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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노동문제
· ISBN : 9791157841561
· 쪽수 : 320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_잃어버린 아버지, 그리고 노동을 찾아서
1장_만리재 기슭 <성우이용원> 이남열傳
2장_낙산 자락 <일광세탁소> 김영필傳
3장_홍대 언저리 <옛 삼정전파사> 남상순傳
4장_인사동 표구 거리 <묵호당> 손용학傳
5장_모래내 너머 <형제대장간> 류상준傳
6장_서촌 <코리아나화점> 정연수傳
7장_응암오거리 <성원양복점> 임명규傳
8장_예지동 시계 골목 떠난 <경민사> 김동선傳
9장_중부경찰서 앞 <중앙카메라수리센터> 김학원傳
10장_석계역 연탄 공장 너머 오도엽의 내 아버지傳
에필로그_아버지의 카메라
참고 문헌
리뷰
책속에서
“연장을 제대로 갈아야 기술자가 되는 거야. 가위도 못 가는 놈이 무슨 이발을 해.” 이남열은 자신이 쓰는 가위를 갈지 못하는 이발사에게는 머리를 맡기지 말라고 한다. 선반을 배울 때 바이트 날을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작업 속도와 질이 달라졌다. 날이 제대로 갈리지 않으면 오차 범위 내의 정확한 형상을 만드는 데 애를 먹는다. 또 만들고자 하는 제품의 형상에 따라 날을 달리 갈 줄도 알아야 한다. 날카롭다고 날이 제대로 갈린 게 아니다. 제대로 갈린 날은 오래 작업을 해도 뭉개지지 않는다. 잘못 갈면 몇 번 쇠(재료)에 닿기만 해도 뭉개져 날만 갈다 시간을 다 보낸다. 자신이 직접 날을 갈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는 뭘까. 노동자가 노동 도구를 장악하고 명령하지 못하면 노동자 자신이 노동의 주체가 아닌 부품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 아닐까.
김영필의 다림질에는 서두름이 없다. 바지에 날카로운 주름을 잡을 때도 어깨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스팀을 뿜는 소리만 흘러나올 뿐 김영필은 있는 듯 없는 듯 가을 하늘에 한가히 떠도는 구름처럼 여유롭다. 망중한이라 해야 할까, 한중망이라 해야 할까. 구겨져 걸려 있던 세탁물이 어느덧 한 장씩 사라지고, 쫙 펴진 옷들이 옷걸이에 자리한다. 김영필은 노동의 시간에 쫓기거나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노동 시간을 지배하고 있다. 자신의 작업장에서 김영필은 절대자다.
“우리 어릴 때 이런 소리를 들었어. 어떤 나라에서는 대학 교수보다 보일러 기술자가 돈을 더 받는다고. (우리나라는)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 그렇게는 안 되어도 최소한 ‘동등한 인간적 대우’를 받도록 해야 하는 거야. 아직도 사회에서 그렇게 대접을 하니까 기능직이라는 자부심이 별로 없는 거야.” 남상순은 모가지가 부러진 도장을 몸에 지니고 있다. 자신이 직접 새긴 도장이다. 평생 자신의 인감으로 사용하고 있다. 장애를 입은 이가 가질 수 있는 직업은 도장 새기는 일밖에 없다 해서 잠깐 도장 새기는 일을 배웠다. 그때 새긴 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