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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91156121244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18-11-09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서장_호락논쟁 이모저모
조선의 3대 논쟁|송시열의 후예들, 시대의 물음에 답하다|핵심 주제들|또 다른 명칭, ‘인성물성人性物性 논쟁’
1장_논쟁 시작
1. 권상하와 제자들
송시열과 권상하|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한산사의 봄을 기약하다
2. 한산사 논쟁
한산사 가는 길|한산사의 첫날|둘째 날 이후, 귀향
3. 논쟁은 서울에서도
김창협․김창흡 형제|남산처사 조성기|서울의 편지논쟁
2장_논쟁 주제
1. 성리학은 무엇인가
유학과 성리학|주자학의 성립|사단칠정논쟁
2. 호락논쟁의 3대 주제
미발未發, 마음의 정체|인성과 물성, 인간과 외물의 관계|성인과 범인, 인간의 변화와 평등
3. 논쟁 아래 맥락과 현실
관점과 맥락|이론은 이론, 현실은 현실
3장_학파의 형성
1. 정변의 소용돌이
병신처분|경종과 신축환국․임인옥사|낙향하는 호론, 쑥대밭이 된 낙론
2. 영조, 새 판을 짜다
탕평 선포|학學-정政 체제를 분리하라!|한원진의 기대와 좌절|영조와 낙론의 인연
3. 만남과 논쟁
이재, 내일을 준비하다|비래암 강학회|한천시 논쟁
4장_빛과 그늘
1. 호론의 최고봉 한원진
정학正學의 수호자|제2의 송시열을 꿈꾸며|《주자언론동이고》, 완전무결한 주자학
2. 낙론을 부흥시킨 김원행
서울 명문가의 후예|일상에서 찾는 진실한 마음|학문공동체 석실서원
3. 삼무분설三無分說, 호론의 날카로운 칼
변화의 기로에서|호론의 디스토피아|보편 사상의 가능성과 한계
5장_복잡해진 지형
1. 안팎에서 부는 바람
청, 제국이 되다|김창업의 《연행일기》|오랑캐들의 부상|이익과 유행, 조선을 흔들다|떠오르는 계층들
2. 철학 논쟁 변질하다
윤봉구와 화양서원 묘정비|묘정비 사건․송시열 영정 사건|북당, 남당과 얽히다
3. 분열하는 학파들
정조 초반의 파란|갈등하고, 오고가고|시파, 벽파와 다시 얽히다
6장_반성과 성찰
1. ‘공담 비판’에서 실학까지
혈전血戰에서 벗어나기|영조와 정조, ‘한 쪽을 편들면 다툼이 생긴다’|남인과 소론, ‘학문으로 후세를 죽이지 말라’|실實을 향하여
2. 호락논쟁을 뛰어넘은 홍대용
공관병수公觀並受, 공평하게 보고 두루 받아들이기|‘저들’에 대한 이해|차별이 사라진 범애汎愛의 세계
3. 타자 담론 파고들기
동양의 고귀한 야만인|동서고금의 타자들
7장_철학 왕국의 황혼
1. 파국
정순왕후의 수렴청정|반동의 여파|호론과 낙론의 악수惡手
2. 세도世道에서 세도勢道로
또 바뀐 정국|이야기 만들기|잃은 것과 지킨 것
3. 세 가지 유산
집마다 학설, 사람마다 의견|위군자僞君子의 가짜 도학|새로 움트는 싹들
맺으며_‘지금 여기’에서의 호락논쟁
철학과 이념|역사 이야기와 소통|마음의 참 모습|타자에 대한 성찰
부록
연표
학맥․관계도
참고논저
주석
찾아보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충청도의 노론 학자들은 당시에 호학湖學, 호론湖論, 호당湖黨, 아니면 그냥 호湖로 불렸다. 충청도의 다른 이름이 ‘호서湖西’이기 때문이었다. 서울에 속했던 학자들은 낙학洛學, 낙론洛論, 낙당洛黨, 아니면 낙洛으로 불렸다. 서울에 ‘낙洛’이 붙은 것은 중국의 도시 낙양洛陽이 수도의 보통명사처럼 쓰였기 때문이었다. …… 사실 ‘논쟁’이란 말도 후대에 붙은 것이다. 당시에는 호락시비湖洛是非, 호락변湖洛辨, 호락이학湖洛二學, 호락본말湖洛本末 등으로 불렸다.
18세기 조선의 지역, 학문, 국제정세라는 세 가지 지표는 바야흐로 ‘상황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호론은 기존의 지향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송시열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했고, 남인과 소론은 배척의 대상이었으며, 청은 오랑캐이자 타도할 적이었다. 그에 비해 낙론은 달라진 상황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다른 학파와 정파의 주장에 귀를 열었고, 청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면 호락논쟁은 변화된 상황에 대한 원칙론자와 수정론자 사이의 인식과 대응의 차이였다.
권상하의 호는 ‘수암’ 또는 ‘한수재’였으나, 사람들은 그가 살았던 황강촌을 따 그를 ‘황강 선생’으로도 불렀다. 권상하의 제자들도 자연스레 ‘황강 선생의 문하’가 되었으니, 그 말을 줄이면 ‘강문江門’이 된다. 세간에서는 강문의 선비들 가운데 빼어난 여덟 명을 ‘강문팔학사’라고 불렀다. 권상하 문하의 빼어난 여덟 선비, 호락논쟁의 첫 번째 주역이 바로 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