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96018926
· 쪽수 : 560쪽
책 소개
목차
서문
바보들의 결탁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이 도시로 말하자면 문명세계 언어도단의 죄악들이 죄다 모인 총본산인데, 경찰의 임무라는 게 기껏 나를 괴롭히는 거란 말입니까?” 이그네이셔스가 백화점 앞에 서 있는 군중이 다 듣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이 도시는 도박꾼, 매춘부, 노출증 환자, 그리스도의 적, 알코올중독자, 동성애자, 마약중독자, 성도착자, 자위하는 자, 포르노 제작자, 사기꾼, 헤픈 여자, 쓰레기 무단 투기자, 레즈비언 등등으로 악명 높은 곳인데, 이런 인간들은 죄다 뇌물을 먹인 대가로 분에 넘치는 보호를 받고 산단 말입니다. 어디 시간 괜찮으면 범죄문제를 함께 논의해드리지요. 하지만 공연히 나를 건드리는 실수는 안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중세학자로서 이그네이셔스는 중세사상의 기반을 닦은 철학서인 『철학의 위안』에서 핵심 개념으로 등장하는 로타 포르투나이rota Fortunae, 즉 ‘운명의 바퀴’를 믿고 있었다. 보에티우스, 황제의 총애를 잃고 부당한 옥살이를 하는 동안 『철학의 위안』을 쓴 로마 말기의 이 철학자는 눈먼 여신이 우리를 바퀴 위에 올린 채 돌리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의 운명은 행운과 불운이 주기적으로 번갈아 찾아든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가 체포될 뻔했던 황당무계한 사건은 바로 불운의 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었을까? 그의 바퀴는 지금 급속히 아래로 회전하고 있는 걸까? 차 사고 역시 나쁜 징조였다. 이그네이셔스는 걱정이 되었다. 그 위대한 철학에도 불구하고 보에티우스는 결국 고문당하고 처형되지 않았던가. 그 순간 유문이 또 철썩 닫혔고, 이그네이셔스는 왼쪽 옆구리를 침대에 대고 풀쩍 풀쩍 구르며 어떻게든 유문을 열어보려 안간힘을 썼다.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해야 할 사항이 있다. 내가 만연히 대학원에 다니고 있을 무렵, 어느 날 커피숍에서 머나 민코프 양이라는, 뉴욕 브롱크스 출신의 시끄럽고 무례한 어린 학부 여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그랜드 콘코스라는 세계에서 날아온 이 전문가는 나라는 존재의 독특함과 매력에 이끌려 내가 주관하고 있던 어전회의 석상으로 다가왔다. 내 세계관의 장엄함과 독창성이 대화를 통해 명명백백 드러나자 민코프라는 이 불여우는 모든 차원에서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어느 시점에선 테이블 밑에서 내 정강이를 냅다 걷어차기까지 했다. 나란 존재는 그녀를 매혹하는 동시에 혼란에 빠트렸다. 한마디로 난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차원의 남자였던 것이다. 고담 시 게토의 편협성이 그녀로 하여금 ‘여러분의 근로 청년’ 같은 독창적 남성을 상대하게끔 준비시켰을 리 만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