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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철학 일반 > 교양 철학
· ISBN : 9791157063819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24-12-16
책 소개
목차
옮긴이 서문
들어가며
1장 왜 ‘정정하는 힘’이 필요한가
유럽의 노련함 | ‘공기’는 정정할 수 있는가 | 《공기의 연구》라는 공기 | 공기 비판이 공기가 된다 | 일본에서는 탈구축만이 유효하다 | 정정하지 않는 이노세 나오키 | ‘정정하지 못하는 토양’을 바꾼다 | 헌법 개정을 둘러싼 ‘정정하지 않는 세력’ | 보통 일본어로 독해 가능한 헌법을 | 비판을 받아들이는 힘 | ‘목소리를 내는 것’을 동조 압력으로 만들지 않는다 | 왜 리버럴파는 줄어들었는가 | 정정하는 힘이란 현실을 직시하는 힘 | 보수파도 바뀌어야 한다 | 진정한 쿨재팬 | 해외에서 사랑받은 로봇 애니메이션 | 서브컬처의 순수주의 | 나이 듦이란 정정해가는 것 | 정정하는 고집불통 아재 | ‘폴리티컬 코렉팅’이라고 해야 | 정정하는 힘은 기억하는 힘이기도 하다 | 논파력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 동영상이 가능하게 만든 것 | 과학은 인간의 활동 중에서 예외적인 것 | 인간은 약하다 | 해시태그 운동은 왜 안이한가 | 정정하려면 ‘외부’가 필요 | 중요한 것은 메시지의 장황함 | 콘텐츠의 가치란 무엇인가 | 이 장의 정리
2장 ‘사실 …였다’의 역동성
우리는 일상적으로 정정하고 있다 | 시행착오의 가치 | 대화는 끝나지 않는다 | 신체적인 피드백 | 크립키의 ‘콰스’ | 진상은 배제 불가 | 민주주의는 해킹에 대한 대처 | 테러는 용납하지 않는다 | 테러 대책과 정정의 철학은 양립한다 |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 규칙이 어느새 바뀐다 | 당사자는 정체성을 만들 수 없다 | 고유명사의 불가사의함 | ‘사실 …였다’의 힘 | 정정은 인생의 전환점에서 필요하다 | 리버럴파는 새로운 역사를 논할 필요가 있다 | 전진하려면 옛것을 회복해야 한다 | 정정하는 힘은 문과적 힘 | Chat GPT는 정정을 못한다? | 반증 가능성과 정정 가능성 | 매몰비용을 남긴다 | 특이점은 신비 사상이다 | 인간이 살아가는 법은 바뀌지 않는다 | 인간 사회의 본질은 AI로 바뀌지 않는다 | 어린이가 그린 그림의 가치 | ‘작가성’의 재발견 | 사람은 사람에게만 돈을 쓴다 | 겐론 카페의 ‘신들림’ | 정정하는 경험을 판다 | 이 장의 정리
3장 친밀한 ‘공공권’ 만들기
시사, 이론, 실존 | 정정하는 힘은 경영의 철학이다 | 사장 교체라는 ‘정정’ | 토크 이벤트를 발견하다 | 고유명사가 되어라 | 잉여 정보를 만든다 | 교환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 | ‘정정하는 사람들’을 모은다 | 신자가 모이는 것을 피한다 | 조직을 만든다 | 조직과 동원 | 루소의 연극 부정론 | ‘세르클’이 무너진다 | 폐쇄적/개방적이라는 대립은 무의미 | ‘귀염성’의 힘 | 교환 가능성과 정정 가능성 | 기술로 사람을 잇는 세계 |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 토크빌이 주목한 ‘떠들썩함’ | 일본의 잠재적 가능성 | 축제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 출판이 빛나던 시대 | 놀이를 일로 ‘정정’하기 | 이 장의 정리
4장 ‘소란스러운 나라’ 되찾기
일본 사상의 비판적 계승 | 일본 철학의 딜레마 | 작위와 자연의 대립을 극복하기 | 다양성은 0 아니면 1이 아니다 | 일본의 독자적인 다양성이란 | 히라타 아쓰타네의 포스트모던성 | 나쓰메 소세키의 시도 | 보수 사상을 리버럴의 관점에서 다시 읽기 | 환상을 만드는 힘 | 기억과 평화의 상극 | 시바 료타로의 업적 | 과거와 현재를 잇는 힘 | 메이지유신은 역사의 정정이었다 | 상징 천황제야말로 역사적? | “옛날부터 민주주의가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 일본은 민주주의의 무서움에 직면한 적이 없다 | 너무도 추상적인 좌우 대립 | 가해의 기억이 사라졌다 | 평화주의를 ‘정정’해야 한다 | 군비 증강과 평화 외교는 모순되지 않는다 | 평화는 소란스러움이다 | 평화란 정치가 결여된 것 | 탈정치적인 나라, 일본 | 모든 것이 정치화되고 말았다 | 자연을 작위한다 | 일본에서 인기 있는 루소 | 자연과 사회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 루소는 정정하는 사람이었다 | 극단적 주장이 공존하는 나라 | 이 장의 정리
나오며
책속에서
후회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잘못된 과거를 호출해 정정해가기 위한 첫걸음이니까. 호출한 과거를 반추하고 재해석해 미래의 자신과 연결지음으로써 내 정체성을 새로이 업데이트할 용기에 아즈마가 붙인 이름이 ‘정정하는 힘’이 아닐까 한다. 이는 과거의 자신을 올곧게 후회하고 이를 고쳐감으로써 미래의 나를 바꾸어가는 동력으로 삼는 힘인 것이다. 달리 말해 이상을 잊지 않고 현실을 사는 힘이요, 현실에 뿌리를 두고 이상을 품는 힘이다.― 〈옮긴이 서문〉 중에서
일본에는 이 변화 = 정정을 싫어하는 문화가 있다. 정치인은 사과하지 않는다. 관료도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번 세운 계획은 변경하지 않는다. 일본어로 ‘틀리다(誤る)’와 ‘사과하다(謝る)’는 모두 ‘아야마루’로 발음이 똑같은데, 이 둘은 원래 어원이 같다. 지금 일본인은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과도 하지 않는 것이다. ― 〈들어가며〉 중에서
정정하는 힘은 역사수정주의와는 다르다. 이 책은 결코 과거를 자기 입맛에 맞게 수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정정하는 힘은 과거를 기억하는 힘이고, 정정하기 위해 사죄하는 힘이다. 역사수정주의는 과거를 망각하기 때문에 정정도 하지 않고, 사죄도 하지 않는다. 이 차이는 확실하게 의식했으면 한다. ― 〈1장 왜 ‘정정하는 힘’이 필요한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