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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30821276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23-12-26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그냥 전화했어
여씨
오이와 바이올린
그 여자
나는 2번이다
너무 사소한 죽음
동거의 조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날개가 아니다
시인 이상
작품 해설 : 이 평범하고도 특별한 우리 삶_ 박덕규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리면 그릴수록 그림과 멀어진다는 말을 종종 했거든, 하연이. 살아서 펄떡거리는 어떤 느낌, 그것을 그리고 싶어서 붓을 들었는데 그 느낌을 캔버스에 옮기기도 전에 생생하던 그것이 죽어버린다는 거야. 그러니까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은 이미 죽은 그림이라는 거지. 하연이 그렇게 수많은 그림을 그렸으면서도 한 번도 전시회를 열지 않은 것 또한 그 때문이야. 제주에서라도 개인전을 가져보는 게 어떻겠냐고 수도 없이 권했는데 그럴 때마다 하연이 그렇게 말했거든.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죽은 그림을 전시장에 걸어놓을 순 없다고 말이야. 화폭에 담으려고 하는 순간 달아나버린 그 느낌이 다시 자기를 찾아와줄 때까지 기다리는 하연의 모든 그림은 그러니까 늘 미완성인 거지, 말하자면.
-「그냥 전화했어」
오이와 바이올린. G가 오이라면 K는 바이올린이다. 꼬인 것 없이 시원한데 왠지 밍밍한, 그러나 쉽게 질리지 않는 남자가 G였다. K는 섬세하며 날카로워 다치기가 십상인, 그리고 끊어질 듯이 이어지는 그래서 온전히 다 듣고 있으면서도 뭔가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예민하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 바이올린 연주를 떠올리게 하는 남자였다. 게다가 무엇보다 K는 웃음을 잃은 남자였다. 늘 뭔가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는데 그 집중이 그를 약간 화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남자였다, K는. 그에 반해 G는 느닷없이 웃음을 토해내 상대를 놀라게 만들곤 했다. 맥락에 맞지 않는 웃음 때문에 약간 부족해 보일 때도 있었지만 나는 G의 헤픈 웃음이 싫지만은 않았다. G가 입을 활짝 연 채 그런 웃음을 터뜨릴 때마다 어쩌면 G는 완전히 솔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맛을 남기지 않는 오이처럼. 게다가 G는 영혼 따위 운운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살아갈 것 같은 남자였다.
-「오이와 바이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