안에 갇힌 아버지, 칼로 맞선 아들 - 골육상쟁 | 왕에게 동지는 없다, 신하만 있을 뿐 - 외척과 공신 숙청 | 호랑이가 새끼 키우듯 후계자는 엄하게 키워라 - 세자 교체와 양위 | 태평성대를 위하여, 수고는 모두 내게 맡겨라 - 마지막 유산
2. 세조
시대를 잘못 읽어 잉태된 국가의 비극 - 군주의 오판 | 역사의 시계 거꾸로 돌린 명분 없는 쿠데타 - 헌정질서 파괴 | 정권의 패륜을 본 인재들, 목숨은 줘도 마음은 안 줘 - 사육신과 생육신 | 특권층 1만 명의 천국, 백성들에게는 지옥이 되다 - 공신들의 나라 | 잘못된 쿠데타의 유산, 예종 목숨마저 앗아갔다 - 불행한 종말
2부 신하들에게 쫓겨난 임금들 - 연산군과 광해군
3. 연산군
말 갈아탄 신하들, 참을 수 없는 옛 군주의 흔적 - 폐위 이후 | 인재들을 죽음으로 내몬 리더의 지적 능력 부족 - 준비 안 된 군왕 | 자신들의 적을 백성의 적으로 기록한 붓의 권력 사대부 - 부풀려진 폭정 | 조선 최고 음란한 임금은 반정 사대부들의 날조 - 황음무도 논란 | 문풍에 갇힌 사대부, 무인 군주의 꿈을 꺾다 -`숭무정책의 좌절 | 뜻이 옳아도, 고립된 권력은 실패한다 - 우군 없는 군주
4. 광해군
후계가 불투명할수록 정쟁이 깊어진다 - 험난한 즉위의 길 | 서른 세 살의 준비된 임금, 세 살짜리 적자와 후계를 겨루다 - 적자 옹립세력 | 시대를 앞서갔지만 신하를 설득하지 못한 군주의 비극 - 동북아 정세 급변 | 민생 위해 손잡은 연립정권, 스승의 명예 위해 갈라서다 - 문묘종사 논란 | 소통과 통합에 실패한 군주, 외롭게 몰락하다 - 소수파의 임금
3부 전란을 겪은 임금들 -선조와 인조
5. 선조
불투명한 후계자 계승, 정통성 콤플렉스를 낳다 - 방계승통 | 당쟁 줄타기하던 임금, 서인의 손에 도끼를 쥐어 주다 - 정여립 사건 |
수많은 전란 징후, 무능한 정권은 눈을 감았다 - 임진왜란 전야 |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사라진 나라, 백성들도 버렸다 - 요동 파천 논란 | 신분제도와 조세제도 개혁, 민초들이 전쟁에 나서다 - 면천법과 작미법 | 전쟁 끝나자 다시 양반 천국 - 지배층의 변심
6. 인조
국익 위에 당론, 임금 갈아치우는 쿠데타 명분으로 - 서인의 왕 | 피의 보복이 부른 정치 실종, 전란을 부르다 - 정치 보복과 자체 분열 | 명분 때문에 현실을 외면한 정권, 끝내 삼전도 굴욕 - 외환 부른 쿠데타 | 새 세상을 봤지만 권력에서 소외된 후계자의 좌절 - 날개 꺾인 소현세자 | 어린 손자들까지 죽음으로 내몬 어진 임금 인조 - 세자 일가의 비극
4부 절반만 성공한 임금들 -성종과 영조
7. 성종
기다렸다는 듯, 예종 승하한 날에 성종 즉위식 - 밀실 담합 | 권력은 공신들 손에, 어린 임금은 때를 기다렸다 - 귀성군 제거 사건 |
대비 윤씨, 벽서 나붙자 권력이양 결심 - 승정원 벽서 사건 | 신진 사림에 탄핵·언론권 주며 시대의 금기와 맞서다 - 홍문관 설치 |
조용히 힘 키운 성종, 왕명 거스른 한명회 축출 - 압구정 사건 | 애정 다툼을 투기로 몬 임금, 참극의 씨를 뿌리다 - 낮과 밤의 두 얼굴 | 남의 힘으로 왕이 된 성종, 현실과의 타협은 숙명 - 무예 장려
8. 영조
난 경종의 충신, 김일경은 뻣뻣했다 - 소론 강경파 숙청 | 결국 봉기한 준소, 하지만 영조 곁엔 완소가 있었다 - 이인좌의 난 | 과거사를 지우고 싶은 영조, 탕평을 제안하다 - 신유대훈 | 검소한 군주의 눈물도 양반을 누르지 못했다 - 애민군주의 한계 | 화난 영조, 양반의 나라니 경들이 다스리시오 - 숙빈 최씨 추숭 | 소론은 희망을 잃고, 임금은 이성을 잃었다 - 나주 벽서 사건 | 영조의 왕위이양 쇼, 네 살 세자는 석고대죄했다 - 사도세자 ① | 대리청정 덫에 걸린 세자의 뜨거운 가슴 - 사도세자 ② | 열다섯 살 계비가 불행의 씨앗이 될 줄이야 - 두 외척의 대립 | 옥새를 세손에게, 새 군주의 시대 열리다 - 마지막 유조
조선 왕조 계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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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과거에도 이미 벌어졌던 일들임을 밝힘으로써 현재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 선택의 결과 어떤 미래가 열릴지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역사가 한낱 과거 사실에 대한 복고풍의 지적 유희가 아니라 현재학이고 미래학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성공한 군주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가 역사서 애독이었다는 점은 당연하다. 성공한 군주들은 과거 역사에서 현재의 산적한 현안을 푸는 지혜를 얻으려 했다. 그리고 그런 의도는 상당 부분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우리 사회도 21세기에 걸맞은 역사학과 군주학이 필요하다. 과거의 가치관이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거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역사학과 군주학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방원은 반발했다. 단순히 이복형제 사이의 자리다툼이 아니라 조선의 미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는 한漢 고조 유방劉邦이 한신韓信 같은 개국공신들을 제거한 것처럼 피의 숙청을 통해 왕실을 반석 위에 올려놓아야 조선의 미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안을 나라로 만든 부친과 맞서야 했다. 태조 7년(1398년) 8월 이방원이 군사를 일으켜 세자 이방석과 이방번 그리고 배후의 정도전을 죽인 것은 사실상 부친을 공격한 것이었다. 이 제1차 왕자의 난은 당唐 고조 9년(626년) 이세민(태종)이 장안長安(현재의 서안) 북쪽 현무문玄武門에서 태자인 친형 이건성李建成과 넷째 동생 이원길李元吉을 죽이고 정권을 차지한 현무문의 변變과 흡사했다.
'연산군일기'는 사실을 기술한 부분과 사관의 의견을 개진한 부분을 분리해서 읽지 않으면 사관이 만들어놓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 사관의 의견을 사실로 읽다 보면 사관의 의도대로 연산군을 해석할 수밖에 없다. 연산군은 국왕과 사대부가 공동 통치한다는 신흥 사대부들의 건국이념을 부정했다. 연산군이 사대부 계급의 공동의 적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