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30411743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13-12-20
책 소개
목차
자서
1부 뼛속에서 산꿩이 울던 날
자화상
세월아, 삶아
뼛속에서 산꿩이 울던 날
오월
갈대
그러나 나는 살아 있지 않은가
당산철교 위에서
바람 찬 날들의 미루나무처럼
화가 김호석의 법정 스님
호수공원 자작나무 사이로
마포 강변에서
함평천지
정선, 곤드레나물밥
총알택시 안에서의 명상
어느 지천명(知天命)의 비가(悲歌)
천태산 은행나무
2부 그때 너의 촛불은
배롱나무님께
북한산에서 바라본 그녀의 풍경
만다라화들이 영혼의 뻘밭에서 출렁일 때
채광석 형님
그날의 강화 선창가
석농자 홍일선 시인
그때 너의 촛불은
미스터 리의 회상
한겨울, 메타세콰이아를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웠던 날
벽 속에 갇힌 너
못 박힌 세월아
사랑한다는 것은
3부 흰 극락강 너머 광주
용봉동의 삶
광주, 양산동에서
어느 날 무등을 보다가
오월 비
오월 노래
정든 임
이별 후에
평화시장에 와서
육신에게 하는 말
울 아버지 생각
나는 어디에 있는가
밤배 타고 떠난 박종권 시인
흰 극락강 너머 광주
4부 진정,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
이 녹슨 기계
그해 겨울, 봉원사에서
마흔 살에 대하여
어느 날의 독백
진정,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
새봄에
겨울새
하, 중심이 없다
만수산 드렁칡처럼
그래도 절망에게
파도가 방파제에게
겨울나무님께
이승철은
저자소개
책속에서
오월
내 청춘의 가마솥을 달구어 내던
오월 생목숨이 다시 왔구나.
다만 성령으로 반짝이던 들녘과
끝없이 어깨동무한 핏빛 스크럼이
차마 눈부셔 어화둥둥 견딜 수 없고
금남로의 사람들은 무등을 향해 떠났다.
그날 쓰러져 영산강이 된 꽃 넋들은
아무 말씀도 없이 천지를 꽉 채우고
살아, 욕된 눈빛만 남은 자들이 모여
팔뚝 없는 주먹으로 저 먼 길을 가리킬 때
누가 지금 오뉴월 보리밭에서 흔들리는가.
어서 오라, 그대 5월의 젊은 벗들아
우리가 무릎 꿇고 맞이해야 할
오월 생목숨의 날이 바로 오늘이구나.
자서(自序)
그리운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얼마나 많은 천둥과 폭풍우가 내 곁에 휘몰아쳤던가. 나에게 만약 그토록 찰진 그리움의 파편들이 없었다면, 내 생은 아마 가당치도 않았을 것이다. 해 저문 산언덕 너머 그날 서럽게 떠나갔던 황토산 임들이 살고 있다. 그 강 언덕 아래 서글피 우짖던 개망초꽃 한 송이가 전생의 나였다면, 어찌할 것인가. 오늘의 나는 분명, 어젯밤 잉태된 그 숨결로 다시 태어났다.
1983년 12월, 문단이라는 곳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바야흐로 올해가 등단 30주년이 된다. 이를 기념할 겸 육필시집이라는 것을 처음 펴내게 되었다. 그동안 출간했던 시집들과 신작 시 중에서 가려 뽑았고, 또 어떤 작품은 새롭게 손질도 해 보았다. 내 앞에 펼쳐지고 굽이쳤던 지난 30년이란 세월들. 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혹은 장명등 불빛으로 다가와 언뜻 반짝인다. 그 5월 광주에서 쓰러진 벗들과 형제자매들을 절대 잊지 말자고 다짐했던 지난날들이 내게 살아 있다. 민족과 민중의 삶을 포옹하고, 시대의 진실을 그 아우성을 시(詩) 속에 담아내야 한다고 다짐했던 그 시절이 내게 떠오른다. 그러한 자기 다짐이 내 시편들 속에 그동안 얼마나 반영되고 실천되었는지 이번 육필시집을 펴내면서 스스로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즈음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산다는 게 저리도 녹록치 않다. 21세기에 들어섰건만 20세기적 독선과 불통의 정치가 대한민국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남북 분단의 농성 체제는 여전히 견고하고, 철조망 저 너머에 수천 년 동안 함께 피를 나눈 또 다른 형제자매들이 존재하고 있건만, 분단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지배 권력은 민족과 민중의, 저 끈질긴 염원과 갈망을 저버린 채 쇠가시 철조망을 사수하고자 오늘도 발버둥 치고 있다. 그리고 주변을 한 번 돌아보니 가까스로 혹은 질펀하게 혼자만 잘살고자 하는 인간 군상, 그 허망한 몸짓들을 보고, 또 본다.
꿈속에서 핏속에서 피어난 시덥잖은 내 시(詩)가 그래도 세상을 향해 울부짖음을 멈추지 않았을 때 내 삶은 분명코 싱그러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 쉰여섯의 하루 속에서 문득 서울의 가을 하늘을 쳐다보니, 그야말로 미치도록 푸르른 저 얼굴이 날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시련과 우울과 분노에 가득 찼던 연옥 같은 한 시절을 이만큼 견뎌 왔으니, 한세상을 잘 놀았다고 아니 말할 수 없다. 돌이켜 보니, 술 백 잔의 나날로 살아야 했던, 지난날들이 저리도 휘황찬란하게 반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