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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키우는 성장소설 두 번째 이야기

마음을 키우는 성장소설 두 번째 이야기

김동리, 김동인, 김유정, 이상, 현진건 (지은이), 그래작가 (그림)
  |  
꿈꾸는사람들
2010-10-11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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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키우는 성장소설 두 번째 이야기

책 정보

· 제목 : 마음을 키우는 성장소설 두 번째 이야기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고전
· ISBN : 9788994136394
· 쪽수 : 192쪽

책 소개

한국 문학을 빛낸 주옥같은 단편 성장소설들을 모았다. 김동인의 '감자', 김동인의 '배따라기',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김유정의 '만무방', 김동리의 '화랑의 후예', 이상의 '날개'가 수록되어 있다.

목차

1권

소나기_황순원
별_황순원
동백꽃_김유정
봄봄_김유정
메밀꽃 필 무렵_이효석
사랑 손님과 어머니_주요섭

2권

감자 _ 김동인
배따라기 _ 김동인
운수 좋은 날 _ 현진건
만무방 _ 김유정
화랑의 후예 _ 김동리
날개 _ 이상

저자소개

김동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3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1933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가 당선되고, 1935년과 1936년에는 각각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신춘문예에 소설 「화랑의 후예」와 「산화(山火)」가 당선되었다. 1953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취임하였다. 아세아자유문학상(1955), 대한민국예술원상(1958),3·1문화상(1967), 국민훈장 동백장(1968), 서울특별시문화상(1970)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등신불』 『무녀도』 『황토기』 『귀환장정』 『사반의 십자가』 등이 있다. 1995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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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기독교 학교인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7년 일본 유학 중 이광수(李光洙), 안재홍(安在鴻) 등과 교제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24년 폐간된 [창조]의 후신 격인 동인지 [영대]를 창간했다.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삼천리]에 「광염 소나타」를 발표했다. 1932년 [동광]에 「발가락이 닮았다」, [삼천리]에 「붉은 산」을 발표하였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조선일보에 학예부장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고 1935년 월간지 [야담]을 발간하였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다 마약 중독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던 중 1939년 ‘성전 종군 작가’로 황국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 불경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친일소설「성암의 길」을 발표하였다. 1948년 장편 역사소설『을지문덕』과 단편「망국인기」를 집필하던 중 생활고와 뇌막염, 동맥경화로 병석에 누우며 중단하고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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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8년 1월 11일, 우리나라 최초의 인명(人名) 기차역인 ‘김유정역’이 있는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그로서는 안타깝게 차남으로 태어난다. 1914년, 유정 일가는 서울 진골(현 종로구 운니동)의 1백여 칸짜리 저택으로 이사하는데, 셋째 누이 김유경은 이곳을 유정의 출생지로 증언한다. 1915년 어머니가, 2년 뒤인 191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된다. 9살, 유정은 아직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가장이 된 형 유근은 동생을 돌보는 대신 주색잡기에 빠져 산다. 유정은 책상 위에 놓인 어머니 사진을 들여다보곤 하며, 친구들에게 어머니가 미인임을 자랑하기도 하며, 횟배를 자주 앓으며 소년기를 보낸다. 1929년, 한 번의 휴학을 거쳐 휘문보고를 졸업한다. 그동안 형의 금광 사업 실패와 방탕한 생활로 가세는 몰락한다. 193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지만 결석으로 인해 곧 제적당한다. 스스로는 더 배울 것이 없어 자퇴했다고 했지만. 이후 얼마간의 방랑 생활을 거친 후 귀향, 야학당을 여는 한편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를 조직 농촌계몽 활동을 벌인다. 그 와중 늑막염이 폐결핵으로 악화한다. 1933년, 서울로 돌아온 유정은 누나들 집을 전전하며 폐결핵을 견뎌야 하는 삶을 산다. 그런 유정을 안타까워하던 친구 안회남이 소설 쓰기를 권유, <산골 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를 연이어 발표한다. 그리고 1935년, <조선일보>와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와 <노다지>가 각각 1등과 입선으로 당선, 문단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정식으로 등단한다. 이후 1937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소설 30편, 수필 12편, 그리고 번역 소설 2편을 남긴다. 죽기 한 해 전인 1936년 가을, 이상으로부터 “유정!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일개 요물에 부상당해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불우한 천재가 되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라는 동반자살 제의를 받지만,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라는 말로 거절한다. 하지만 이듬해 3월 29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살을 먼저 제의한 이상보다 19일 먼저. 사인은 둘 모두 폐결핵. 같은 해 5월 15일, 요절한 두 천재의 죽음을 기리는 합동 추도식이 치러진다. 발기인은 이광수, 주요한, 최재서, 정지용, 이태준, 박태원, 그리고 안회남 등 25명. 1938년, 김유정의 첫 책이 삼문사에서 출간된다. 제목은 《동백꽃》. 죽기 열하루 전, 번역으로 “돈 100원을 만들어볼 작정”을 한 유정은 안회남에게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탐정소설 두어 권을 보내줄 것을 편지로 요청한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며. “책상 위에는 ‘겸허(謙虛)’라는 두 글자”를 커다랗게 써 붙여놓은 채. 스물아홉의 피 끓는 삶에의 몸부림과 죽음에 대한 겸허한 자세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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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지은이)    정보 더보기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언제나 우리를 앞질러 나가는 작가.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해경이다. 화가를 지망하였으나 경성 고등 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한다.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세부터 조선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에서 건축 기사로 일했다. 1930년 잡지 『조선』에 장편 소설 「12월 12일」을 연재하며 문단에 등장했다. 1931년 건축 잡지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 시 「이상한 가역반응」 등 20여 편을 발표한다. 이후 직접 다방 <제비>를 운영하며 구인회 구성원이었던 이태준, 김기림, 박태원 등과 교류하며 친목을 쌓았고, 1934년 정식으로 구인회 멤버가 된다. 같은 해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삽화가로 참여하는 동시에 「오감도」를 연재했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거센 반발을 받아 연재가 중단되었는데, 그럼에도 문단에서는 새로운 형식적 실험으로서 높이 평가했다. 1936년 변동림과 결혼 후, 요양을 목적으로 홀로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듬해 <불령선인>이라는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 및 구금되었고, 폐결핵을 앓던 그의 병세가 악화된다. 결국 1937년 도쿄 제국 대학 부속 병원에서 27세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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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북 대구 출생이며, 호는 빙허(憑虛)이다. 1915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세이조 중학 4학년을 중퇴하고 상해로 건너가 후장 대학에서 수학한 뒤, 1919년 귀국하였다. 1920년 『개벽』에 「희생화」를 발표함으로써 문필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21년 「빈처」로 문명을 얻었다. 같은 해 조선일보에 입사함으로써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으며, 『백조』 창간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재직 당시, 일장기 말살 사건으로 인하여 동아일보를 떠난 후, 소설 창작에 전념하였다. 빈궁 속에서도 친일 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1943년 장결핵으로 죽을 때까지 장·단편 20여 편과 7편의 번역 소설, 그리고 여러 편의 수필과 비평문 등을 남겼다. 작품 경향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사실주의 계열로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자전적 신별 소설과 하층민의 민족적 현실에 눈을 돌린 소설, 역사 소설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작품으로는 장편 「무영탑」과 「적도」를 비롯하여 단편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 「운수 좋은 날」 등 다수가 있으며, 창작집 『조선의 얼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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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작가 (그림)    정보 더보기
좋은 그림으로 아이들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그림으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도록 공부하며, 언제나 밝고 즐겁게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여자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우리는 김말이와 떡볶이》 《어린이를 위한 내 몸 사용 설명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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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옥희야, 이것 내다 버려라."
하고 그 마른 꽃을 내게 주었습니다. 그 꽃은 내가 유치원에서 갖다가 어머니께 드렸던 그 꽃입니다. 그러자 옆대문이 삐걱하더니,
"달걀 사소."
하고 매일 오는 달걀 장수 노파가 달걀 광주리를 이고 들어왔습니다.
"인젠 우리 달걀 안 사요. 달걀 먹는 이가 없어요."
하시는 어머니 소리는 맥이 한 푼어치 없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이 말씀에 놀라서 떼를 좀 써 보려 했으나, 석양에 빤히 비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볼 때 그 용기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저씨가 주신 인형 귀에다가 내 입을 갖다 대고 가만히 속삭이었습니다.
"얘, 우리 엄마가 거짓부리 썩 잘 하누나. 내가 달걀 좋아하는 줄 알면서 먹을 사람이 없대누나. 떼를 좀 쓰고 싶다만 저 우리 엄마 얼굴 좀 봐라. 어쩌면 저리도 새파래졌을까? 아마 어데가 아픈가 부다."
라고요.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 중에서


