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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94207377
· 쪽수 : 160쪽
책 소개
목차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밝혀두기
옮긴이의 글
사뮈엘 베케트 연보
리뷰
책속에서
차가운 조명 속 탁자 위에 드러나는 것은 창백한 몸 하나, 충족되었거나 제지된 몇 가지 욕망, 이러저러한 만남, 그리고 침묵하거나 혹은 가장 평정한 상태에서 환희를 느끼는 몇몇의 혼란된 방식들이다. 사뮈엘 베케트라는 이름 아래 조직되었다가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 말 없는 삶들의 일시적인 장면을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가. 그처럼 몇 안 되는 잔해들, 재의 가루들, 잔존하며 글쓰기에 대해 말하고자 기를 쓰는 그 작은 더미를 어떻게 배열해낼 것인가. (비록 베케트 자신은 텍스트만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유일한 지표라고 누누이 말하곤 했지만) 단지 텍스트뿐만 아니라 글을 쓴다는 그 특정한 제스처, 탐구와 노력, 쓸 때의 의구심, 또는 심지어 그것이 주는 기쁨과 같은 것들을 과연 어떻게?
처음에 그는 고개를 수그린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가 몸을 일으키자 돌로 만들어진 듯한 그 커다란 몸이, 독수리 같은 시선을 한곳에 고정하는 것으론 가히 챔피언이라 할 사람이 돌연 무한한 섬세함을 발하며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머리의 축이 끊임없이 이동하고 목덜미가 기울면서 아름다운 선율 같은 궤적이 그 얼굴에 떠오르는 모든 상태를 하나로 조직한다. 이후의 또 다른 영상을 보면 역광 속에 거의 춤추는 듯한 자세로 성큼성큼, 어깨를 움직이며 느리지만 가볍고 자유로운 발걸음으로 멀어져가는 그의 긴 실루엣이 나타난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내적인 공허의 통어, 그리고 반추의 완벽함 및 그것의 일시적 정지가 그의 모습에서 확인된다. 몽파르나스 대로에서 우연히 베케트를 본 사람들은 뭐라 말했나. 그들 역시 활기와 심각함이 공존하는 그토록 특이한 자질, 그리고 마침내 제 영혼과 합치된 몸의 은총을 그에게서 발견했노라는 증언을 남긴다.
드디어 자신의 불행을 발견하기에 이를 때, 그때 그는 고요한 원동력을 발휘하며 그 안에 정착하리라. 그리고 전과 전혀 다른 목소리, 마침내 찾은 자신만의 목소리가 낯선 언어, 자기 자신에게 낯설어지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언어 속에서 들려오도록 하리라. "바로 이것이로구나, 너절함아, 내 곁에 자리 잡으려무나, 무너짐아, 그래서 더 이상 어느 누구도, 떠나야 할 세계도, 도달해야 할 세계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그래서 세상들이, 사람들이, 말이, 불행이, 그러니까 불행이 다 끝나버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