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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91130671024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24-05-1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림은 기묘했고 형태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왠지 섬뜩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강 둔치에는 간신히 눈에 들어올까 말까 한 희미한 초록빛이 감돌고 있었는데, 그 초록은 창백한 강물 색과 섞여 바다 쪽으로 계속 이어졌다. 동물도 새도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멀리서 보니 그림 속 어디에도 생명체를 위한 공간은 없는 것 같았다. 어쩐지 길고 강렬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서서히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목이 뭔 줄 아니?”
미묘하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지나치게 무심하고 단정해서 도리어 엄마의 흥분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제스는 그 이유를 알았다. 그림에 제목을 붙이다니……. 할아버지는 지금껏 자기 그림에 한 번도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저 그림을 그렸고, 보는 이들이 그 그림을 느끼도록 내버려둘 뿐이었다. 엄마는 그림을 뒤로 돌려 할아버지가 끼적인 글자를 가리켰다. 제스는 그것을 큰 소리로 읽었다.
“리버보이.”
그때 그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폭포 꼭대기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소년. 키가 무척 컸고, 햇빛이 눈부신 탓에 정확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소년인 것은 분명했다. 소년은 검은 반바지만 입고 있었다. 아니, 사실 그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제스는 소년이 자신을 봤는지 못 봤는지 알지 못한 채 가만히 서서 그를 응시했다.
소년은 움직이지 않았고 제스를 바라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마치 자신이 물의 일부인 것처럼 그저 미동 없이 그곳에서 있을 뿐이었다. 문득 제스는 소년이 계곡의 가장자리가 아니라 급류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저 강력한 물살 속에서 어떻게 저렇게 고요히 서 있을 수 있는 거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부릅떴지만 햇빛 때문에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눈을 몇 번 깜빡이고 문지른 뒤 다시 소년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소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제스는 그 후로 몇 분 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주위를 살피며 귀를 기울였다. 소년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제스는 갑자기 불안하고 초조해져서 급히 별장을 향해 내달렸다.
“왜 울고 있니?”
소년이 다시 물었다. 제스는 한쪽 손을 흐르는 물살에 갖다 댔다. 아직은 낯선 소년에게 마음을 열 준비가 안 돼 있어서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넌 누구니?”
소년이 대답하려 했지만 갑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절박하고 긴박한 감정이 울컥 솟아올라 결국 제스는 소년의 대답을 막았다. 있잖아, 아직은 네가 누군지 알고 싶지 않아.
“말하지 마.”
제스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스스로의 태도에 당황했다. 예전보다 더 당혹스러운 기분으로 눈을 내리깔며 다시 한번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누군지 말하지 마. 그냥 조금만 더 그렇게 미스터리로 남아줘. 지금은 더 이상 진실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