열네 살의 소년이 된 아이는 뒷집 계집애보다 더 이쁜 소녀와 알게 되었다. 검고 맑고 깊은 눈하며, 깨끗하고 건강한 볼, 그리고 약간 노란 듯한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숱한 향기. 아이는 소녀와 함께 있으면서 그 맑은 눈과 건강한 볼과 머리카락 향기에 온전히 홀린 마음으로 그네를 바라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소녀 편에서는 차차 말없이 자기를 쳐다보기만 하는 아이에게 마음 한구석으로 어떤 부족함을 느끼는 듯했다.
하루는, 아이와 소녀는 모란봉 뒤 한 언덕에 대동강을 등지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언덕 앞 연보랏빛 하늘에는 희고 산뜻한 구름이 빛나며 떠가고 있었다.
황순원의 〈별〉 중에서


저쪽 갈밭머리에 갈꽃이 한 옴큼 움직였다. 소녀가 갈꽃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천천한 걸음이었다. 유난히 맑은 가을 햇살이 소녀의 갈꽃머리에서 반짝거렸다. 소녀 아닌 갈꽃이 들길을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소년은 이 갈꽃이 아주 뵈지 않게 되기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문득, 소녀가 던진 조약돌을 내려다보았다. 물기가 걷혀 있었다. 소년은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황순원의 〈소나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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