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7256082
· 쪽수 : 208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PART 1 나는 당신이 좋다
1) 작은 움직임 하나를 알아주는 사람
2) 여러 날의 안부
3) 롤러코스터 감정에 익숙한 사람
4) 유효기간은 어쩌면 무효기간
5) 서로가 서로의 간격이 되어
6) 다정한 무관심론자
7) 문장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
8) 한 사람을 위한 음악 DJ
9) 시, 노래, 글 비(非)구분론자
10) 맞춤법 틀리는 사람
11) 얼룩덜룩이 무늬가 되는 사람
PART 2 어쩌면 우리는 닮았을지도
12) 편견을 사랑하게 해주는 사람
13) 너와 나의 감정이 만날 때
14) 조금 더 일찍 낙엽을 밟는 사람
15) 즉흥성 예찬론자
16) 길거리를 색칠하는 사람
17) 혼잣말만 온종일이어도 괜찮아
18) 뒤엉킨 감정을 안는 사람
19) 사소한 것이 좋아
20) 기쁘거나 슬프거나 결국 감정은 하나
21) 관심학과 교수
22)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23) 봄날의 마침표, 상춘곡
24)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25) 인연이 되는 꽤 단순한 방법
PART 3 당신의 공기는 달콤하다
26) 오늘은 분실물, 내일은 흔적으로
27) 단 한 사람을 위해 경청하는 사람
28) 나의 집은 49개입니다
29) 낱장의 마음 읽어주는 사람
30) 이미지 찾아 떠도는 방랑자
31) 자신에게 홀림
32) 어둠 속에서도 빛을 만드는 사람
33) 있는 듯 없는 듯한 사이
34) 모든 추억이 노래가 되고
35) 마음에 방이 많은 사람
36) 같은 단어에 다른 옷을 입히는 사람
37) 카모메식당에서 아무 장식 없는 빙수 먹기
PART 4 계절의 안부를 묻다
38) 계절을 사는 사람
39) 온갖 시간을 넣고 흔든다는 것
40) 바스락거려도 괜찮아, 살아있으니까
41) 잘 지내길 바랄게요
42) 이 순간 이대로
43) 곧 그러나 늘
44) 서로 아름다울 거라는 믿음으로
45) 움직이지 않는 순간을 보는 순간
46)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늘 어딘가로
47) 추억과 꽤 잘 이별하기
48) 내가 밥 사 줄게요
49) 막사는 사람
50) 가슴 속에 한 장면이 있는 사람
51) 혹시나, 혹시나 해서 물어봅니다
에필로그
책속에서
프롤로그
사람의 체온은 36.5도라는 말, 그 한 문장이 힘이 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쩜 우린 그랬을지도 모르죠. 36.5라는 숫자에 섣불리 따스함을 기대하기도 하고 계절과 상관없는 사계절 영하 온도에 상처를 받기도 했을지도요. 고마웠다가 미안했다가 섭섭했다가 사랑했다가 결국 알게 된 것은 저 또한 36.5도 그만큼의 따스함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따뜻했지만 제 체온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미지근할 수도 있겠다는 걸 알게 되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차갑거나 따뜻하다는 온도만으로 누군가를 정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 제게 체온은, 우리가 손을 맞잡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숨겨진 이름 같았죠. 너라는 사 람과 너의 너라는 사람까지...... 사람 앞에 어떤 형용사를 붙여주고 싶어졌습니다. 사람은 다 똑같아, 라며 지쳐가는 마음을 다양한 사람으로 위로해주고 싶은 제 희망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나의 체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됐을 때, 연희동 카페에서 누군가를 만났습니다. 한산했던 오전 혼자 앉아 있던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을 때, 제 전화기 벨이 울렸고 그때 카페 전체에 울려 퍼지던 음악 볼륨을 낮춰주던 주인. 차가운 인상으로만 보였던 주인의 마음을 느꼈던 날이었죠. 그 카페 안에서 변한 거라곤 볼륨 하나인데 온종일 저는 왜 그렇게 다른 세상을 사는 기분이었을까요. 아마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어떤 이의 손가락 움직임 하나에 감사하기 시작한 것이. 말없이 어깨를 다독여주던 가족 생각이 났고 울고 있을 때 저 뒤에 있어주던 당신도 생각났습니다. 수많은 볼륨을 가만히 낮춰준 내 곁의 사람들, 그들이 모두 그날의 카페 주인이었던 셈이죠.
그 뒤로 저는 사람들의 사소한 행동을 관찰하게 됐습니다. 따뜻한 사람, 차가운 사람, 예민한 사람, 감성적인 사람, 활동적인 사람 등등 대수롭지 않게 붙여온 진부한 형용사 대신 오래오래 더 곁에 두고 싶은 형용사들을 붙이면서.
아침마다 인사하는 가족, 술 한 잔에 고민을 나누는 친구, 말 대신 손을 잡고도 대화할 수 있는 연인까지 우리 곁에는 빛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 이름 앞에 조금 긴 형용사를 붙여보다가, 그렇게 다양한 그들을 만들어주다가, 그렇게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체온을 믿던 우리에게 체온보다 따뜻한 손짓, 발짓, 눈짓이 다가옵니다. 원고를 정리하고 있는 이곳 카페 주인에게는 또 어떤 형용사를 붙일 수 있을지 두근거립니다.
인연 2. 여러 날의 안부 中에서
한 문장에도 여러 시제와 감정이 느껴지는 문장이 있다. 내게는 시인 P 선생님이 그렇다. 강원도에서 휴대전화 없이 사시는 선생님과 간혹 주고받는 이메일 속에는 늘 여러 시제가 떠다닌다.
생각날 때마다 통화를 할 수 없기에 가끔 주고받는 이메일에는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메일을 쓰셨을 선생님 얼굴이 보인다. 마치 늘 마지막 안부를 전하는 사람처럼.
선생님과 만날 때면 특별한 대화가 오고간다. 삼청동에서 선생님을 뵙기로 하고 주고받던 메일도 그랬다. 뵙기 며칠 전 메일에는 "글쎄, 평일 저녁쯤이 되지 않을까. 불쑥 가고 싶으면 버스를 타는 성격이라." 한 문장이 있었다. 며칠 무슨 요일에 오시는지 캐묻던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한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
그렇지, 선생님 메일에는 날짜나 시간이 없는데 늘 어느 쯤으로 말씀하시는데. 휴대전화가 없는 선생님은 불쑥 서울에 올라오실 때도 급하게 연락을 주시지 않는다. 대신 예고 없이 누군가가 그립거나 자주 가시던 인사동 골목이 생각날 때 불쑥 오시는데 집에서 나서기 전 보고픈 이에게 메일을 보내신단다. 그리고 선생님이 서울에 도착하시기 전 메일을 확인하는 인연이면 만나게 된다는 것. 선생님의 삶은, 인연의 힘을 기대해보게 하는 생활이다. 약속하지 않아 기대하지 않고, 약속을 어길 일도 없으니 섭섭한 마음도 없으시단다. 그러다가 우리가 만난다면 더 끈끈해진다는 것.
아직 선생님을 그렇게 우연히 만난 적이 없다. "오늘 시간을 낼 수 있어 조금 이따가 서울 가네. 스치듯 볼 수 있으면 보자."
(중략)
각박하고 정확한 날짜들에 지칠 때쯤이면 신기하게 선생님 메일이 하나 와 있다. 그날도 그랬다. 만남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다가올 여러 날의 안부와 마음이 전부 녹아 있는 한 문장.
"다가오는 봄엔 볼 수 있나, 보자꾸나, 보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