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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97870882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25-01-03
책 소개
목차
저주 노트|감염|불독|PCM|언어의 주술성|대표 증상|반전|미션|오늘의 책|반짝이지 않는 것|말의 힘|이야기의 힘|눈물|책 줍는 여인|반짝이는 것|비밀|가짜 꿈|변신|세 번째 용의자|모르는 여인|또 다른 세상|이루지 못한 꿈|도서관|그들이 사는 세상|귀가|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형사는 자신을 의심하는 눈치지만, 그건 어차피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께름직한 것이 있었다.
저주 노트.
‘정말 내 저주 때문에 노인에게 변고라도 생긴 거면 어쩌지?’ 승리는 책꽂이 맨 끄트머리에 꽂아 둔 노트를 꺼냈다. 최근에는 쓴 적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유 선생이 실종되었다는 말에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그때 이름을 지울 걸 그랬나?’
노트 중간에 그녀의 이름이 빨간색 볼펜으로 44번 적혀 있었다.
“유은영유은영유은영유은영유은영유은영유은영유은영유은영유은영유은영유은영유은영…….”
ㅇ이 네 개나 들어간 세 글자가 여백 없이 꽉 들어 찬 공책을 보고 있자니 환 공포증이 밀려왔다. 승리는 얼른 노트를 덮었다. 선생에게 변고가 생긴 게 꼭 이 노트 탓인 것만 같아 못내 찝찝했다.
‘나 지금 뭐 하냐! 겨우 이런 걸로 사람한테 진짜 저주가 붙으면 내 인생이 이렇게 고달프지도 않게?’
현타가 온 승리는 책상 위에 노트를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골치 아플 때는 한숨 자는 게 최고지.’
본문 <저주 노트> 중에서
상황을 정돈하고 나니 딱히 화를 낼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정신의 영토에 다시 평화가 밀려왔다. 승리는 머쓱한 표정으로 대문을 열었다.
“간 줄 알았는데?”
“할 일은 끝내야죠.”
“읽어 줘. 부탁이야. …… 다시 읽으려고 갈무리해 두었는데, 이렇게 눈이 어두워질 줄 누가 알았겠어.”
“그, 그, 그럼 오디오북을 들어요. 앱을 깔면 되는데……. 도와 드릴까요?”
“역시 넌 바보가 맞구나! 내가 밑줄 그었던 그 대목을 읽고 싶다는데 무슨 오디오북이냐. 더구나 기름 발라 놓은 것처럼 뺀질뺀질 한 성우 목소리는 듣기도 싫어. 사라락 종이 넘기는 소리도 나고, 읽다가 더듬기도 하고, 울컥 목이 메기도 하고, 그래야 독서지.”
‘하여튼 까다롭다니까. 그럼 직접 읽으시든가.’
승리는 띠꺼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그건 힘들어요. 누가 보고 있으면 마…… 말이 안 나와요.”
“누가 본다는 거야. 알다시피 내 눈은 이 꼴인데. 이제 글자는 물론이고, 가끔 사람도 안 보여. 진짜 맛이 갔나 봐. 어떻게 사람이……. 지난번에는 분명 네가 앞에 있는데 이상하게 내 눈에 보이지 않더라니까. 우라질. 그러니까 이런 나는 그냥 없는 셈 치라고.”
승리는 뜨끔했다.
‘모르는 사이에 또 그랬었구나.’
긴장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는 것을 승리는 처음 알았다.
본문 <오늘의 책> 중에서
그들은 물속 세상이 맺어 준 인연이라고 했다. ‘투신율 1위’의 오명을 떨치던 어느 한강 다리 아래에서 그들은 만났다. 아저씨는 직장 상사의 횡령을 뒤집어쓴 신용불량자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지긋지긋한 민원에 시달리던 공무원이었다. 제일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는 강남에서 그 다리까지 걸어 왔다고 했다. 일주일에 학원 11개를 다니는데, 지난 시험보다 등수가 더 떨어지자 엄마가 ‘나가 죽으라’고 소리를 질렀단다. 그날로 소년은 이곳으로 왔다. 소년이 쿨하게 덧붙였다.
“엄마 말씀을 잘 듣는 편이라서.”
물속에서 눈을 떴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노란 물고기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보다 먼저 이곳에 온 누군가였다. 몇 명씩 한 조를 이루고, 그들은 양 떼를 모는 목동처럼 노란 물고기와 함께 물속 세상을 활보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물고기가 쓰레기를 먹어요?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는 너는? 너는 안 이상해?”
환경 공무원이었다던 그가 피식 웃었다.
“변이가 사람한테만 일어나라는 법은 없잖아. 어머니 지구가 다 생각이 있었던 거지.”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돌아서는 그들에게 하마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럴 수 있겠어? 너는 우리랑 처지가 다르잖아. 기다리는 가족도 있고, 돌아가야 할 집도 있을 텐데? 먼 곳까지 여행할 때는 제법 오래 걸린다고. 그래도 가고 싶다면 매주 수요일, 그 다리 아래로 오면 돼. 거기가 공항으로 치면 출국장 같은 거야.”
본문 <그들이 사는 세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