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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외국 과학소설
· ISBN : 9791194979821
· 쪽수 : 664쪽
· 출판일 : 2025-10-28
책 소개
전 세계가 주목한 SF 문학의 눈부신 역작
★★★★★ 존 W. 캠벨 기념상 수상
★★★★★ 아서 C. 클라크상 최종 후보
★★★★★ 영국SF문학상 최종 후보
방대한 분량과 거대한 서사적 스케일,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유럽’이라는 배경에서 오는 심리적 거리감에도 “진짜 미친 책”, “결말을 보기 위해 새벽까지 달렸다”, “반드시 이름을 기억해놓아야 할 작가” 등의 찬사를 끌어내며 독자를 매료시킨 시간 여행 SF 스릴러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이 반타에서 재출간되었다. 기억과 정체성, 과학과 윤리의 문제를 심층적인 구성으로 다뤄 세계 유수 언론의 찬사를 받았으며 세계 3대 SF 문학상으로 꼽히는 존 W. 캠벨 기념상을 수상하고 아서 C. 클라크상 및 영국SF협회상 최종 후보에 오른 이 작품은 국내 출간 이후 입소문으로 꾸준히 사랑받아 지속적인 재출간 요청이 이어져 왔다.
삶의 끝없는 루프에 갇힌 해리 오거스트. 어떻게 살고 죽어도 그는 다시 1919년 1월 1일 기차역 여자 화장실로, 그가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나던 순간으로 돌아온다. 신앙과 학문을 탐구하며 존재의 해답을 갈구하고 자신과 똑같이 생을 반복하는 사람들과 교류해도 해리 오거스트는 삶의 무기력에서 탈출할 수 없었고 지독하게 외로웠으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열한 번째 죽음의 날, 한 소녀가 찾아와 천 년 후 미래 세대의 메시지를 전한다. “세계가 끝나고 있고, 우리는 종말을 막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박사님께 달려 있어요.” 이 전언으로부터 그의 삶은 급격한 전환을 맞는다.
“해리 오거스트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또다시.
그리고 태어났습니다, 모든 기억을 가진 채로 또다시.”
해리 오거스트는 1919년 1월 기차역 여자 화장실에서 태어났다. 죽은 생모 대신 양부모의 손에 길러져 귀족 영지의 장원 관리인으로 살다가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숨을 거둔다. 평범한 인생, 그러나 이전 생의 기억을 전부 가진 채 1919년 1월 기차역 여자 화장실에서 다시 태어났을 때 해리 오거스트는 자신이 미쳤다고 확신한다. 두 번째 생은 일곱 살 나이에 정신병원 3층에서 몸을 던져 자살로 마감한다. 그리고 또다시 태어난 세 번째 인생부터 해리 오거스트는 앞으로도 끝없이 반복될 자신의 운명에 대비하기 시작한다. 종교, 생물학, 물리학, 철학 등의 주제에 천착하며 거듭되는 인생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던 해리 오거스트는 이윽고 자신과 똑같이 반복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 ‘칼라차크라’와 그들이 창설한 집단 ‘크로노스 클럽’의 존재를 알게 되고, 복잡성을 이유로 역사에 개입하는 것을 금하는 크로노스 클럽의 가르침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는 능력을 이용해 인류의 미래를 완전히 바꾸려는 자가 나타난다. 빈센트 랜키스, 해리 오거스트의 제자이자 진정한 친구, 그리고 평생의 숙적이 될 남자였다. 무한한 시간이 주어졌기에 더 이상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크로노스 클럽 멤버들에게 알 수 없는 회의감을 느끼던 해리는, 미래의 과학 이론을 현재 시간대에 도입해 기술 발전을 촉진시켜 우주를 완벽히 이해하고 일종의 ‘신’이 되고자 하는 빈센트의 야망에 매혹당한다. 그러나 이 한순간의 선택은 크나큰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곧 빈센트와 대립하여 인류의 운명을 건 싸움을 시작하게 되는데…….
존재의 해답을 찾기 위한 철학적 서사시이자
종말을 둘러싼 시간 여행 SF 스릴러
저자 클레어 노스는 이 소설에서 끝없이 같은 생을 반복해서 사는 ‘칼라차크라’들의 사회와 그들이 창설한 집단 ‘크로노스 클럽’을 중심으로 독창적인 세계관을 창조해 냈을 뿐 아니라 흘러가는 역사를 그대로 두려는 자와 변화시키려는 자의 치열한 대립을 예측 불가능하게 그려내고, 현대 과학기술이 도입된 근대 유럽의 풍경을 놀라운 상상력으로 담아냈다. 또한 인류의 미래를 걸고 싸우는 주인공 해리와 그 숙적 빈센트의 교묘한 수싸움을 통해 결말을 보기 전까지는 책장을 덮을 수 없는 스릴러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서로의 유일한 이해자이자 최고의 친구이며 동시에 최악의 숙적인 해리와 빈센트의 입체적인 관계는 감상에 재미를 더한다.
