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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두보 시선

[큰글씨책] 두보 시선

두보 (지은이), 김의정 (옮긴이)
  |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06-15
  |  
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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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두보 시선

책 정보

· 제목 : [큰글씨책] 두보 시선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91130414492
· 쪽수 : 195쪽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두보의 시 작품들을 소개하는 책. 두보의 다양한 시풍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원전에 수록된 1457수 중 62수를 가려 뽑아 번역했다. 여러 주석서 가운데 자료 가치가 가장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구조오의 <두시상주>를 기본 자료로 삼았다. 여기서는 우국지사의 모습보다는 생활인으로서의 두보를 만날 수 있다. 한 편의 이야기 같은 다양한 장편시들도 수록했다.

목차

독서와 유람 그리고 장안에서의 생활
태산을 바라보며 望嶽 3
좌씨 댁의 밤잔치 夜宴左氏莊 5
봄날 이백을 생각하며 春日憶李白 7
이 밤이 어떤 밤인가 今夕行 9
전차의 노래 兵車行 11
취해 부르는 노래 醉時歌 16
종손 두제에게 보여주다 示從孫濟 21
가을비 탄식 秋雨嘆 三首其一 24
장안에서 봉선으로 가며 회포를 읊어 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 26

안사의 난과 장안 억류, 탈출과 등용
눈은 내리고 對雪 39
봄의 전망 春望 41
강가에서 슬퍼하며 哀江頭 43
빗속에 소단의 집을 찾아 雨過蘇端 46
강촌 羌村 三首其一 49
곡강 曲江 二首其一 52
초가을 막바지 더위에 서류는 쌓이고 早秋苦熱堆案相仍 54
위팔 처사에게 드림 贈衛八處士 56
석호의 관리 石壕吏 60
집 없는 이별 無家別 64

퇴직과 떠도는 삶의 시작
꿈에 본 이백 夢李白 二首其一 71
진주 잡시 秦州雜詩 二十首其一 74
찬공 계신 곳에 묵으며 宿贊公房 76
빈 주머니 空囊 78
이공산 泥功山 80
건원 연간에 동곡현에 잠시 부쳐 살며 부른 노래 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 七首其一 82
성도부 成都府 84

