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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유년 시절](/img_thumb2/9791130427522.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91130427522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16-08-17
책 소개
목차
최초의 환희
송어
시장광장
정원
습득물
학교와 학생들
마술사
고해
에바
달리기 경주
성탄 미니어처
복수
빛 기부
병에 걸리면
검
헌금 봉납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에서
이즈음 피조물을 평가하는 내 잣대가 예전의 그 공평성을 잃었다. 이때부터 나는 이미 위의 작은 요괴들이 악마의 후예라는 판단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스럽게 생긴 작은 벌레들은 우리가 그들의 존재 의미를 모른 채 단지 우리 자신의 두려움을 그들에게 투영함으로써 거부감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은 그 후 한참 세월이 흐른 뒤였다. 이따금 진기하게 생긴 땅거미들이 눈에 띄기도 했는데, 그것들은 어머니의 살생부 맨 윗자리를 차지했음에도 내가 한 번도 죽일 수가 없었다. 그것들은 진홍빛을 띠고 있었으며, 단단하면서도 벨벳처럼 부드러웠다. 마치 살아 있는 보석처럼 그것들은 검은 땅바닥을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달아났다. 나는 이따금 땅거미를 잡아 집게손가락에 올려놓고 그것이 손가락 끝까지 달려가게 하는 재미에 빠지곤 했다. 햇빛이 땅거미의 몸을 투과하여 그것의 핏빛이 반짝거리며 연분홍색을 띠게 되면 나는 다시 그것을 놓아줬다. 땅거미들이 어머니 쪽으로 가까이 가면 나는 어머니 몰래 그것들을 흙으로 덮어 숨겨 주었다.
모든 것, 아주 끔찍스러운 것까지도 포함해서, 어떤 것을 대면해도 우리는 그 형상을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러니까 누구나 익히 잘 아는 형상과 일치시켜 바라보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은 겁 없이 이 세상에 머물러 있게 된다.
손가락을 탈골시킬 때마다 탈골된 부위의 피부가 심하게 일그러지고 기형을 띠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던 나는, 그 효과를 증대하기 위해 펜에 잉크를 묻혀 정성스럽게 이 부위에다 아주 작은 얼굴을 그려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작업은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하지만 그 손가락을 어머니가 보면 안 되기 때문에 나는 아침에 세수할 때 물과 비누로 손가락의 얼굴을 씻어 냈다. 엄지손가락 근육을 강제로 움직여서 그곳에 그려진 조그맣고 새카만 얼굴이 일그러지게 하고자 했던 내 기대는 충족되었다. 선생님이 한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했는데, 그 아이가 내 손가락을 보자 거의 울음이 날 정도로 웃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그로 인해 그 아이는 벌을 받았고, 이 사건은 라이징어로 하여금 나를 항상 말썽만 일으키는 놈이라는 악명을 또다시 퍼뜨리게 하는 절호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