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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8599898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1-11-2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기다리는 맛
도시인의 수프
아직 수프를 먹지 못했는데
내가 선택한 식탁
오늘도 낯선 세계를 여행한다
오늘 기분은 미네스트로네
달아도 너무 달다
인생은 고통이니까 수프나 끓여야지
매일 혼밥하는 사람의 점심
마감 전야
포기하면 편하다는 말에 대해
대도시의 요리법
레시피 유목민의 실험기
다운그레이드의 대가와 업그레이드를 위한 레시피
비법 소스를 찾아서
이름을 부른다는 건
수프를 나누면 반이 된다
시작, 중년 대비 프로젝트
수프로 일시정지
방구석 1열이라는 안온함
점심의 불안도 저녁에는 잊힌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버틴다는 말에도 싫증이 날 것 같은 날이면 야채 수프를 끓인다. 감칠맛과 풍미를 느끼려면 채수를 우려내야 해서 성미 급한 나와는 상극인 수프다. (…) 수프를 끓이며 내 몸과 마음의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도록 조정한다. 기다림에 익숙해지도록 몸과 마음을 길들이는 수련과도 같다. 불 앞에서 조금씩 으스러지는 재료를 나무 주걱으로 천천히 휘저으면 정체 모를 불안도 뒤편으로 밀려난다.
식사를 요란하게 준비하다 보면 여덟 시 반에서 아홉 시가 되어서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그래도 주린 배를 움켜쥐고 고집스럽게 단호박을 찌고 으깼다. 단단하고 옹골찬 원형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커스터드 크림처럼 변할 때까지. 부드러운 단호박 수프를 한 스푼 떠서 입으로 밀어 넣으면 저지할 새도 없이 목구멍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달콤한 수프를 음미하다 보면 내가 나를 돌보는 법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 시절 나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방에서 저녁 한 끼는 원하는 요리를 챙겨 먹어야만 내가 거주하는 공간을 좋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