저자소개

두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중국 당대(唐代)의 시인으로 이백(李白)과 함께 중국 시단을 대표하며 우리에게도 친숙한 시인이다. 그는 본래 유가(儒家)로서 정치에 몸담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 요인으로 말미암아 결국 시인의 길을 가게 되었다. 두보가 처한 시대는 당나라가 찬란한 번영을 구가하다가 안사의 난으로 제국의 붕괴 위기를 맞았던 때였다. 그의 생애는 크게 보아 755년에 발발한 안사의 난을 중심으로 전·후반으로 양분된다. 안사의 난 이전, 그는 당대의 다른 시인들처럼 독서와 유람으로 견문을 쌓아 착실히 벼슬에 나아갈 준비를 했다. 735년 진사 시험의 낙제는 그에게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는 재차 유람에 나서는 한편 이백, 고적(高適) 등과 교류하기도 했다. 746년 이후 두보는 거처를 장안으로 옮겨 와 고위 관리에게 벼슬을 구하는 간알시(干謁詩)를 써서 보내며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자 애썼다. 이러한 생활이 10년간 지속되면서 두보는 점차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였고 당시 귀족들의 사치와 서민들의 궁핍한 삶에 대해 절감하기 시작했다. 755년은 그에게 여러모로 특별한 해였다. 그해 10월, 그는 10년 노력의 결과로 무기의 출납을 관리하는 우위솔부주조참군(右衛率府?曹參軍)이라는 미미한 벼슬을 받고 스스로 낭패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국가적으로는 이로부터 한 달 뒤인 11월, 당 왕조를 거의 멸망시킬 만큼 파급력이 대단했던 안사의 난이 발발한다. 이후 두보의 삶은 전란과 긴밀한 연관을 맺으며 전개된다. 두보는 잠시 장안 근처 부주(?州)에 떨어져 살던 가족을 만나러 갔다가 어린 아들이 먹지 못해 요절한 사실을 알고 참담한 마음으로 장편시 <장안에서 봉선으로 가며 회포를 읊어(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를 남겼다. 벼슬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당시 귀족들의 사치와 서민들의 궁핍한 처지를 그렸으며 총체적인 사회의 부패상을 고발했다. 이후 두보의 삶은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다. 전란의 와중에 현종(玄宗)은 사천으로 피난 가고 숙종(肅宗)이 영무(靈武)에서 임시로 즉위한 사실을 알고 두보는 이를 경하하기 위해 영무로 가던 중 반군에 붙잡혀 장안으로 호송되어 얼마간 억류되었다. 이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봄의 전망(春望)>을 썼다. 757년 2월, 숙종이 행재소를 봉상(鳳翔)으로 옮겼을 때 두보는 위험을 무릅쓰고 장안을 탈출해 숙종을 배알해 그 공으로 좌습유(左拾遺) 벼슬을 받았다. 그러나 곧 반군 토벌에 실패한 방관(房琯)을 변호하다 숙종의 미움을 사게 되고 그것은 곧이어 파직으로 이어졌다. 화주사공참군(華州司功參軍)으로 좌천된 두보는 벼슬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침내 관직을 버리고 진주(秦州)행을 감행한다. 두보의 대표적 사회시로 알려진 이른바 <삼리(三吏)>와 <삼별(三別)>이 이즈음에 지어졌다. 759년 두보는 진주에서부터 여러 지역을 전전해 성도(成都)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두보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초당에 거처를 마련하고 나중에는 엄무(嚴武)의 추천으로 막부(幕府)에서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이란 벼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엄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두보는 성도를 떠나 운안(雲安)을 거쳐 기주(夔州)에 이르게 되었다. 기주는 성도에 비해서도 더욱 낯선 곳이었지만 비교적 물산이 풍부했던 이곳에서 두보는 어느 정도 심신의 안정을 찾고 시가 창작에서도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때의 대표작으로 <가을날의 흥취(秋興八首)>를 꼽을 수 있다.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풍요로웠던 과거와 일순간에 일어난 전란을 지극히 미려한 언어로 수를 놓듯이 새긴 이 시는 율시(律詩)가 이룩한 미감의 정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두보는 기주 생활에 결코 안주하지 못했다. 중앙 정부에서 벼슬하리라는 희망을 끝내 놓을 수 없었기에, 768년에 협곡을 빠져나가 강릉(江陵)을 거쳐 악양(岳陽)에 이르렀다. 이후 그의 생활은 주로 선상에서 이루어졌고 건강이 악화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가운데, 악양과 담주(潭州) 사이를 전전하다 뱃길에서 사망했다. 시인 두보가 품었던 뜻은 시종일관 정치를 바르게 펼쳐 백성을 구원하는 데 있었으나 운명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전란의 틈바구니에서 그의 삶은 자기 한 몸도 돌보기 힘들 만큼 곤란해지는 때가 많았다. 시인으로 이름을 남기는 것이 그의 꿈은 아니었으나, 역설적으로 상황이 열악해질수록 그는 더욱더 시인의 눈으로 피폐한 사람과 영락한 사물을 따뜻하게 돌아보고,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시를 썼다. 사후에 그에게 붙은 ‘시성(詩聖)’이나 ‘시사(詩史)’라는 칭호는 그의 고단하고 정직했던 삶에 대한 애도 어린 칭송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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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정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성결대학교 파이데이아 학부 조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두보 기주시기 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중국고전시가를 다년간 연구하였다. 주요 논문으로 「이백 한적시에 보이는 시간의 흐름에 대하여-‘춘일취기언지’를 중심으로」, 「두보가 만난 사람」, 「명말 청초 문인 장대의 시세계」, 「영상 미학을 통해 본 중국 고전시의 재해석」, 「여성, 늙음을 말하다」, 「興, 오래된 비유」, 「시는 어떻게 광고가 되는가」 등이 있고 『쾌락의 정원(한정우기)』, 『장물지』(공역), 『사치의 제국』(공역) 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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