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97870752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4-01-10
책 소개
목차
파랑새의 하늘 | 인디언 썸머 | 밤의 여왕 | 제5차 산업혁명 | 추적자의 거리 | 6교시 인성 영역 | 여기, 관심 1인분 추가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사물의 기억 |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괴물로 살아남는 법 |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 | 기대와 다른 일 | 화창한 날의 우울 삽화 | 몰락 | 미필적 고의 | 호모 코기토 | 반짝거린다고 다 별은 아니다 | 놀이하는 인간 | 반전 | 파국 | 가족의 탄생 | 탑 시크릿 | 파레토의 법칙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한 살 어린 여동생 민주는 이미 작년 겨울에 성인 자격증을 땄다. 열여덟 살 민주는 올해 1월부터 선거권을 얻었고, 보호자 없이도 은행 계좌를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며, 원하면 운전면허증도 딸 수 있다. 성인이 된 민주는 6개월 이내에 국가에서 제공하는 레지던스로 옮기며 독립한다.
어렸을 때는 야무진 여동생이 마냥 귀엽고 기특했는데, 막상 똘똘했던 민주가 자기보다 먼저 어른이 되고 나니 생각보다 기분이 더러웠다. 가장 큰 문제는 존댓말. 여동생은 놀리거나, 부려 먹으라고 존재하는 게 아닌가.
‘내가 닦아준 눈물, 콧물이 얼만데, 이 어린것에게 깍듯한 존댓말을 쓰라니!’
상상만으로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미성인이 성인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엄연한 경범죄에 해당한다.
더 이상 드러워서 못 해 먹겠다며, 어느 집 장남이 먼저 성인이 된 동생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꼬박꼬박 말을 높이다가 마침내 발작 버튼이 눌린 것이다. 얼마나 찌질하면 동생이 먼저 어른이 되었겠냐며, 그때 민수는 얼굴도 모르는 자에게 욕까지 했었다. 민주가 성인 자격증에 조기 도전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민수는 순간적으로 그 찌질이가 떠올랐다. 남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이 엄습했다.
본문 <파랑새의 하늘> 중에서
가오리들의 아우성에 밀려 동하는 자리를 잡았다. 준우는 기분이 좋을 때마다 ‘아싸! 가오리’라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감탄사를 내뱉는 버릇이 있었는데, 준우와 함께 몰려다니던 나머지 둘도 어느새 그 말이 입에 붙어 버리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가오리 3인방이 되었다. 가오리들은 이 학교에서 꾸준히 전교 10등 안에 들었다. 당연히 끝에서.
국영수사과도 물론 점수가 낮았지만, 그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대학은 생기부와 수능 점수를 고려해서 AI가 합격 가능한 곳을 골라 주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6교시 인성 영역. 6교시를 망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다. 다른 과목에서 만점을 맞아도 진학은 불가능하다. 성인 인증에서 원아웃.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수능이 끝나면 각 고등학교의 입시 결과가 발표된다. 6교시 탈락자가 적은 학교가 명문고다. 포털에서는 그해 낙오자의 증감과 지역별 분포를 분석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탈락자 수는 사회의 건강을 측정하는 지표였다. 유독 탈락자가 많은 해에는 그들이 태어났던 연도에 큰 사건이나 사고는 없었는지, 혹은 청소년기에 집단적 충격을 겪을 만한 일은 없었는지, 과거 20년을 회고하느라 학계와 언론이 쌍으로 분주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능이 가까워질 무렵이면 모의고사에서 6교시 커트라인을 넘기지 못한 학생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느라 학교마다 비상이 걸렸다. 유독 미성인을 많이 배출한 학교는 국민으로부터 윤리적 지탄을 받았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 기관의 사명인데, 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 비난의 화살이 자신을 겨냥할까 봐, 교장이나 재단 이사장들은 입시철마다 잔뜩 신경이 곤두섰다. 올해는 누가 과연 모교의 명예에 먹칠을 할 것인가. 가오리파는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세 번에 한 번꼴로 커트라인을 넘지 못했다.
자라면서 성적에 신경을 써 본 역사가 없는 가오리들조차 선생들의 은근한 압박에 마음이 바빠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기 싫은 일이 닥쳤을 때마다 인생철학으로 내세웠던 근거 없는 낙관주의도 점점 위로가 되지 못했다. 어떻게든 되지 않겠느냐며 일단 뒤로 미루었던 일들이 생각보다 잘 풀린 적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가오리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놈은 어째서 사필귀정, 인과응보만 좋아하고, 일확천금이나 새옹지마와 같은 낭만을 혐오하는지 모를 일이다. 수업 시간마다 가오리들과 눈이 마주친 선생들은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아무리 뻔뻔스러운 가오리들이라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본문 <6교시 인성 영역> 중에서
4구역은 미성인의 별이다. 나이가 들어도 성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자는 지구의 시민권을 얻지 못한다. 4구역이 3구역과 다른 점은 그곳엔 자유가 있다는 점이었다. 국가는 미성인들에게 매우 기초적인 의식주만을 제공했기에, 그 밖의 것들은 스스로 노동을 해서 얻어야 했다. 그들 역시 광물을 채굴할 수는 있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었다. 채굴한 광물은 코인으로 환산되어 3구역의 화폐로 유통되었다. 코인만 있으면 지구에서 공수한 물건을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심지어 성인 인증도 획득할 수 있다. 광물을 채굴하는 일은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었기에 가혹한 노동을 견뎌 낸 미성인들은 대부분 훌쩍 철이 들어 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는 자들은 서서히 시들어 가는 것 외에는 다른 할 일이 없었다. 6교시 점수에 따라 성인 인증에 필요한 코인의 양이 달라서, 빨리 되돌아가고 싶은 자들은 허리가 휘는 극한 노동을 참아 내며 방만했던 과거의 자신과 신속하게 결별했다.
4구역의 유지 비용은 관광 수익으로 충당했다. 4구역 행 은하열차는 부가가치가 높은 최고의 관광 상품이었다. 미성인 자녀를 떠나보낸 부모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사니타스를 먹어도 자식에 대한 정을 떼지 못하는 특이체질이나, 밀려드는 고통에도 약 복용을 거부한 부모들은 거액을 탕진하면서도 주기적으로 4구역을 방문했다. 지불 능력이 좋은 부유층일수록 미성인 자녀를 배출하는 빈도가 높다는 것도 의미심장했다.
자식이 보고 싶어서 안락한 노년을 위해 모아 둔 재산을 모조리 소진한 어느 부모가 마지막 방문을 마친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도 있었다. 간간이 벌어지는 이런 사건이 사회면 기사로 송출되면, 그 주간에는 일시적으로 티켓 판매량이 급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모들 때문에 열차표는 다시 광속으로 매진되었다.
본문 <제5차 산업혁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