클레어 노스는 모든 기억을 간직한 채 인생을 다시 산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거머쥘 것이라는,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본 환상에 디스토피아적 대답을 들려주는 동시에 기술 진보에 따르는 윤리적 책임과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은 어디서 존재의 위로를 찾아야 하는지에 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진다. 또한 지식이나 불멸, 부와 같은 ‘능력’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향한 사랑과 이해, 세상에 대한 탐구심, 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인간다운 욕망과 감정이야말로 우리 삶을 지탱하는 동기임을 강조한다.
사유의 문제를 과학으로 풀어내고 서정적으로 구현한
SF 문학의 뛰어난 성취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은 ‘이야기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순간 절대 멈출 수 없다’는 독자평이 대다수를 차지할 만큼 무서운 흡인력을 보여주는 페이지터너 소설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 서사적 완성도는 심오하고 정교하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유럽을 배경으로 국제 정세와 양자물리학, 칼라차크라들의 가치 대립과 존재론적 질문 등 방대한 지식과 철학적 탐구가 이야기 곳곳을 채우고 있음에도 이 소설이 그리 어렵거나 차갑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인간을 향한 연민, 고독, 쓸쓸함과 같은 정서가 작품 저류에 흐르기 때문이다. 클레어 노스는 아무리 살고 죽어도 또다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태어나 생을 반복해야 하는 ‘칼라차크라’의 권태로운 내면을 건조하고 절제된 문체로 실감 나게 표현하고, 억겁의 시간을 살아도 여전히 영혼을 짓누르는 기억의 무게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불사에 가까운 생명을 가진 칼라차크라조차 엄혹한 시간의 흐름 앞에서 근본적으로 무력하며, 육신은 안락을 누려도 자기 삶을 구원하거나 역사의 비극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나 해리 오거스트는 한없이 누적되는 세월의 피로에 메말라가면서도 무엇이 인간다운 것인지 고민하고 또 자기 존재 이유를 갈망한다. 어차피 리셋되고 마는 이 세상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시도라 할지라도 자기 삶에서만큼은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 한다. 절제된 독백과 형이상학적 통찰, 애틋한 정서의 절묘한 결합이 자아내는 지적 서정성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으로 꼽힌다.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은 장르적 긴장감과 사유의 깊이, 언어적 품격을 모두 달성한 보기 드문 작품이다.
목차
서장
1장~82장
역자 후기
책속에서

“세계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년 동안 인류는 과거 2000년 동안 이룩한 것보다 훨씬 더 파격적인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종으로서 문명으로서 인간 진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어요. 이 과정을 관장하는 게 우리의 일입니다. 좋은 사람들이 떠맡아야 하는 일이란 말입니다. 이 역사의 과정을 안내해서 우리가 더 이상 헛짓을 해서 망쳐버리거나 재앙을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단 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또 발발하기를 원하는 겁니까? 홀로코스트가 또 일어난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상황을 바꿀 수 있어요, 더 낫게 만들 수 있단 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미래를 관장할 자격이 있다고 자신하십니까?”
“빌어먹을, 그래요!” 그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씨발 내가 민주주의의 수호자니까요! 씨발 나는 자유의 신봉자고 씨발 선한 심장을 가진 선한 사람이고 씨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렇습니다!”
“젊다는 걸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서른 살 이하에게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일들이지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거든요.”
그의 말들이 순간적으로 내 마음을 찡하게 울렸다. 나 역시 25년 동안의 지루한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자네는 시간에 관심이 있나?”
“복잡성과 단순성.” 그가 대답했다. “시간은 단순하다면 단순합니다. 우리는 시간을 단순한 부분들로 나눠서 측량하고 거기 맞춰 식사를 준비하고 그 흐름에 맞춰 위스키를 마시지요. 우리는 수학적으로 시간을 배치하고 관찰 가능한 우주에 대한 관념을 표현하는 데 그 시간을 활용할 수 있지만 아이에게 단순한 언어로 설명하라는 요구를 받으면(물론 기만이 아닌 단순한 언어 말입니다) 무력해져 버려요. 우리가 시간을 가지고 기껏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시간을 허비하는 것뿐인 것 같단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