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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57832941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3-06-3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 인생은 과연 무의미할까?
1. 카뮈_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2. 시지프스_원초적 무의미
3. 시지프스의 삶 vs 인간의 삶
4. 시지프스의 삶이 무의미한 이유는?
2 시지프스 구하기
1. 객관적 가치
2. 주관적 만족
3. 생명의 풍경_삶의 의미는 삶 자체일까?
4. 사라진다는 것
5. 영원한 권태
6. 본능의 시지프스
7. 욕구의 주체성
3 무엇이 삶의 의미인가?
1. 무의미와 관점의 문제
2. 냉동인간과 마크로풀로스
3. 벌레의 관점, 인간의 관점, 우주적 관점
4. 내부의 관점과 외부의 관점
5. 부조리에 대응하는 자세_아이러니
6. 아이러니의 전략
7. 천국과 지옥
4 더 커다란 의미를 위하여
1. 객관적 가치를 통한 주관적 만족
2. 변화와 성장
3. 시지프스 vs 라인홀트 메스너
4. 자기완성
5. 시지프스에게 사회가 있다면?
6. 우리 모두는 시지프스다_공동체
7. 자아실현에서 존재의 완성으로
5 의미와 무의미를 넘어서
1. 인생의 의미를 묻는 까닭은?
2. 의미의 세 단계
3. 의미의 의미
4. 한계의 초월
5. 의미와 가치
6. 의미의 북극_무한을 향해
7. 인생은 정말 무의미할까?
8. 무의미한 삶이란?
맺음말
후기
해제: 굿바이 카뮈, 굿바이 청춘-이현우(로쟈)
주
참고문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신들이 시지프스에게 같은 방식으로 형벌을 내리지만, 약간 생각을 바꿔서 ‘변태적으로’ 자비롭게도 그에게 어떤 이상하고도 비합리적인 충동, 즉 바위를 굴려 올리는 본능을 심어놓는다고 가정하자. 이것을 변태적이라고 보는 이유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바위를 굴려 올리는 일 자체는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며, 합리적 이유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지프스는 그러한 본능을 가지고 있고, 그 본능은 바위를 굴려 올림으로써만 충족되므로, 그는 바위를 산 위로 굴려 올리고, 바위가 굴러 내리자마자 쉬지도 않고 또 굴려 올린다. 그것도 기꺼이, 매우 즐거워하면서 말이다.”
이 덧칠한 그림에서 신들이 시지프스가 원하는 것을 형벌로 준 것인지, 아니면 형벌의 내용을 소원하도록 그의 머리를 살짝 돌게 만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 이제 더 이상 그의 삶은 예전처럼 저주받은 운명이라고 할 수 없다. 바위 굴리기는 기쁨의 원천이며, 그는 평생, 아니 영원히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꿈에도 바라는 지상천국의 모습이 아닐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초은하계 정부에서는 지구인이야 알든 말든 상관없이, 수백만 년 전부터 지구의 공전 궤도가 새로운 은하계 여행 도로 건설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지구를 철거한다는 계획을 공고하고 있었다 한다. 그리하여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를 기해 지구라는 행성과 그 위의 80억 인류와 생명체는 은하계에서 마치 개미집이 철거되듯 순식간에 소멸하게 된다. … 인간 삶이 무의미하고 부조리하다고 보는 허무주의의 관점은 더 큰 존재가 외부로부터 작은 것을 바라볼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때,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모습이 드러나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또한 일면적인시선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 삶을 부조리하고 허무하다고만 본다면 그것은 외부의 일면적 시선을 마치 전면적 시선인 양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앞에서 어떤 것을 내부의 시선으로 볼 때는 가치 있고 중요하게 나타나는 반면,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는 하찮고 무의미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음을 보았다. 그렇다면 실존주의자들이 의미를 중요한 문제로 보는 것은 의미를 내부자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일 수 있다. 반면 현자가 의미를 중요한 문제로 보지 않는 것은 의미를 외부의 시선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수 있는 것이다. 실존주의자들은 삶을 외부의 시선으로 보는 데까지는 성공하여 삶의 의미(또는 무의미)를 인식하는 데까지는 도달했지만, 삶의 의미의 외부로까지는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