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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어소리

목어소리

(타이완 현대소설선 2)

예스타오, 라이허, 우줘류, 종리허, 종티에민, 쑹져라이, 종쟈오졍, 왕투어 (지은이), 김상호 (옮긴이)
  |  
한걸음더
2009-02-06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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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어소리

책 정보

· 제목 : 목어소리 (타이완 현대소설선 2)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기타 국가 소설
· ISBN : 9788996100485
· 쪽수 : 236쪽

책 소개

시사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타이완 대표적인 작가들의 단편소설 8편을 엮은 책. 표제작인 예스타오의 '목어(木魚)소리'는 전쟁의 상처를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시대적 고민과 그 속에 갇힌 개인이 인간 본연의 행복추구와 존엄성에 모든 것을 건 치열한 삶의 방정식을 풀어간 작품이다.

목차

서 문
목어(木魚) 소리 / 예스타오
저울 한 개 / 라이허
물 속의 달 / 우줘류
가난한 부부 / 종리허
배웅자 / 종티에민
난 벚꽃나무 아래의 노파를 보았다 / 쑹져라이
백로의 노래 / 종쟈오졍
무덤의 종소리 / 왕투어
역 자 후 기

저자소개

예스타오 (지은이)    정보 더보기
대만 타이난 시 태생으로 유년시절 2년간 한문 계몽교육과 8세 때 공립학교에 들어가 일본어 교육을 받았다. 중3때 첫번째 일본어소설 '마주'를 집필하며 문학의 길을 향한 첫발을 내딛었다. 타이난 제2고등학교 졸업 후 타이베이 '문예대만' 잡지사의 편집을 맡으며 정식으로 집필활동을 시작했다. 1945년 초 강제징집돼 일본제국 육군 이등병으로 복무하다가 같은해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자 9월 고향으로 돌아갔다. 광복 후 46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했다. 1951년 "반정부 인사를 알면서도 고발하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5년형을 선고 받아 3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문학생애에서의 공백기를 거쳐 1965년 타이난 사범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며 평론 '대만의 향토 문학'을 발표, 평론가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문학평론을 발표하다가 1987년 대만문학사강'을 완성했다. 이는 대만 출신이 최초로 쓴 문학사로 그 의미가 크다. 1999년 청꿍대학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 2001년 국가문예상 등의 수많은 상을 받으며 대만문학의 대가로 불렸다. 소설로는 '식민지의 사람들'과 '대만남자 젠아타오'등 다수, 문학평론과 산문, 번역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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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허 (지은이)    정보 더보기
20세기 초 타이완에서 시대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문화와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지식인 중 한 명이자 타이완에 대한 일본의 식민 지배 역사와 일생을 거의 함께했던 인물이다. 라이허는 청나라 광서(光緖) 20년 5월 28일 장화(彰化)에서 태어났으며, 1895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의 패배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일본제국의 식민지 신민이 되었고, 일제 당국에 의해 두 차례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후 타이완이 해방되기 직전인 1943년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본명은 라이허(賴河)이고, 한의사 집안에서 자라면서 한문을 포함해서 전통교육을 받는 한편 신식 학교를 다닌 끝에 타이베이에 있던 타이완 총독부 의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약간의 수습 기간을 거쳐 1917년 고향 장화에서 병원을 개업했으며, 이듬해부터 1년여 동안 샤먼(厦門)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기도 했으나 곧 타이완으로 돌아와 평생 고향 사람들에게 헌신했다. 당시 장화 사람들은 그를 삼국지에 나오는 화타처럼 추앙했고, 그가 사망한 뒤에는 그의 묘에 난 풀을 뜯어 약으로 쓰면 효험이 있다고 해 그의 묘는 항상 반지르르했다고 한다. 그는 의사 일을 하면서 창작 활동을 겸했는데, 대개 낮에는 병원 일에 쫓겨 시간이 없었고 주로 밤에 잠을 설쳐 가며 작품을 썼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1925년부터 1935년 사이 약 10년간 소설과 시를 포함해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라이허는 1925년 8월 처음으로 산문 <무제(無題)>와 시 <깨달은 희생(覺悟的犧牲)>을 발표했다. 당시 라이허는 구시(舊詩)에서부터 신시(新詩), 산문, 소설 할 것 없이 모두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그를 거치면서 타이완의 문학이 큰 변화를 보였기 때문에 그는 많은 작가들로부터 한결같은 존경을 받았다. 그의 작품 중 소설로는 <흥 겨루기(鬪鬧熱)>(1926), <저울(一杆稱子)>(1926), <마음 같지 않은 신년(不如意的過年)>(1928), <뱀 선생(蛇先生)>(1930), <모욕?!(辱?!)>(1931), <낭만외기(浪漫外紀)>(1931), <귀향(歸家)>(1932), <풍작(豊作)>(1932), <말썽(惹事)>(1932) 등 약 30편의 단편이 있으며, 주로 ≪타이완민보(臺灣民報)≫에 게재되었다. 라이허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암울한 시대 상황을 작품을 통해 절실하게 증언했다. 