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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88993285475
· 쪽수 : 480쪽
책 소개
목차
1. 퇴계 이황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과부의 아들이 배움이 없다고 말하니
네가 본래 뜻을 세우지 않아서
여종이 자기 아이를 버려두게 하는 것은
콩 볶은 물로 23년을
아내는 가도 처가는 남아
집안은 비로 쓴 것 같아
외로운 무덤이 국도변에 있어
논어를 모두 외워도
사단칠정 논쟁을 일으키다
돌은 닳아 없어질 수 있지만
홀로 앉아 그대를 생각하네
14년 동안 매달 한 통씩
그대 얻으니 눈길이 반갑구려
뜰에 꿇어 엎드려 절하고
2. 남명 조식
하늘이 사람을 낼 때
빈 칸으로 남은 6년
해마다 6월 11일에는
살뜰한 정을 의리로 대신하고
늘그막에 얻은 측실
몸과 팔다리는 떨어질 수 없다
내 마음에는 이별이 없으니
일 년 후의 약속
그대를 만나 내 삶이 바뀌고
이 사람이 가버렸다 하니
나를 가르치는 건 바로 나
산머리에서 멀리까지 돌아보니
3년 동안 심상(心喪)을 입다
남겨진 제자들
3. 율곡 이이
동해에서 날아온 용
자나 깨나 가슴 속에 계시옵더니
어머니 잃은 발걸음은 산사로 향하고
항아리에 머리를 들이밀고 우는 서모
무릎 앞에 있는 아이뿐
하늘처럼 섬기던 어른을 잃은 지 8년
동침을 한다면 의(義)를 해칠 것이다
마주 앉아 이야기하던 일 참으로 꿈만 같구나
편지를 쥐고 울었습니다.
구봉산이 얼마쯤 낮아졌을까
게으름과 수면을 탐내지 말 것
소자가 배움을 잃어 헤맬 때
제자 85명을 둔 스승
4. 송강 정철
평생에 다시 못할 일
너는 도대체 날로 고달프다 하면서도
훗날 우리 혼백이 함께
환벽당에서 맺은 인연
나는야 저승이 이승보다 나을레라
여윈 살은 뼈에 붙고
마침내 크게 넘어지지 않은 이
산 속에 깃든 바닷가 신선
천 년 동안에 오직 우리 선생님뿐
사문은 천고에도 티끌이 없구나
슬퍼라, 한 잔 술 권해 올릴 수 없음이여
술에 의탁함은 실로 완적(阮籍)의 꾀
5. 난설헌 허초희
자유분방한 기질을 길러 준 아버지
사시나무 가지에는 쓸쓸히 바람 불고
다른 여인의 치마는 짓게 하지 마세요
산 너머 덩굴 사이로 달빛만
상제의 뜰 안은 노닐 만하오이다
하룻저녁 비단 창문 닫고서 보니
6. 교산 허균
슬픔이 늘 가슴에 맺혀 있는데
그대 또한 눈물을 흘리리
낡은 버들 그늘을 이루지 못해
형님과 베개를 나란히 베고
한 마리 기러기가 서풍에 날아가네
오언율시 여덟 수를 노자로 주게
누가 다시 나를 용납해 주겠는가
의당 절반의 봉급으로 대접하리니
만고에 흐르는 강물
그는 신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7. 고산 윤선도
생각해 보면 옛날에
8년 동안의 손님
평생토록 스스로 독실하여 예를 갖추었고
세파를 좇다가 낯부끄러움을 어찌하리
시 읊노라니 그대 돌아가길 잊누나
과연 무슨 죄입니까
마음이 소리에 나니
제때에 조용히 앉아 뜻을 붙여
항상 내가 마음속으로 잊지 못해
8. 다산 정약용
아버지께서 내 막내라 하시었는데
여덟 살 차이 나는 어머니
그 애가 죽어갈 무렵에 소라껍질이 도착했습니다
편지가 오니 마음에 위안이 된다
그 옛날 다홍치마엔
아침에 붓 던지고 저녁에 활 잡으셨네
들깨 한 말을 부쳐 드리니
빗과 세숫대야를 들고 따라 와서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선학이 인간 속에 내려왔던가
차와 담론으로 외로움을 덜어주고
큰 나무도 울창하면 가지가 많다네
제게는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9. 추사 김정희
열두 살에 양부를, 중년에 생부를 여의다
너를 직접 가르칠 수 없으니
아내를 잃어도 멀어지지 않은 처가
우리 부부 서로 처지 뒤바뀌길
수유가 한 사람이 적다하여
한 사람만이 유독 나를 불쌍히 여기시니
한 침상에서 다른 꿈을 꾸지 않아
