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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

바보들의 결탁

(40주년 기념판)

존 케네디 툴 (지은이), 김선형 (옮긴이)
  |  
연암서가
2021-12-25
  |  
18,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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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

책 정보

· 제목 : 바보들의 결탁 (40주년 기념판)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60870893
· 쪽수 : 555쪽

책 소개

40년이 흐른 지금도 『바보들의 결탁』의 걸출한 위트와 진탕한 부조리는 여전히 새로운 독자들을 매료하고 있다. 문학적 비주류 감성의 이 코미디 걸작은 무려 24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2천만 권 이상 팔렸다.

목차

서문_워커 퍼시

바보들의 결탁

옮긴이의 말_김선형

저자소개

존 케네디 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7년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튤레인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을 밟던 중 미 육군에 징집되어 복무하게 되면서 『바보들의 결탁』을 쓰기 시작하여 제대 후 뉴올리언스로 귀향해 원고를 완성시켰으나, 이를 받아본 유명 출판사 사이먼 앤 슈스터는 출간을 거절한다. 이어지는 원고의 수정과 출판사들의 퇴짜, 그리고 어머니와의 불화로 그는 점차 심한 우울증과 편집증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1969년 그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의 사후 어머니 셀마 툴이 원고를 들고 백방으로 나섰지만, 상업적 성공을 기대할 수 없었던 출판사들은 줄줄이 출간을 거절한다. 이런 상황에서 셀마는 작가 워커 퍼시를 막무가내로 찾아가 원고를 내밀었고, 작품의 가치를 알아본 퍼시의 중재로 1980년, 작가 사후 11년 만에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책은 출간 즉시 ‘코믹 소설의 걸작’이란 평가와 함께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006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지난 25년간 출간된 최고의 미국 소설’에는 토니 모리슨을 위시한 쟁쟁한 대가들의 작품에 이어 여섯 번째로 많은 지지를 얻었다. 인정받지 못한 천재 작가의 죽음과 유작 원고의 출간에 얽힌 비화, 이러한 이중적 비극을 극복하고 탄생한 『바보들의 결탁』은 지금껏 전 세계의 열혈 독자들로부터 컬트적인 사랑을 받으며 당당히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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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 (옮긴이)    정보 더보기
르네상스 영시와 현대 영미 드라마를 공부해 서울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패티 스미스의 『M 트레인』, 토니 모리슨의 『솔로몬의 노래』,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수전 손택의 『다시 태어나다』, 시리 허스트베트의 『내가 사랑했던 것』,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 등 다수의 소설과 에세이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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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초록색 사냥모자가 살덩어리 풍선 같은 머리통 윗부분을 쥐어짜듯 꾹 덮고 있었다. 모자에 달린 초록색 귀마개는 커다란 귀와 텁수룩한 머리카락과 귓속에 자라난 빳빳한 솜털을 덮느라 양방향을 동시에 가리키는 방향지시등처럼 양쪽으로 불룩 솟아 있었다. 북슬북슬한 검은 콧수염 밑으로는 두툼한 입술이 일자로 앙다문 채 툭 불거져 있었고, 양쪽 입아귀는 불만스러운 기색과 포테이토칩 부스러기가 덕지덕지 달린 잔주름이 되어 쑥 꺼져 있었다. 초록색 모자챙이 드리운 그늘 아래, 이그네이셔스 J. 라일리의 거들먹거리는 파랗고 노란 두 눈이 D. H. 홈스 백화점 시계 밑에서 저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군중을 내려다보며 어디 저질의 패션 취향을 드러내는 구석이 없나 한 사람 한 사람 꼼꼼히 뜯어보고 있었다. 개중에 취향과 품위에 위배될 만큼 확연히 새 옷 티가 나거나 값비싸 보이는 옷들이 몇 벌 이그네이셔스의 눈에 띄었다. 뭐든 새것이나 비싼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건 신학과 기하학에 대한 그 사람의 무지를 드러낼 뿐이며, 심지어 그 영혼이 불온하다는 의심까지 불러일으킬 만한 증거였다.


이그네이셔스가 코끼리 같은 몸짓으로 육중한 엉덩이를 한쪽씩 들썩이며 쿵 쿵 제자리걸음을 걷자 부픗부픗한 살들이 트위드 바지와 플란넬 셔츠 밑에서 잔물결을 일으켰고, 그 잔물결은 구석구석의 단추와 솔기로 자르르 밀려간 뒤 부서졌다. 이렇게 자세를 고친 후, 그는 자기가 지금 어머니를 얼마나 오래 기다리고 있었는지 곰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생각이 꽂히는 주요 지점은 조금 전부터 슬금슬금 느껴지기 시작하는 육체의 불편함이었다. 자신의 전 존재가 퉁퉁 불은 스웨이드 사막부츠 안에서 터져버릴 것만 같았는데, 그걸 확인이라도 하려는지 이그네이셔스는 기이한 두 눈을 아래로 돌려 발을 내려다보았다. 발은 정말로 퉁퉁부은 모양새였다. 그는 어머니가 자기한테 얼마나 무신경한 짓을 했는지 보라며 이 불룩한 사막부츠를 증거로 내밀 심산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커낼 거리 저 너머 미시시피 강 위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홈스 백화점 시계는 거의 다섯 시를 가리켰다. 벌써부터 그는 용의주도하게 단어를 고르고 골라 어머니에게 퍼부을 비난의 문장을 다듬고 있었다. 후회하게 만들거나, 그게 안 되면 혼이라도 쏙 빼놓을 작정이었다. 어머니가 분수를 깨닫도록 자주자주 쓴소리를 해줘야 했다.


역사적 통찰이 일시적으로 흐려지자, 이그네이셔스는 노트 아래쪽 여백에 올가미 하나를 슥슥 그렸다. 그리고 리볼버 권총과 작은 상자를 그려 넣고 상자 위에 또박또박 ‘가스실’이라고 적었다. 그는 또 종이 위에 연필을 뉘인 채 가로로 왔다 갔다 칠을 하더니, 이것을 ‘묵시록적 재앙’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런 식으로 한 페이지를 꾸미고 나자, 이젠 이 노트를 방바닥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다른 노트들 사이로 툭 내던졌다. 아주 생산적인 아침이로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몇 주 만에 거둔 최고의 성과였다. 침대 주변 바닥을 온통 인디언 추장의 머리장식으로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빅치프 노트 수십 권을 바라보며, 이그네이셔스는 누렇게 바랜 페이지마다, 줄 간격 넓게 그인 선마다 그 속에 비교역사학 분야의 장대한 연구업적이라는 대망의 맹아가 움트고 있다는 생각에 우쭐해졌다. 물론, 지금은 뒤죽박죽, 전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처럼 파편화된 지성의 조각들을 한데 모아 대단히 웅장한 디자인의 지그소 퍼즐을 완성하고야 말 것이다. 그때 이 완성된 조각그림은 세계의 지성인들에게 지난 사 세기에 걸쳐 인간의 역사가 그려온 대재앙의 궤적을 한눈에 보여주게 될 것이다. 이 과업에 바친 지난 오 년의 세월 동안 그는 매달 평균 겨우 여섯 단락밖에 써 내려가지 못했다. 심지어 어떤 노트에 쓴 글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고, 나중에 보니 몇 권은 쓸데없는 낙서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이그네이셔스는 차분히 생각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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