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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와 소세키 왕복 서간집

시키와 소세키 왕복 서간집

나쓰메 소세키, 마사오카 시키 (지은이), 박지영 (옮긴이)
지식을만드는지식
2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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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와 소세키 왕복 서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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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시키와 소세키 왕복 서간집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비평론
· ISBN : 9791128820168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16-12-26

책 소개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수필비평선집 시리즈. 일본 메이지 시대 시와 소설의 양대 산맥이었던 마사오카 시키와 나쓰메 소세키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았다. 두 위대한 작가가 막 세상에 발을 디딘 22세부터 시키가 사망한 35세까지, 두 사람의 14년간의 삶과 고뇌를 민낯 그대로 볼 수 있다.

목차

1889년-22세
1890년-23세
1891년-24세
1892년-25세
1893년-26세
1894년-27세
1895년-28세
1896년-29세
1897년-30세
1898년-31세
1899년-32세
1900년-33세
1901년-34세
1902년-35세 이후, 소세키의 회상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소개

나쓰메 소세키 (지은이)    정보 더보기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로 1867년 2월 9일, 에도(현 도쿄)에서 태어난 일본의 대표적인 근대 문학 작가이다.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젊은 시절부터 염세주의와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인간 존재에 대한 예민한 통찰을 키워나갔다. 도쿄제국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후, 서양 문학과 철학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후에 영문학 교수로서도 활동을 시작한다. 1895년, 마쓰야마중학교에 교사로 부임하며 교직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구마모토와 도쿄로 옮겨가며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그러나 가정불화와 제자의 자살, 그리고 서양 문학에 대한 회의감은 그를 내면적으로 병들게 했고, 그의 작품은 점점 더 인간 존재와 도덕에 대한 깊은 고뇌와 심리적 갈등을 탐구하게 되었다. 1904년, 영국 유학을 마친 뒤 첫 번째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데뷔한 이후 《도련님》 《풀베개》 《행인》 《태풍》 《마음》 등 여러 작품을 발표하며 근대 일본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 잡았다. 1916년, 위궤양 재발로 상태가 악화하면서 12월 9일 마흔아홉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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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오카 시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67년 음력 9월 17일 마쓰야마(松山)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쓰네노리(常規)였으며, 술을 많이 마셨던 아버지를 다섯 살 되던 해 여의고 세 살 아래인 여동생 리쓰(律)와 함께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헤이지 모노가타리(平治物語)≫, ≪삼국지≫ 등 전쟁 소설 읽기를 좋아하던 시키는 사춘기에 들어서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자유 민권 운동에 귀를 기울이며, 15세 때는 교내뿐만 아니라 청년 연설회에서 ‘자유’에 대해 연설하기도 한다. 정치열에 들떠 공부도 등한히 하게 된 시키는 정치가가 되려는 야심에 도쿄의 외무성에서 근무하고 있던 외삼촌에게 편지를 보내 그 허락으로 16세에는 꿈에 그리던 도쿄로 올라온다. 그 이듬해 1884년부터 옛 번주(藩主)의 육영 단체인 도키와카이(常盤會)의 급비생이 되어 공부하면서 도쿄대학 예비문에 합격, 이해에 수필 <붓 가는 대로>를 쓰기 시작한다. 도쿄대학 예비문은 2년 후 1886년에 제일고등중학교로 재편되었는데 이곳에서 시키는 동갑내기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도 만난다. 1889년 2월, 시키가 각종 문예 형식으로 집필한 7편을 ≪칠초집(七草集)≫ 한 권으로 묶어 비평을 부탁했을 때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는 크게 칭찬하며 ‘소세키(漱石)’라는 필명으로 서명했고, 마사오카 쓰네노리(正岡常規)는 9월에 소세키의 기행·한시문집 ≪목설록(木屑錄)≫을 비평해 주었을 때 ‘시키(子規)’라는 필명을 쓴다. 시키는 이해 5월에 일주일 정도 객혈을 계속한 후, 이제부터 울며 피를 토한다는 두견새[子規]를 필명으로 하자고 결심하며 처음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듬해 9월 시키는 도쿄제국대학 문과대학 철학과에, 소세키는 같은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시키는 다시 철학과에서 국문과로 전과해 하이카이(俳諧) 분류에 착수한다. 1892년 25세 되던 해 11월, 어머니와 여동생을 도쿄로 불러 함께 지내며 12월 1일부터 일본신문사에 입사해 하이쿠 시평(俳句時評)을 담당한다. 대학은 그 이듬해 3월 정식으로 그만둔다. 