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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제

건륭제

(하늘의 아들, 현세의 인간)

마크 C. 엘리엇 (지은이), 양휘웅 (옮긴이)
  |  
천지인
2011-10-24
  |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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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제

책 정보

· 제목 : 건륭제 (하늘의 아들, 현세의 인간)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근세사(원~ 아편전쟁)
· ISBN : 9788993753196
· 쪽수 : 432쪽

책 소개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하면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장 화려한 성대를 이룩해낸 '건륭제'. 이 책은 국내 최초의 건륭제 평전으로, 하버드대학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 마크 C. 엘리엇 교수가 집필하였다. 저자는 방대한 중국의 성과를 두루 취합하고, 중앙아시아와 만주족의 역사에 대한 자신의 최신 연구 성과를 고루 반영하여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읽기 쉽게 정리하였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문

1. 준비된 황제
황제의 죽음
친황의 양육
젊은 홍력
군주가 될 운명
총애 받는 아들

2. 건륭, 보위에 오르다
새로운 황제
청조 지배영역의 개관
부친의 유산
첫 번째 단계
권위의 실험
황제의 일과표
변경에서 거둔 초반의 성과
통합정리자인가 혁신자인가?
건륭의 발자취를 찾아서

3. 가족, 의례, 왕조의 통치
효자
건륭과 그의 모후
황제와의 결혼
황후의 죽음
머리칼을 더 자르다
외로운 홀아비
자식들

4. 만주족 성공의 딜레마
성공의 저주
금조의 선례
만주족의 창조
만주족 점령의 딜레마
말의 힘
역사의 날조
주술적인 예식의 정비
전사의 길
진정한 남자를 위한 수렵
근본을 지키기

5. 여행하는 군주
여행의 정치학
다시 고향으로
불교의 순례자
열렬한 유학자
남순 여행

6. 제국의 건설
전투의 제왕
극서부 지역의 정벌: 첫 번째 중가르 전투
두 번째 중가르 전투
타림의 정복
제국의 한계
청조와 이슬람
승리를 비문에 새기다
승리를 지도로 만들다
승리를 그리다

7. 르네상스인
예술가의 초상화
시인
수집가
세상을 소유하다
학문의 후원자
검열자
사상적 견지

8. 청조 중국과 세계
외국과의 관계 및 조공체제
황제폐하의 특별한 신하들
멀리서 온 손님
그 무엇을 다 준다 해도!
매카트니 사절단
세계 속의 중국

9. 건륭 연간 말기의 질서와 쇠락
건륭연간 후반기의 제국
건륭과 티베트
인구와 경제
백성의 안녕을 보장하다
권위의 한계
화신과 지속되는 부패의 문제점
무기력한 중앙
최후의 행동

결론: 하늘의 아들, 세상의 인재

용어해설
건륭 연보
관련자료개관
후주
색인
옮긴이의 말

저자소개

마크 C. 엘리엇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시에서 태어났다. 예일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동아시아학과에서 석사, 캘리포니아-버클리(UC Berkeley)대학 역사학과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캘리포니아-산타 바버라(UC Santa Barbara)대학 역사학과 조교수·부교수를 거쳐, 미시건대학 역사학과 부교수를 역임했고, 2011년 현재 하버드대학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에서 교수(Mark Schwartz Professor)로 재직하며 중국사와 내륙아시아사를 가르치고 있다. 이른바 ‘신청사(新淸史, New Qing History)’ 학파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저자는 만주어를 연구의 자료로 활용하는 몇 안 되는 중국사 연구자 중 한 명이다. 지은 책으로는 『건륭제: 하늘의 아들, 현세의 인간(Emperor Qianlong: Son of Heaven, Man of the World)』 이외에도 『만주족의 청제국(The Manchu Way: The Eight Banners and Ethnic Identity in Late Imperial China)』, 『신청사: 청조 승덕에 내륙아시아의 제국 만들기(New Qing Imperial History: The Making of Inner Asian Empire at Qing Chengde, 공저)』, 『양홍기 문서: 동양문고 소장 청조 팔기의 연구가이드 및 자료목록(The Archives of the Bordered Red Banner: Research Guide to the Qing Eight Banners and Catalogue of Materials in the Toyo Bunko, 공편)』 등과 30여 편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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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휘웅 (옮긴이)    정보 더보기
1973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현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과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문을 계속 수학했으며,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번역기획공동체 ‘窓’의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성리학에서 고증학으로』, 『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 『삼국지 강의』(공역), 『사고전서』, 『황종희 평전』, 『건륭제』, 『만주족의 역사』, 『예교주의』, 『고대국가 부여의 역사: 고고학과 역사적 기억』(근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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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유럽의 역사에서 18세기는 독특한 중요성을 가진 시대로 널리 인식되었다. ‘계몽주의 시대’ 또는 ‘혁명의 시대’로 다양하게 묘사된 ‘장구한 18세기의 성세盛世’는 1600년대 말부터 1800년대 초까지 지속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시기 동안 유럽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구조는 두드러질 정도로 근대적인 형태를 나타냈다.
공교롭게도 18세기는 중국 역사에서도 매우 큰 의미를 가졌던 시대이다. 많은 측면에서 중국의 18세기는 유럽의 18세기와 비슷했다. 중국과 유럽의 18세기는 모두 성세였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했다. 18세기에는 중화제국이 500년 만에 가장 대규모로 팽창했고, 엄격한 방식으로 지식을 탐구하는 사조가 나타났으며, 문화가 꽃을 피우고, 대중적인 신앙 및 조직이 다양한 형태로 널리 퍼졌다. 마지막으로 중국인과 유럽인 사이의 접촉이 극적으로 증가하고, 중국과 서양 사이에서 최초의 근대적인 외교관계가 벌어진 것도 이 시기의 일이었다.


