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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91130411989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14-01-06
책 소개
목차
황혼일기
작별 ·······················3
불빛 없는 동네 ··················7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1 ························11
6 ························13
7 ························15
8 ························17
15 ·······················19
18 ·······················21
20 ·······················23
지상의 거처
시학(詩學) ····················29
화물선의 유령 ··················31
홀아비의 탱고 ··················36
오직 죽음뿐 ···················40
바르카롤라 ···················43
배회 ······················47
셀러리의 절정 ··················50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에게 바치는 송가 ·····53
알베르토 로하스 히메네스가 날아오다 ········61
망각은 없다(소나타) ···············67
제3의 거처
그 이유를 말해 주지 ················71
모두의 노래
내 사랑 아메리카(1400) ··············79
새들이 오다 ···················83
마추픽추 산정 ··················88
해방자들 ····················105
족장의 훈육 ···················110
반란의 아메리카(1800) ··············113
타타 나초의 음악으로 에밀리아노 사파타에게 ····116
산디노(1926) ··················121
천상의 시인들 ··················127
유나이티드프루트사(La United Fruit Co.) ······130
아메리카여, 그대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않으리라 ··133
찬가와 귀환(1939) ················134
대지의 이름은 후안 ···············137
나무꾼이여 깨어나라 6 ··············139
커다란 기쁨 ···················144
나는 살리라(1949) ················146
나의 당에게 ···················147
대장의 노래
작은 아메리카 ··················151
기본적인 것들에 바치는 송가
엉겅퀴에 바치는 송가 ··············157
양파에 바치는 송가 ···············162
희망에 바치는 송가 ···············166
소박한 사람에게 바치는 송가 ···········168
시간에 바치는 송가 ···············174
토마토에 바치는 송가 ··············177
옷에 바치는 송가 ················182
슬픔에 바치는 송가 ···············186
기본적인 것들에 바치는 새로운 송가
양말에 바치는 송가 ···············191
에스트라바가리오
얼마나 살까? ··················199
침묵하자 ····················203
인어와 술꾼들의 우화 ··············206
점(點) ·····················208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가 ·······209
우리는 여럿 ···················212
기차의 꿈 ····················215
목재를 보내 달라고 청하는 편지 ··········218
마침내, 무아경에서 연인에게 편지를 쓰다 ·····223
백 편의 사랑 소네트
1 ·······················231
이슬라 네그라의 추억
시(詩) ·····················235
파도 속의 독백 ·················238
진실 ······················240
세상의 끝
세상 만들기 ···················247
겨울 정원
겨울 정원 ····················253
개가 죽었다 ···················255
질문의 책
3 ·······················261
44 ·······················262
해설 ······················263
지은이에 대해 ··················280
지은이 연보 ···················283
옮긴이에 대해 ··················291
책속에서
배회
때로는 사람으로 사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멍하게, 양복점이나 영화관에
들어갈 때가 있다, 시원(始原)과 재의 물 위를
떠다니는 펠트 백조처럼.
이발소 냄새는 나를 소리쳐 울게 한다.
난 오직 돌이나 양털의 휴식을 원할 뿐,
다만 건물도, 정원도, 상품도, 안경도,
엘리베이터도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발이 내 손톱이 내 머리칼이
내 그림자가 꼴 보기 싫을 때가 있다.
때로는 사람으로 사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그러나 붓꽃 한 송이를 꺾어 공증인을 깜짝 놀라게 한다거나
수녀의 귀싸대기를 후려갈겨 저세상으로 보내 버린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꽥꽥 소리를 질러 대며 시퍼런 칼을 품고
거리를 활보하다 얼어 죽는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나는 더 이상 어둠 속 뿌리이고 싶지 않다.
떨며, 꿈결인 듯 몸서리치며, 아래로,
대지의 축축한 내장 속으로 길게 뻗은 채,
매일매일 빨아들이고 생각하고 먹어 치우는.
내게 닥칠 그 숱한 불행이 싫다.
더 이상 뿌리와 무덤이고 싶지 않다.
쓸쓸한 지하실이고 싶지 않다, 시체 그득한 창고이고 싶지 않다.
뻣뻣하게 얼어붙은 채, 신음하며 죽어 가고 싶지 않다.
내가 죄수의 얼굴로 도착하는 걸 보면
월요일은 석유처럼 불탄다.
하루가 흐르는 동안 월요일은 찌그러진 바퀴처럼 울부짖다가
밤을 향해 핏빛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나를 밀어붙인다, 구석으로, 축축한 집으로,
창문으로 뼈다귀가 튀어나오는 병원으로,
식초 냄새 풍기는 구둣방으로,
갈라진 틈처럼 무시무시한 거리로.
내가 증오하는 집들의 문에 걸린 소름 끼치는
창자들과 유황색 새들이 있다.
커피 주전자에 잊고 처박아 둔 틀니가.