그의 작품은 타이완의 현실 상황과 타이완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핍진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20세기 전반 타이완의 역사를 생동감 있게 기록해 놓고 있다. 그의 산문 역시 탁월한 풍자 기법을 사용해 식민 지배자의 추악한 면모와 잔인한 본성을 폭로, 비판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의 초기 작품에는 강렬한 민족의식과 더불어 초지일관 약자의 편에 서서 강자를 비판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편 1921년 라이허는 타이완문학협회에 가입하면서 신문학의 편집과 출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타이완에서 전개된 신구(新舊) 문학의 격렬한 논쟁 중에는 구문학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신문학을 제창했고, 또한 청년 작가들의 양성에도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 1945년 타이완이 해방되기 전까지 타이완 사람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유린과 수탈을 겪어야만 했는데, 이러한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라이허는 문학으로 반일 사상을 고취하면서 사실상 식민지 상황에서 타이완의 민족주의 문학을 이끌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는 타이완 신문학에서 5·4신문학운동의 영향을 비교적 분명하게 받은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그의 작품 속에 담겨 있는 민족주의, 저항 의식, 계몽 정신, 하층민에 대한 애정, 리얼리즘, 풍자 수법이라든가 그의 작품이 동시대와 다음 시대 많은 다른 작가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 등 모든 면에서 볼 때, 그를 두고 ‘타이완 신문학의 아버지’, ‘타이완의 루쉰’이라고 칭하는 것은 전혀 과찬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나아가서 (적어도 타이완에서는) 루쉰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작가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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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줘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0년 타이완 신주(新竹縣)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우젠톈. 타이완은 우줘류가 태어나기 전인 1895년부터 일본의 식민지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한학에 소양을 갖춘 문사였고 그의 아버지는 한의사였다. 1920년에 타이완총독부국어학교 사범부를 졸업하고 약 20년간 소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1940년 타이완 출신 교사를 모욕한 군의 장학사에 항의해 교사직을 그만 둔다. 그다음 해인 1941년에 중국으로 건너가 난징(南京)의《대륙시보》에서 약 1년 동안 기자로 일하고 1942년에 다시 타이완으로 돌아와《타이완일일신보》《타이완신보》《민보》등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36년에 단편소설「수월」을 시작으로「시궁창 속의 황금잉어」「천대인」「의사선생의 어머니」등 여러 편을 창작했다. 1943년 일본어로『아시아의 고아』를 쓰기 시작해 2년 뒤인 1945년에 탈고했다. 그 사이 타이완은 해방(1945년)을 맞이한다. 『 아시아의 고아』의 원래 제목은 주인공 이름이기도 한‘후즈밍’이었으나 1946년 일본에서 첫 출판한 이후 주인공 이름은 후타이밍으로, 책 제목은『아시아의 고아』로 바꿔 1956년 다시 출판한다. 1959년에는 중국어로 번역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재판되었다. 우줘류는 1964년 잡지사《타이완문예》를 세우고 1969년에는 본인의 이름을 딴 ‘우줘류문학상’을 제정했다. 이후에도 장편소설『무화과』『타이완 개나리』를 펴내는 등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76년 10월 7일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고생하던 우줘류는 7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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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리허 (지은이)    정보 더보기
타이완 독자들에게 익숙한 광복 후의 작가로서 일생을 가난과 병마와 싸우면서도 글쓰기를 고집하여 자전적 성격의 작품들을 많이 발표하였다. 자전적 소설 <가난한 부부>는 1970년대 리싱(李行)감독이 <원향인(原鄕人)>이란 영화로 개작하여 호평을 받은바 있으며, 소설 <동성(同姓)의 결혼>과 더불어 핑메이를 그린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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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티에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0년대에 등단한 소수 대만농민 작가의 한사람으로 부친인 종리허(鍾理和)의 강렬한 지역적인 성격을 계승하여 60년대의 농민문학을 계승한 작가이다. 농촌의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자신의 소설세계에 투영하고 있는 것을 작품세계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네 개의 눈과 나>, <담배 밭>, <비가 내린 후>, <배웅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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쑹져라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교사출신의 작가로 사실주의에 입각해 농촌에 널려진 불평등과 불합리한 현상에 착안점을 두고 소설을 통한 농촌사회 문제와 어둠을 고발하는 작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폐원(廢園)>, <소치는 남촌(湳村)>, <황소살인 8백만원>, <폐허 타이완> 등과 기타 평론과 시집, 산문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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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자오정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25년 타이완의 타오위안현(桃園縣) 룽탄향(龍潭鄕)의 주쭤랴오(九座寮)에서 태어났다. 