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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한국 문화/역사기행
· ISBN : 9791157068500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1-04-30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1장 공주와 한반도의 오래된 역사를 밝히다
‘잃어버린 역사’의 고리, 공주 석장리 유적
개미굴 주거생활의 비밀, 공주 장선리 유적
웅진 천도의 사연, 공주 수촌리 유적
수촌리 유물이 전하는 사랑 이야기
*흥미진진 역사 보따리: 발굴은 어떻게 진행하나요?
2장 공산성에서 다시 강국의 꿈을 꾸다
웅진백제의 심장, 공산성
왕궁은 정말 공산성 안에 있었을까?
백제의 최후를 함께한 공간, 공산성
언제나 희망의 장소, 공산성
*흥미진진 역사 보따리: 웅진백제 문화의 또 다른 이야기들
3장 무령왕, 백제의 중흥을 이끌다
경주에 비견할 백제의 역사문화지구, 공주 송산리 고분군
무덤은 왜 그 시대의 흔적을 품고 있을까?
무령왕릉 발굴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
무덤에 잠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아시아의 문화 가교 역할을 했던 백제
무령왕릉에는 왜 금으로 된 장신구가 많을까?
*흥미진진 역사 보따리: 삼국시대 무덤 양식 변천사
4장 웅진백제 사람들은 무엇을 믿었을까
왕실의 장례 의식을 치룬 장소, 정지산 유적
27개월이 걸린 무령왕비의 장례
대통사를 찾아서
유물로 남은 대통사
*흥미진진 역사 보따리: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백제 역사 연표
*참고자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만 해도 고고학계는 ‘한반도에는 구석기시대가 없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에 생겨난 ‘식민사관’이 영향을 미친 탓이다. 일제는 자신들의 역사보다 한반도의 역사가 앞선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사학자들은 한반도 내 구석기시대 유무에 관심이 없었고, 구석기시대를 입증할 유물이 나와도 애써 무시하려 했다. 실제로 1930년대에 함경북도 종성군 동관진(현 온성군 강안리)에서 구석기시대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일본 사학자들은 이런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그렇게 한반도의 장구한 역사를 없던 것으로 묻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안타까운 점은 광복 이후에도 식민사관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정 탓에 ‘한반도에는 구석기시대가 없다.’라는 주장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손보기 교수팀은 이처럼 학계가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발굴을 시도하려 했던 것이다.
_ <‘잃어버린 역사’의 고리, 공주 석장리 유적> 중에서
첫 번째 발굴에서부터 선사 인류의 생활상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흔적을 발견했다. 석장리 유적(사적 제334호)이 발견된 언덕은 무려 27개의 지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중 13개의 지층에서 유물을 수습했다. 그곳에서는 한반도 구석기시대 초기와 중기, 후기의 도구들이 골고루 발견되어 옛날 사람들이 해당 지역에서 오랫동안 자리 잡고 생활했음이 드러났다. 그럴 만한 것이 석장리 지역은 금강의 지류가 본류와 만나는 곳이어서 식수를 구하기 쉽고 물고기와 조개류를 양식으로 삼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게다가 금강의 거센 물살이 끊임없이 깎고 나른 토사가 시간 순서에 따라 쌓인 덕분에 구석기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퇴적 지층이 잘 발달되어 남아 있던 것도 발굴에 큰 도움이 됐다.
_ <‘잃어버린 역사’의 고리, 공주 석장리 유적> 중에서
이처럼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부부가 살았다는 점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반으로 가른 유리옥이 공주 수촌리 고분 중 두 곳에 각각 묻힌 채로 무려 1,500여 년 이상 보존됐다가 지난 2003년에 발견됐다. 물론 처음에는 무덤별로 발굴되었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기가 불가능했다. 먼저 발굴조사를 시행했던 무덤에서 시신의 머리맡에 놓인 부러진 유리옥을 발견했을 때는 이 옥이 대체 어떤 용도였는지, 무슨 이유로 머리맡에 놓았는지, 그리고 나머지 반쪽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른 무덤에서 나머지 반쪽을 찾으면서 의문은 싱겁게 풀렸다. 덩달아 두 개의 무덤이 부부의 무덤이라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밝혀졌다.
_ <수촌리 유물이 전하는 사랑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