수치와 공포로 울어야 했을
거울들이 있다.
도처에 우산이, 그리고 독약이, 배꼽이 있다.
나는 태연하게 거닌다, 눈을 부릅뜨고, 구두를 신은 채,
분노하며, 망각을 벗 삼아,
걷는다, 사무실과 정형외과용 의료용품점들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철사 줄에 옷이 널려 있는 마당을 지나친다.
팬티와 타월과 셔츠가 더러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그 이유를 말해 주지
너희들은 물을 것이다. 라일락은 어디에 있냐고.
양귀비로 뒤덮인 형이상학은?
또 종종 낱말들을
두들기며 구멍과 새들을
한가득 만들어 놓던 빗줄기는?
내게 일어난 일을 너희들에게 낱낱이 말해 주마.
나는 종(鐘)과
시계와 나무들이 있는,
마드리드의 한 구역에 살았다.
그곳에선 가죽의
대양(大洋) 같은 카스티야의
메마른 얼굴이 바라보였다.
제라늄이 사방에서
꽃망울을 터뜨렸기 때문에 나의 집은
꽃들의 집이라고 불렸다. 개와
아이들이 뛰노는
아름다운 집이었지.
라울, 기억하는가?
라파엘, 그대도 기억하지?
페데리코, 땅속에서,
그대도 기억하는가,
유월의 햇살이 그대 입속의 꽃들을 질식시키던
발코니가 있는 나의 집을?
형제여, 형제여!
큰 목소리로 외치는
모든 것들, 상품들의 소금,
고동치는 빵 덩이들,
메를루사 사이에 조각상이 창백한 잉크병처럼
서 있던 아르구에예스 우리 동네의 시장들.
숟가락에 올리브유가 넘쳐흘렀고,
거리엔 손발의 깊은 맥박
가득했다.
미터, 리터, 삶의
예리한 본질,
켜켜이 쌓인 생선,
풍향계도 지치는
차가운 태양이 걸린 지붕들의 짜임새,
흥분한 감자들의 섬세한 상아(象牙),
굽이치며 바다로 굴러가는 토마토의 물결.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그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땅에서
화톳불이 치솟아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때부터 불길이,
그때부터 화약이,
그때부터 피가.
무어인들과 비행기를 탄 불한당들이,
공작부인들과 반지 낀 불한당들이,
축복의 말을 퍼붓는 검은 수도사들과 불한당들이
하늘을 통해 아이들을 죽이러 왔다.
그리고 거리마다 아이들의 피가
넘쳐흘렀다, 아이들의 피처럼, 단순하게.
자칼들도 멸시할 자칼들아,
메마른 엉겅퀴도 물었다가 뱉어 버릴 돌멩이들아,
독사조차 증오할 독사들아!
나는 스페인의 피가
너희들에 맞서 솟구쳐
긍지와 칼의 도도한 물결 이루며
너희들을 익사시키는 것을 보았다!
반역자
장군들아.
폐허가 된 나의 집을 보라.
박살 난 스페인을 보라.
그러나 무너진 집마다 꽃 대신
불타는 쇳덩이가 나온다.
그러나 스페인의 틈새마다
스페인이 생겨난다.
그러나 죽은 아이마다 눈 달린 총이 나온다.
그러나 죄악마다 언젠가 너희들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을
총탄이 태어난다.
너희들은 물을 것이다. 왜 당신의 시는
꿈과 나뭇잎과 조국의 거대한
화산들에 대해 노래하지 않느냐고.
와서 거리의 피를 보라.
와서 보라,
거리의 피를.
와서 보라, 피를,
거리에 뿌려진!
시(詩)
그래 그 무렵이었다… 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선지 강에선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목소리는 아니었다. 말도,
침묵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다.
밤의 가지들로부터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혹은 내가 홀로 돌아올 때
얼굴도 없이 저만치 지키고 섰다가
나를 건드리곤 했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입술은
얼어붙었고
눈먼 사람처럼 앞이 캄캄했다.
그때 무언가가 내 영혼 속에서 꿈틀거렸다,
열병 혹은 잃어버린 날개들.
그 불탄 상처를
해독하며
난 고독해져 갔다.
그리고 막연히 첫 행을 썼다.
형체도 없는, 어렴풋한, 순전한
헛소리,
쥐뿔도 모르는 자의
알량한 지혜.
그때 나는 갑자기 보았다.
하늘이
흩어지고
열리는 것을
행성들을
고동치는 농장들을
화살과 불과 꽃에
들쑤셔진
그림자를
소용돌이치는 밤을, 우주를 보았다.
그리고 나, 티끌만 한 존재는
신비를 닮은, 신비의
형상을 한,
별이 가득 뿌려진
거대한 허공에 취해
스스로 순수한
심연의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나는 별들과 함께 떠돌았고
내 가슴은 바람 속에 풀려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