1772년에 황제가 승덕을 방문한 것은 운명적인 일이었다. 건륭은 목란木蘭으로의 여행 중에 거의 죽음을 맞을 뻔했는데, 이는 그의 일생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이 되었다. 목란은 정확히 몽골 스텝지대의 남쪽 가장자리이자, 승덕의 북쪽에 위치한 황제의 전용 수렵구역이었다. 목란 일대는 1683년에 청조와 동맹을 맺은 몽골족이 강희제에게 선물로 희사한 땅이었다. 수렵대회는 매년 초가을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만주족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수렵대회는 강희에게 굉장히 중요했으며, 후일 건륭에게도 중요하게 되었다. 모든 젊은이는 이 국가적 관습을 받들어야 했으므로, 강희는 건륭을 자신의 수행원에 포함시켜 손자의 재주를 특별히 입증하려 했다. 그렇게 하면 조정의 모든 사람들은 열한 살에 불과한 건륭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을 몰 능력이 있다는 점을 스스로 알 수 있었다. 건륭은 말 위에서 활을 쏘아 다섯 발을 모두 정확하게 명중시키는 장관을 연출했다. 황제는 무척 기뻐하며 황금색 마괘馬?를 하사했는데, 일반적으로 이러한 영예는 황제로부터 인정받는 훌륭한 신하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수렵구역 밖에서, 하마터면 비극이 덮칠 뻔했다. 강희는 자신의 산탄총散彈銃으로 곰을 쏘아 맞힌 다음, 건륭에게 화살로 그 곰을 해치우라고 명령했다. 강희는 이렇게 함으로써 소년 건륭을 금의환향錦衣還鄕하게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건륭이 말에 올라타 부상당한 곰에 가까이 접근하자, 곰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그에게 달려들었다. 겁에 질린 황제는 재빨리 한 번 더 총을 쏘아 그 동물을 완전히 처치했다. 그런 다음 손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걱정스레 돌아봤을 때, 손자는 여전히 말안장 위에 침착하게 앉아 고삐를 쥔 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있었다. 다급한 상황에서 보인 소년의 침착함은 강희가 연출할 수 있었던 그 무엇보다도 더 인상적이었다. 그날 오후 막사로 돌아온 황제는 흥분했지만, 건륭이 다가올 때까지 곰이 기다리지 않았던 것에 안도하며 자신을 수행하던 한 비빈妃嬪에게 “이 아이는 참으로 귀중한 운명을 타고났구려!”라고 말했다.


건륭이 소년이었을 때에는 모친과의 접촉이 매우 제한적이었을 개연성이 아주 높으며, 그녀가 건륭을 가르친 내용에 관해서도 알려진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러나 이것이 모친에 대한 그의 애정을 감소시킨 것 같지는 않으며, 또한 그가 모친에게 모든 가능한 존경의 징표를 수여하고 영예로운 직함을 아낌없이 하사하는 것도 막지 못했다. 그가 황위에 오른 순간부터 1777년에 84세를 일기로 모후가 사망한 42년간, 그는 모후를 성실히 봉양했다. 거의 매일 아침 일찍 그는 모후에게 문안인사를 드렸고, 멋진 선물을 올렸으며, 지칠 줄 모르는 배려와 헌신으로 모후의 입맛과 기호에 맞는 음식을 진상했다. 불교에 대한 모후의 독실한 신앙심을 알고 있는 그는 모후를 위해 특별한 사찰을 세운 후 사찰 안에 탱화와 불교 관련 물품을 채워 넣었다. 여기에는 불교의 모든 신을 망라하는, 787좌座의 환상적인 불상도 포함되었다. 모후가 사망하자, 그는 불교적 관습에 따라 모후가 수년간 모아온, 빠진 머리카락을 보관하기 위해 티베트 양식의 성해함聖骸函을 만들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스투파 형태의 물체는 전부 금과 은으로 제작되었다. 237파운드(107.5킬로그램)의 무게가 나가지만 높이는 20인치(53센티미터)에 불과한 이 물건은 오늘날 궁중의 수장품 중에서도 가장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물품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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