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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비평론
· ISBN : 9791128857041
· 쪽수 : 226쪽
책 소개
목차
I.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메티의 엄격함
후손들에게
오직 점증하는 혼돈 때문에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순수예술에 대해
회화와 화가에 대해
〔시도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예술가들도 투쟁할 수 있나요?
〔현실은 작가의 창고다〕
II. 시인이여 이성을 두려워 말라
시인이라고 해서 이성을 멀리할 필요는 없다
표현으로서의 시
시에서의 논리
베라의 시 <어느 부르주아 친구에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
시의 꽃잎을 뜯어내는 것에 대해
〔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서만은 안 된다〕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III. 변증법적·실천적 행위로서의 시
변증법
회의하는 자
〔시를 쓴다는 것은 사회적 실천이다〕
무엇이 아름다운가?
노 젓기, 대화
〔걸작은 살아 있다〕
IV. 시는 사용되어야 한다
인간에 의해 생산된 모든 것에 대해
400명의 젊은 시인들에 대한 심사를 마치고 나서
시와 건축의 결합에 대해
〔시집 출판에 대해〕
≪가정 기도서≫에 대해
≪가정 기도서≫의 사용 지침
〔루르 서사시〕
〔≪시 백선≫에 대해〕
〔스벤보르 시집의 모토〕
〔에피그램 형식에 대해〕
〔예전에는 생각했지〕
V. 진실은 여러 방식으로 침묵될 수도, 말해질 수도 있다
〔<넓고 다양한 사실주의 서술 방식>에 대한 머리말〕
넓고 다양한 사실주의 서술 방식
〔<넓고 다양한 사실주의 서술 방식>에 대한 추가 서술〕
〔셸리에 대한 짧은 노트〕
민중문학
〔옛 시 형식을 사용한 실험에 대해〕
〔오히려 형식적인 것이 덜 중요시되었다〕
형식과 소재
VI. 시어(詩語), 운율, 게스투스
소재와 형식에 대해
불규칙 리듬의 무운시(無韻詩)
〔앞글에 대한 보충〕
클롭슈토크의 시행을 낭송하는 방법에 대해
문학에서 사용되는 게스투스 언어에 대해
게스투스에 대해
시의 번역 가능성에 대해
한스 칼 뮐러의 시 낭송회
〔시 낭송에 대해〕
VII. 쓸모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시
시인의 노래
K씨와 시
〔고트프리트 벤에 대한 노트〕
〔슈테판 게오르게에 대해〕
〔보들레르에 관한 노트〕
쓸모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에서
얼마 전 시인 킨예가 이러한 시기에 자연의 서정을 노래하는 시를 써도 되느냐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써도 된다고 답해 주었습니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자연의 서정을 노래하는 시를 썼는지 물어보았지요. 그는 못 했다고 대답했고 나는 그 이유를 물어보았어요.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독자들이 즐길 수 있는 체험으로 만드는 것을 내 과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이따금 몇 줄을 끄적거리면서도 나는 이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리를 모든 사람을 위해, 즉 비 오는 날 비를 피할 잠자리를 찾아다녀도 집도 절도 없어 빗방울이 그의 옷깃과 목 사이로 그대로 떨어지는 그런 사람들까지도 즐길 수 있는 체험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제 앞에서 나는 그만 움츠러들었어요.”
“예술이 오늘의 상황만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까? 언제나 빗방울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자연의 서정을 노래하는 시가 더 오랜 생명력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짐짓 이렇게 떠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만약 옷깃과 목 사이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더 이상 없다면 그런 시가 쓰일 수 있겠지요.”
작품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잘 알고 지내는 시인이 여럿 있는데, 나는 이들 중 많은 사람이 다른 글을 쓸 때와는 달리 유독 시를 쓸 때면 이성적인 것을 멀리하는 것을 보고 놀랄 때가 자주 있다. 혹시 이들은 시를 단지 감정적인 것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아닐까? 또 오직 순수 감정적인 것이 존재한다고 이들이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게 믿고 있다면 이들은 적어도 감정 역시 사고(思考)처럼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을 안다면 시인들은 보다 조심스럽게 시를 쓰게 될 것이다.
몇몇 특히 시를 갓 쓰기 시작한 시인들은 그들이 정서에 젖어 무엇인가를 느끼려 할 때 이성적으로 생겨난 것이 이 정서를 망쳐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는 것 같다. 이와 같은 태도에 대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러한 걱정이야말로 정말 어리석은 걱정이라는 점이다. 위대한 시인들이 어떻게 작품을 만들어 내는가를 안다면 이러한 걱정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빼어난 시인들은 시를 쓸 때 사려 깊고, 명징한 사색을 멀리하지 않으며 또한 이로 인해 이들 시인의 창작이 방해받을 정도로 이들의 정서는 피상적이고, 불안정하며, 쉽게 사라지고 마는 정서가 결코 아니다. 어느 정도의 들뜬 상태나 격앙됨이 사고(思考)의 명징함과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사람들은 이성적인 판단 기준을 끌어들이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오히려 이 정서를 아주 비생산적으로 만든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싫으면 시 쓰는 것을 단념해야 할 것이다.
시를 좋아하는 문학 동호인들은 시의 꽃잎을 뜯어낸다고 부를 수 있는 냉정한 논리의 도입, 즉 이 연약하고 활짝 핀 꽃과 같은 구성물로부터 단어들과 이미지를 분리해 내는 것에 격렬한 반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하나 말해 둘 것은 사람들이 바늘이나 칼로 꽃을 찌른다고 해서 꽃이 시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시는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으며 비판적인 개입도 잘 견뎌 낼 능력이 있다. 어떤 시행 하나가 좋지 않다고 해서 시 전체가 망가지는 것도 아니며, 또 시행 하나가 잘되었다고 해서 시 전체가 구제받는 것도 아니다. 잘못된 시행을 찾아내는 것과 훌륭한 시행을 찾아내는 능력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며 이러한 능력 없이는 시를 참되게 즐길 수 없다. (...) 장미의 잎을 모두 뜯어내 보아라, 그래도 그 꽃잎 하나하나는 아름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