시키의 네기시 전셋집은 ‘시키암(子規庵)’ ‘네기시암(根岸庵)’이라 불리며 하이쿠와 단카 제자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문예를 담론하던 ‘문학 살롱’ 구실을 했다. 시키는 ≪일본≫이 폐간되고 발간한 ≪소일본(小日本)≫의 삽화가로 일하게 된 나카무라 후세쓰(中村不折)와 만나 자연의 실경(實景)에 관심을 가지며 그의 예술적 지향이 된 ‘사생(寫生)’에 눈을 뜨게 된다. 27세 가을 무렵이다.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 유능한 신문기자는 모두 종군 기사를 써서 인기를 떨치고 있을 때 시키도 간절히 원했던 종군이 허락되어 1895년 3월 중국으로 떠나 요동반도의 서쪽 금주(金州)·여순(旅順) 등에서 1개월 정도 머문다. 그때 육군 군의 부장으로 종군하고 있던 모리 오가이(森鷗外)를 매일같이 방문하기도 한다. 전쟁은 곧 끝나고 5월, 돌아오는 배 안에서 지병인 폐결핵이 재발해 고베(神戶)에 도착하자 병원에 입원한다. 8월 고향 마쓰야마에 돌아가 마쓰야마중학교 영어 교사로 근무하던 소세키의 하숙에서 동거하다가 11월에 도쿄로 돌아온다. 1896년 29세부터는 결핵균이 척추로 옮아가 보행이 불편해 대부분의 시간을 병상에서 지내게 된다. 하이쿠 혁신이 문단에서도 인정받아 이해 1월 3일, 시키암(子規庵)에서 열린 하이쿠 짓기 모임에는 오가이와 소세키도 교시(虛子), 헤키고토(碧梧桐) 등과 함께 참석한다. 4월부터 12월에 걸쳐 수필 <송라옥액(松蘿玉液)>을 신문 ≪일본(日本)≫에 연재한다. 병세가 악화하는데도 시키는 해를 거듭하며 <하이진 부손(俳人蕪村)>을 비롯해 <가인에게 보내는 글(歌よみに?ふる書)> 등을 연달아 발표하며 단카 혁신에도 힘을 쏟는다. 1898년 3월에는 최초의 단카 모임인 가회(歌會)를 시키암에서 개최했으며, 하이쿠 전문 잡지인 ≪호토토기스(ホトトギス: 두견새)≫를 도쿄에서 발간, 시키의 주재(主宰)로 교시가 편집을 담당하도록 한다. 이해까지는 인력거를 타고 수차례 외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병세는 더욱 악화해 누워 지내는 나날 속에 1899년 3월에는 ‘네기시 단카회’가 정식으로 발족한다. 이해 가을부터 시키는 나카무라 후세쓰가 쓰던 그림물감을 건네받고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시키는 자신의 생존 기간과 경쟁이라도 하듯이 1901년 1월부터 7월에 걸쳐서는 <묵즙일적(墨汁一滴)>을 연재하고 9월부터는 병상 일지와 다름없는 <앙와만록>을 쓰기 시작한다. 1902년 1월부터는 병세가 더욱 급격히 악화해 문하생들이 교대로 간호하며, 원고는 구술로 집필된다. 5월 5일 <병상육척(病牀六尺)>을 연재하기 시작해 9월 17일 127회로 이승을 마감하기 이틀 전까지 계속한다. 그사이 6월 27일부터 8월 6일에 걸쳐서는 갖가지 과실을 그린 ≪과일첩≫을, 8월 1일부터 8월 20일 <나팔꽃>을 마지막으로 그린 ≪화초첩≫도 완성하고 있다. 9월 18일 오전, 어머니는 의사를 부르러 가고, 구가 가쓰난 부부, 헤키고토, 여동생 리쓰가 둘러앉아 머리맡을 지키는 가운데 마지막 힘을 다해 먹물을 머금은 붓으로 절필 3구(句)를 쓰고 나서는 곧 혼수상태에 들어간 채로 이튿날 9월 19일 새벽 1시에 영원히 숨을 거둔다. 만 35년의 생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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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오카 시키의 다른 책 >
박지영 (옮긴이)    정보 더보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일본문학 석사, 비교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하대학교에서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로서 단카와 일본문화, 일제강점기 한일 문화의 교섭 양상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시키와 소세키 왕복 서간집』(2016), 『헝클어진 머리칼』(2022개정) 등, 논문 「기억장치로서의 단카-일본사회의 집단기억과 정체성 형성의 기제」(2021), 「전쟁단카의 수용 양상과 일본의 역사인식」(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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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애첩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썰렁한 주머니와 야윈 지갑 사정에도 거금 2전의 낭비를 개의치 않고 시코쿠 구석까지 옥찰을 내리시는 이 친절. 필시 감격의 눈물에 젖어 이 낭군의 대자대비함을 감사히 여기시리라, 본의 아니게 생색을 내며 급보를 전하오.
일전의 편지로 의뢰하신 점수 목록은 그만하면 알았으니 일일이 말하지 않으셔도 되오. 만사 내 생각 속에 있으니, 우선 에돗코가 하는 것을 보시게나. 할 일 없는 사람이 고맙게도 갑자기 볼일이 생기니 기뻐하며 당장 비술을 써서 구메 선인을 생포했으니 우선은 안심했지. 그래도 총포로 생긴 굳은살(쓸렸다기보다 허물을 벗은 것에 가까움)에 손 거죽 두껍기가 한 척이나 된다는 시골뜨기 병사를 상대로 한 이런 담판은 부드러운 풍류남으로 이름 높은 나로서는 도저히 무리가 아닌가. 물러나겠다고 뻣뻣하게 거절할 판이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참, 어쩌랴. 자네, 아니 애첩을 위해서는 목숨에 여벌만 있다면 둘이든 셋이든 바쳐도 좋다고 할 만큼 친절한 이 몸인지라, 조금도 굴하지 않고 고금 미증유의 용기를 고무해 두세 번의 전쟁을 치른 결과, 무운이 돌보시어 승리하게 되었소. 규수의 몸은 1부 2학년 3반 교실을 종횡무진 마음대로 활보하시게 되었다오.
분명,
“어머나, 믿음직스럽기도 하셔라. 긴 님은 추남인 얼굴과는 안 어울리게 내실 있는 사람이시군요.”
라고 하시리라 생각되어 이 몸의 고명한 공적을 대서특필해 선전하니 대략 이와 같소.
낭군으로부터

-이 편지 도착 무렵에는 분명 상경 중이겠지. 만약 여전히 우물쭈물 고향에 눌러붙어 있다면 이 글을 보는 대로 뛰어나와 도쿄로 출발해야 할 것일세.

* 이해 9월 소세키와 시키는 함께 제1고등중학교 본과 2학년으로 진급했다. 시험 점수가 모자랐던 시키를 위해 소세키가 분주히 노력한 경위를 마치 애첩을 위한 낭군의 마음인 듯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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