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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56052777
· 쪽수 : 327쪽
· 출판일 : 2021-11-25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1부 전쟁과 디아스포라
들어가며
고려인 디아스포라, 떠도는 자들의 이야기·이숙 - 김숨의 《떠도는 땅》
부유하는 경계인의 삶, 재일한인 극작가의 역사 쓰기·최정 - 정의신의 《야끼니꾸 드래곤》
다시 써야 할 근현대사, 잔류일본 여성이라는 표상 너머·김은혜 - 김진의 《숲의 이름》
차마 따라 죽지 못한 여성 ‘미망인(未亡人)’·최은영 - 박남옥의 〈미망인〉과 신상옥의 〈동심초〉
2부 분단 이후, 독재와 산업화
들어가며
문학적 기억으로 추념하는 실향민의 이야기·이숙 - 김원일의 〈도요새에 관한 명상〉, 《마당깊은집》, 〈마음의 감옥〉, 〈비단길〉
호스티스, 도시의 주변부를 떠도는 훼손된 육체·최은영 - 이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
산업화의 그늘, 타자화된 여공들의 주체적 삶의 재현·유인실 - 석정남의 《공장의 불빛》, 장남수의 《빼앗긴 일터》, 송효순의 《서울로 가는 길》
검열의 시대, ‘부랑 고아’와 ‘가난’의 형상화·김은혜 - 황미나의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
3부 사회적 참사와 트라우마
들어가며
피폭과 고통의 과거-미래들, 공포의 트라우마와 그 침묵의 소리들·유인실 - 허수경의 〈원폭수첩〉, 이성교 〈광도(히로시마) 연가〉
서사의 그물망으로 끌어올린 ‘생존’의 시간과 재현의 불/가능성·김은혜 - 한상훈·손영수의 《삼풍》
대구지하철 참사와 유족, 사회적 애도의 부재와 방치된 슬픔·최정 - 배삼식의 《먼 데서 오는 여자》
자본의 음험한 욕망과 생명 존중 안전불감증이 빚은 세월호 참사·유인실 - 강은교 외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방민호의 《내 고통은 바닷속 한 방울의 공기도 되지 못했네》, 《세월호는 아직도 항해 중이다》
4부 재난 ‘이후’, 은유되는 미래의 타자들
들어가며
감염의 불안과 공포의 현재성·이숙
혐오의 시대를 뚫고 나온 ‘이상한 몸’들·최정
새로운 생명의 출현·최은영
저자소개
책속에서
기록에 의하면, 1937년 9월 21일부터 11월 15일까지 고려인들은 소설 속 인물들처럼 가축 싣는 화물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한 달 넘은 수난의 시간을 보내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에 강제이주됐다. 당시 연해주에 살았던 3만 6천442가구의 17만 1천781명 중 10만여 명은 카자흐스탄으로, 7만여 명은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당했다고 한다.
이 비극의 역사가 문학적, 예술적으로 재현되어 후대에 고스란히 기억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다행스럽다. 그러나 동시에 안타깝게도 1991년 소련 해체 후 고국에 돌아온 고려인 후손들이 이방인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다시 겪었던 애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떠도는 땅》에서 문학적으로 재현된 고려인 강제이주는 망각하지 않아야 할 역사적 재난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디아스포라의 역사로서,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역사 속에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 그 어디에서도 역사의 주체로 기억되지 못한 ‘재일한인’, 역사의 언술 주체로 자리를 점유하지 못했기에 오랜 시간 발화되지 못했던 소수자의 목소리, 공식적인 일국사(一國史)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역사 속 타자들의 삶을 한일 양국의 무대 위에 복원하고 있는 정의신의 작업은 그 자체로 디아스포라 작가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치열한 실존적, 문학적 응전(應戰)인 동시에 재일한인 후세대로서 새롭게 써나가고 있는 ‘변방의 역사 쓰기’라고도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디아스포라의 삶은 먼 곳에 있는 역사가 아니며,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전 지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차별과 배제, 보이지 않는 그 경계를 넘어 치열하게 써나가고 있는 변방의 역사, 소수자의 문학은 ‘우리’의 사유를, ‘우리’의 존재를 확장시킬 수 있는 귀중한 다성적(多聲的) 목소리인 동시에 누락된 역사의 한 부분임을, 새롭게 써나가야 할 역사의 가능성임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랜 시간 그 어디에서도 환대 받지 못한 유랑의 삶, 여전히 진행형인 흩어진 역사 속 타자들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마주하고, ‘잇고’, 사유할 것인가. 여전히 부유하는 디아스포라의 목소리를 우리는 어떻게 듣고, 응답할 것인가. 역사의 변방을 떠돌았던 그들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에 응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물을 수 있어야 하고 기꺼이 물어야 한다."
《숲의 이름》에 등장하는 ‘계양리’는 실재하지 않은 허구적 장소다. 이곳은 마을을 헤치는 지네에게 처녀를 제물 삼아 갖다바치며 마을의 안위를 도모했다는 인신공희의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자, 조선 말에는 마을 지주에게 여성을 보쌈해 바치는 일이 빈번히 이뤄졌던 곳이었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는 산채로 사람을 해부해 묻은 생체 실험의 장소로 마을 사람 다수가 이곳에 묻혔고, 전쟁 이후에는 얼굴이 까맣거나 하얀, 버려진 혼혈아들이 이곳의 고아원에서 길러졌다가 화재로 불타 없어졌다. 폭력과 비극의 장소인 이곳을 배경으로 권노식 일가의 만행과 이 만행을 지켜본 윤과 그 만행을 들추는 그의 손자 권영희의 서사가 펼쳐진다.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기억을 매개로 이들의 엄마인 나나미의 서사도 묻어나온다. 작품에서는 그려지지 않았던,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작품 너머, 역사적 진실을 찾아보는 행위도 작품을 읽는 하나의 방향일 것이다. 미야모토 나나미의 삶이 한국 근현대사의 어떤 지점과 접촉하고 있을지를 어림짐작해보는 것, 그리하여 서사 너머, 이들의 이야기를 나눌 감수성을 키우는 것, 이것 또한 서사적 상상력의 한 쓸모가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