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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6341680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16-12-15
책 소개
목차
펴내는 말
1장 외로움
1 외로움 12
2 인도 18
3 왜소증 31
4 출가 44
5 태백산 각화사 52
6 팔공산 동화사 62
7 행자 교육원 73
2장 새로운 시작
8 새로운 시작 86
9 봉숭아 학당 91
10 롭상최된 97
11 티베트불교의 그림자 107
12 땐진닥빠 115
3장 바람처럼
13 바람처럼 133
14 자퇴 137
15 번역 149
16 불교의 목적 154
17 근자감 160
4장 나의 스승님들
18 나의 스승님들 172
19 욕망은 괴롭다 179
20 어리석은 말과 지혜로운 말 186
21 농담이에요, 농담. 하하하! 191
저자소개
책속에서
1999년 4월, 각화사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시간이 늦어 어두웠다. 맨 앞 건물의 한 방문을 두드리자 젊은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출가하러 왔다고 하자 그 여자가 잠시 기다려보라며 누군가를 부르러 갔다. 잠시 후 한 노보살님이 나와서 나를 보더니 시간이 늦었으니 일단 자고 나서 아침에 주지 스님을 만나보라고 했다. 다음날 안내를 받아 주지 스님 방에 찾아가 인사하고 출가하러 왔다고 하자 주지 스님께서는 후원 일도 돕고 사원 청소도 좀 하면서 일단 며칠 있어 보라고 하셨다.
후원에는 첫날 본 노보살님 한 명, 5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억센 공양주 보살 한 명, 5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처사 한 명, 첫날 본 젊은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여섯 살짜리 딸이 있었다. 처사와 아이 엄마 모두 절에 온 지 얼마 안 됐다고 하였고, 아이 엄마는 기도를 하러 와 있다고 하였다. 스님들은 주지 스님을 비롯해 대여섯 명이 있으셨고, 절 주위 동서남북으로 암자가 하나씩 딸려 있었다. 그 중의 북암에 계시던 스님은 성격이 활달하여 내게 이것, 저것 많이 가르쳐 주시며 친절히 대해주셨다. 하루는 그 스님이 멋진 걸 보여주겠다며 북암에 함께 가보자 했다. 얼마를 걸어 올라가 북암의 널찍한 앞마당에 도착하였다. 마당에는 벚나무에서 떨어진 연분홍 꽃잎들로 어지럽게 수가 놓여 있다. 멋진 걸 보여주겠다던 게 바로 이것인 모양이었다.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나비 두 마리가 날아와 술래잡기하듯 서로 쫓고 쫓기며 주위를 맴돈다. 나비들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아무 걱정 없이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구나. 이 아름다운 곳에 저 행복한 나비들. 내 삶은 이토록 추하고 불행하기만 한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이, 박 행자! 사내대장부가 그렇게 감상이 많아서 쓰겠어?”
북암 스님이 놀리듯 소리친다.
“이리 와, 박 행자. 들어가서 차나 한잔 하자고.”
방에 들어가 스님이 끓여 주는 차를 마셨다. 끓인 물로 찻잔을 헹구고, 찻잎을 다기에 담아 끓는 물을 부어 우리고, 우린 물을 얼마 후 사발에 붓고, 사발의 차를 또 각자의 찻잔에 담아 마시는 그런 식의 전통차를 마셔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5. 태백산 각화사 중에서
2사라 학교의 티베트어 반 수업은 완전히 코미디 봉숭아 학당을 방불케 했다. 온갖 곳에서 굴러먹다 오신 독특한 사람들이 많았고, 선생님들은 모두 경험도 없고 언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전혀 모르는 분들이었다.
내가 몽골 친구들에게 항상 놀리는 주제가 하나 있는데, 바로 그들의 언어다. 몽고어에는 꼭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나서 “카아~” 하는 것 같은, 또는 가래침 뱉을 때 “카악~” 하는 듯한 발음이 무척 많이 들어간다. 대충 흉내 내보면 “카흑컥컥, 아흑컥컥” 이런 식이다. 덩치 크고 우락부락한 몽골 사내 둘이서 이렇게 “카흑컥컥, 아흑컥컥”거리고 대화를 하고 있으면 아주 잘 어울리긴 한다. 마치 “너 이 개새끼 죽여 버린다.”, “죽여 봐 씹새끼야.” 하고 으르렁거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만약 사랑하는 두 남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아마도 “개새끼야 어제 어떤 년 만났어?”, “이 쌍년이 어디서 의심증이야 뒈지려고.” 하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이 보일 것이다. 우리 반의 몽골 처녀 둘은 얌전하고 연약해 보이는 인상이라서 그들이 이런 거친 언어를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안 어울린다. 그래서 수업 중에 그들이 가끔 서로 마주 보고 “카흑컥컥, 아흑컥컥”거리면 반 전체가 폭소하곤 하였다.
‘비즈야’라는 몽골 스님은 몽골 말뿐만 아니라 티베트 말도 꼭 이렇게 아흑컥컥하는 식으로 발음을 한다. 그는 키가 크고 용가리 통뼈에 얼굴도 선이 굵어서 꼭 이제 막 전쟁터에서 거대한 도끼 휘두르다 온 전사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내가 놀리느라 “비즈야, 도끼 어디다 놨어? 도끼?” 하고 물으면 비즈야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서 “뭐헠? 도흑낔? 도흑끼갘 뭐허크얔?” 하는 식으로 힘들게, 힘들게 대꾸하는 것이었다.
-9. 봉숭아 학당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