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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러시아소설
· ISBN : 9791130461458
· 쪽수 : 254쪽
책 소개
목차
해설 ······················vii
지은이에 대해 ··················lii
나오는 사람들 ···················3
제1장 ······················7
제2장 ······················23
제3장 ······················32
제4장 ······················40
제5장 ······················50
제6장 ······················68
제7장 ······················70
제8장 ······················75
제9장 ······················91
제10장 ·····················100
제11장 ·····················115
제12장 ·····················122
제13장 ·····················130
제14장 ·····················141
제15장 ·····················151
제16장 ·····················168
제17장 ·····················175
옮긴이에 대해 ··················194
책속에서
·“어째서 그토록 철석같이 믿고 계신거지요?”
“정 답을 원하신다면 말씀드리지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아는 것은, 전 반드시 돈을 따야만 한다는 점이고, 그 길만이 역시 제 유일한 탈출구라는 점입니다. 그건 어쩌면 반드시 돈을 따야만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필요성이 너무도 절박해서, 그래서 만약 당신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저 맹목적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거라면요?”
“제가 장담하건대 당신은 제가 뭔가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러우신 거지요?”
“전 그런 것에 관심 없어요.” 폴리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무심한 듯 대답했다. “뭐, 정 답을 듣고 싶으시다면, 네, 맞아요, 전 당신이 진심으로 무언가에 대해 고통스러워할 수 있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워요. 당신도 괴로워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리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는 거예요. 당신은 진중하지도 못하고, 더할 나위 없이 제멋대로인 사람이거든요. 대체 당신은 무엇 때문에 돈이 필요한 거지요? 일전에 당신이 내게 늘어놓았던 이유들을 다 생각해 보아도, 어디 하나 심각한 거라고는 없었거든요.”
·내게 폴리나는 언제나 수수께끼였다. 예를 들어 바로 지금 애스틀리 씨에게 내 사랑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내,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 뭔가 정확하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가 문득 놀라 아연실색할 정도로 그녀는 내게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정확하기는커녕, 모든 것이 정확한 것과는 거리가 먼, 환상적이고, 이상하고, 터무니없는 것들뿐이었다.
·“자, 판이 시작됩니다!” 크루피어가 소리쳤다. 판이 돌기 시작했고, 30이 나왔다. 졌다!
“다시! 다시! 다시! 다시 걸어!” 할머니가 소리쳤다. 나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고, 어깨만 으쓱하고는 다시 12 프리드리히를 걸었다. 판은 오랫동안 돌았다. 할머니는 온몸을 떨며 판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정말로 또다시 제로가 나와서 돈을 딸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놀란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할머니의 얼굴은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확신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고, 지금이라도 당장 “제로!” 라는 외침이 울려 퍼질 것이라는 확고 불변한 기대에 물들어 있었다. 구슬이 칸에 탁 튕겨 들어갔다.
“제로!” 크루피어가 소리쳤다.
“뭐!” 할머니는 미칠 듯한 승리감에 젖어 자랑스러운 듯이 내 쪽으로 돌아보았다.
나도 노름꾼이었다. 바로 그 순간 난 이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사지가 후들거렸고, 머리는 띵했다. 물론 열 번을 굴려 세 번이나 제로가 나왔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 특별히 놀랄 만한 것은 아니다. 그저께 세 번이나 연속으로 제로가 나오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구슬이 무슨 번호에 떨어졌는지를 종이에다 열심히 기록하고 있던 노름꾼 하나가, 바로 어제는 하루 종일 단 한 번밖에 제로가 나오지 않았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할머니에게는 특별히 친절하고도 정중하게 셈을 한 돈이 지불되었는데, 그것은 아주 큰 액수를 딴 사람에게 걸맞은 대우였다. 할머니는 정확히 420프리드리히, 다시 말해, 4000플로린과 20프리드리히를 받게 되었다. 20프리드리히는 금화로 받고, 4000플로린은 은행권으로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 할머니는 더 이상 포타피치를 부르지 않았다. 그럴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을 쿡쿡 찌르지도 않았고, 외면적으로는 떨지도 않았다. 이렇게 표현해도 좋다면, 할머니는 속으로 떨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를 목표로 한 듯, 하나에 온몸과 마음을 집중하고 있었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 저 사람이 한꺼번에 4000플로린까지만 걸 수 있다고 했지? 그래, 그럼 4000플로린을 가져다가 빨강에 다 걸어.” 할머니가 결정했다.
말려 봐야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판이 돌기 시작했다.
“루즈!” 크루피어가 외쳤다.
다시 4000플로린을 땄으니, 합이 8000이 되었다.
“4000은 나를 주고, 4000은 다시 빨강에 걸어.” 할머니가 명령했다.
나는 다시 4000을 빨강에 걸었다.
“루즈!” 심판이 또다시 외쳤다.
“전부 1만 2000이야! 그걸 전부 이리 줘. 금화는 여기 지갑 속에 넣고, 지폐도 잘 챙겨. 좋아 이만하면 됐어! 집으로 가자! 의자를 밀어!”
·“당신은 무감각해지신 겁니다,” 그가 말했다. “당신은 삶을 거부했고, 자신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을 거부했고,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인간으로서의 의무도 거부했으며, 친구들마저(그래도 당신에게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거부했습니다. 도박에서 돈을 따는 것 이외의 어떤 목표도 다 거부했으며, 심지어 자신의 추억조차도 거부했습니다. 전 당신이 삶의 치열하고 강렬한 순간을 살아가던 때를 기억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때 당신이 가졌던 최고로 멋진 인상들을 모두 잊어버렸다고 전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당신의 꿈이나 당신의 가장 절실한 소망은 고작 홀수, 짝수, 빨강, 검정, 가운데 열두 숫자들 등등 뭐 이런 것이 전부입니다. 제가 장담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