일제 통치하에서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본어를 사용했으며,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초등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이후 장화(彰化)청년사범학교에 진학했는데, 원래 문학을 좋아했던 그는 이때 다량의 세계 명작들을 읽으며 창작의 꿈을 키웠다. 1945년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들어갔으나, 같은 해 광복이 되면서 고향으로 돌아와 소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중자오정은 광복 이후 일본어 창작이 금지되면서 중문 주음부호와 중국어를 익히기 시작했으며, 각고의 노력으로 중문 창작 훈련을 계속해 나갔다. 1948년 타이완대학 중문과에 입학했으나 교과 과정 등에 불만을 품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뒤 다시 교사로 복직했다. 1951년 <혼후(婚後)>가 잡지에 실리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1962년 ≪연합보(聯合報)≫에 교사로서 경험을 담은 첫 번째 장편소설 ≪루빙화≫를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탁류 삼부곡(濁流三部曲)≫과 ≪타이완인 삼부곡(臺灣人三部曲)≫ 등을 집필하며 장편소설에서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았다. 중자오정은 1950년대 반공문학이 주류를 이뤘던 타이완 문단에서 항일과 계몽이라는 신문학운동 정신을 계승해 창작 활동을 벌였다. 당시 타이완 출신 작가들은 반공사상과 중원사상을 강조하던 관(官) 주도의 문단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새로운 언어인 중문으로 창작을 하는 것 또한 익숙지 않아 이중의 어려움을 겪었다. 작품을 발표할 지면이 많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이에 중자오정은 1957년 4월 ≪문우통신(文友通訊)≫을 창간했다. 이 잡지에는 1950년대 중반 타이완 문단의 대표적인 향토문학 작가들이 상당수 참가하였는데, 이들은 대부분 타이완의 식민 경험과 역사 기억에 관심을 가진 작가들이었다. 이들은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서로의 작품을 평가하거나 격려하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갔다. 당시 중자오정과 함께 ≪문우통신≫에 참여했던 대표적인 인물로는 중리허(鍾理和), 천훠취안(陳火泉) 등이 있다. ≪문우통신≫은 처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점차 소속 작가들이 공모전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노력으로 문단의 주류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이들은 당시 암흑과도 같은 시대 상황에서 문학의 다양성을 추구해 나갔으며, 이후 타이완 문학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스스로의 발전 궤적을 완성해 나가는 밑거름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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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투어 (지은이)    정보 더보기
타이완 70년대 후기를 대표하는 향토문학 작가로 작품을 통해 타이완의 어촌과 농촌이 자본주의 경제로 변질되는 생활상과 시대변천사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금수(金水) 숙모>, <네가 일찍 돌아오길 바래>, <소밥통 항구의 이야기>, <타이베이(台北), 타이베이>, <무덤의 종소리> 등의 소설과 문학평론집.정치평론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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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호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울 태생. 대만 국립중산대학교 중국문학 박사. 전문 연구 분야는 중국현대문학, 대만문학, 비교문학, 문학평론 한국독립운동사. 현재 대만 슈핑과기대학교 관광 및 창의대학 교수겸 학장 대만현대시인협회 이사장, 조명하의사연구회 회장. 논저로는 《쉬즈모시 연구》, 《중국 조기 3대 신시인 연구》 《전후 대만 현대시 연구 논집》 〈전후 현대 시인의 대만 상상과 현실〉 〈라이허와 조선 「시승」, 한용운 민족의식 신시와의 비교 연구〉 〈존재의 사유, 고통의 기탁: 논 보양의 감옥시〉등 다수. 번역으로는 『김광림 시선』, 『문덕수 시선』, 『천첸우 시선』 『쟈오텐이 시선』, 『우융푸 시선』,『졍죵밍 시선』 『대만문학사』, 『대만 신문학운동 40』 『위광중 시선』 『라이신 시선』, 『천리 시선』 『차이슈쥐 4개국어 시집(한국어)』등 2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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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마음이 위축되어 있을 때 갑자기 규칙적으로 딱딱
목어(木魚) 소리가 나자 순간 침울한 공간에서의 근심은 사라졌지만 이 목어 소리는 부서진 대웅전과 지나간 과거의 시간에서 온 것을 안 그는 놀라 얼이 빠져 몸을 벌떡 일으켰다.
대웅전은 침침했고, 비온 뒤의 나무숲은 습기가 가득해 곰팡이 냄새가 났다. 아무튼 겨울 오후의 연약한 햇살이 균열된 지붕의 큰 구멍 사이로 비춰 들어와 마침 목어를 치며 경을 읽는 여인의 몸에 반사되었다. - 본문 '목어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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