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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87036012
· 쪽수 : 180쪽
· 출판일 : 2016-01-28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5
제1부 존재의 그늘에 대하여
그 여름의 연가 13
선유도 낙조 14
호수공원 자작나무 사이로 16
존재의 그늘 18
화락천지정처럼 20
못다 쓴 행장 21
마량리 동백나무 숲에서 24
정선, 곤드레나물밥 26
천태산 은행나무님 28
육신에게 길을 묻다 30
저 억새꽃들 32
담양, 세설원에서 35
그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38
제2부 삶과 죽음의 오디세이아
노짱과 김지하와 고은 사이에 마라도가 있다 43
시간의 갈퀴들 62
박찬 시인 돌아가던 날 67
유명산에서 하룻밤을 82
2006년 1월, 강화 풍경 85
기억과 망각의 길목에서 88
일산 호수공원에서 마주친 그녀 91
이카로스의 비망록 92
깡소주 낯빛 같은 날들에게 96
끌림 혹은 꼴림에 대하여 98
그러나 나는 지금 살아있지 않은가 101
제3부 저 멀리 유배당한 시간들
순천 와온에 와서 107
어느 지천명의 비가 109
촛불님과 조중동 112
그해 유월 116
인사동 봄날에 관하여 1 121
인사동 봄날에 관하여 2 124
뼛속에서 산꿩이 울던 날 128
저 산야마다 눈뜬 강물이 130
금강산에서 만난 당신께 132
시월꽃 134
대추리 들녘 136
제4부 내 영혼의 레퀴엠
끝끝내 저 깊숙이 오늘까지는 139
조선 금강송 한 그루 143
변산바다에 와서 146
그 사람, 채광석 시인 148
딱 한 잔만 더 150
다시금 무등으로 우뚝 설 불립문자여 154
화가 김호석의 법정스님 156
육신의 꽃불 혹은 불꽃 158
K를 위한 발라드 160
세월호의 아이들아 162
마을에 연기 나네 164
어느 날 무등을 보다가 165
해설ㅣ철이 167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흔적소리 요란한 골목길 어디서나 가시면류관을 쓴 시절이 가고 또 왔을 뿐, 저만치서 파산된 사내가 저물어갔다. 채석강 층암처럼 덧쌓여가던 바람의 흉터가 휘청거렸고 널브러진 몸뚱이 곁으로 갈매기 몇몇 똑딱선을 재촉할 때 귓불을 간질이던 사랑의 상처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철 지난 변산바다에 와서 내소사 연꽃 미소가 가당키나 할 건가. 엉덩이가 탱탱한 그 여자가 내 핏속에 여직 살아 있다고? 그날 은빛 부챗살을 펼치며 난 말했지. 한세상 살아가려면 사랑이 아니라 씨발 난, 지금, 돈이, 필요해. 해줄 수 있어? 당신은 또 그놈의 돈 타령이냐. 넌 철면피 개자식이야… 썰물 진 바다 위 시든 해당화처럼 묵묵히 고개 숙이던 한 사내의 뒷그림자가 왠지 허전하였다.
함평 학다리 깡촌에서 맨발로 서울까지 달려 왔다면 아무렴, 장한 일이지. 때론 승냥이 울음처럼 엎어져 살았지만, 그래도 서울이란 낯선 땅에서 참숯 한 자루 없이 훨훨훨훨훨, 타오른 게 참말로 용했다. 토막 난 그리움이 함평 학다리 깜박산 산허리를 단숨에 휘감아 돌 때 저물녘 여강 갈대밭에서 우리 이제 헤어지는 연습을 하자. 왔어? 왔어. 그럼 지금껏 당신이 날 만난 건 사랑이 아니었다고? 사랑? 당신 만나면 무심히 살 속으로 파고들고 싶었을 뿐, 허나 요즘 그 따위 체위도 시들어졌어. 우연히 내려앉은 나뭇가지에 그동안 너무 오래 머물렀어. 이제 그만 날자, 날자, 날아가야겠어. 우리 인연은 이만큼서 끝장이야. 돌아갈 언덕도 찾아갈 마당도 사라져 버렸어. 무엇 때문에 부서진 육체들끼리 허구한 날 만지작거리나.
아아아 여보, 그런가요. 오늘 갑자기 울고 싶네요. 하지만 참아야지, 내 참아야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그대 살통 속에 내 마음이 산다고? 지금 당신 때문에 망가져 갈 뿐이라고 말하진 않겠어. 날 사랑한다고? 죽도록 영원히 나만을 사랑하겠다고? 그건 야무진 그대 꿈일 뿐이야. 좆찌리 강산, 니기미야. 나 혼자 먹고 살기도 지금 벅차. 널 끝까지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다만 널 인간적으로 좋아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잖아. 황동 석쇠 위 유황오리 한 마리처럼 지지직 소리가 나도록 제발 날 구워줘. 조근 조근 씹어줘. 난 길 잃었어. 지난여름 내 하반신을 적셔준 그 빗방울처럼 서운찮게 그냥 부서져 버릴 거야. 그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라고 제발 또다시 묻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