국내외 학자를 스승으로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조각배로 세 번 바다를 건너
「부록 1」 조선의 제도
「부록 2」 인물 소사전
참고 문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박씨 부인은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덕성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다. 밭에 거주하면서 농사를 짓고 누에를 길렀다. 그 부지런함 덕분에 가장이 있는 집들의 살림이 망하는 어려운 때에도 집안을 지켜낼 수 있었다. 특히 자식들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늘 일깨워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뼈에 새겨 주었다. 그러면서도 늘 신중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는 것, 아버지 없는 자식들이라는 것은 조선시대에 커다란 열등감이었을 것이다. 그 열등감으로 오히려 자녀들을 격려한 어머니의 지혜가 놀랍다. 우리는 흔히 열등감을 극복한 사례를 말할 때 에디슨이나 나폴레옹을 인용한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역사 안에서 그런 사례를 찾아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퇴계와 그 어머니는 이런 사례로 매우 적합하다.
- '퇴계 이황' 편 중에서
남명은 다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한양에 가서 성장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에 힘쓰고 행동이 드레졌다. 그는 들락날락하며 장난을 치는 대신 책을 보거나 혼자 골똘히 생각하는 일이 많을 정도로 조숙(早熟)했다. 그 어른스러움은 예사 사람을 훨씬 뛰어넘었다. 친구 성운이 남긴 남명의 묘갈문에 이런 내용이 보인다. 나이 8~9세에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어 모부인이 근심스러운 안색을 지으니 공(=남명)이 자세를 가다듬고 기운을 내어 거짓으로 병이 조금씩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며 고하여 이르기를, “하늘이 사람을 낼 때 어찌 헛되이 하겠습니까? 지금 제가 다행히 남자로 태어났으니 하늘이 반드시 부여한 바가 있어 저에게 이룰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하늘의 뜻이 여기에 있는데 제가 어찌 오늘 갑자기 요절함을 근심하겠습니까?”하니, 듣는 이가 비범하게 여겼다.
-'남명 조식' 편 중에서
율곡의 부음이 전해졌을 때 우계는 율곡과 주고받았던 편지를 꺼내들고 피울음을 토해내었다. 그 중 일부분만을 옮겨 온다. 아, 나는 실로 어리석고 혼몽하며 고질병까지 겹쳤습니다. 처음 형을 만나 다소 도(道)를 듣고는 스승으로 섬기려고까지 하였으니, 그렇다면 형에게서 얻은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근래에 늙어가면서 정의(情義)에 있어 서로 신뢰하여 더욱 깊어지고 학문이나 기술을 강론하고 연마함에 있어 서로 도움이 되어 더욱 절실해졌으니, 만약 형이 없었다면 내가 자립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중략) 옛날 편지를 다시 꺼내어 펴 보니, 나에게 벼슬하는 의리에 대해 간곡하게 말씀해 주었는데, 그 말씀이 깊고 간절하여 나도 모르게 편지를 쥐고 울었습니다. 형은 그토록 나를 머무르도록 하였으면서 자신은 어찌 머물지 아니한 채 돌아보거나 연연해함이 없이 차마 군부(君父)를 버리고 떠나간단 말입니까.
- '율곡 이이' 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