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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22

역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22

주희 (지은이), 이충구, 김규선, 박승주, 이승용, 이승준, 이효재, 황봉덕 (옮긴이)
전통문화연구회
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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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22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역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22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고대사(선사시대~진한시대)
· ISBN : 9791157945498
· 쪽수 : 316쪽
· 출판일 : 2023-02-28

책 소개

세종은 ≪자치통감강목≫을 중시하여 100독을 하였으며, 역사에 뛰어난 대신大臣들과 학사學士들에게 명하여 이 책과 관련된 서적을 모아서 연구하고 주석하여 편찬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이다.

목차

東洋古典譯註叢書를 발간하면서
凡 例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제35권 상
진 선제陳宣帝 태건太建 4년(572)~진 선제 태건 9년(577) / 11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제35권 하
진 선제 태건 10년(578)~수 문제隋文帝 개황開皇 3년(583) / 102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제36권 상
수 문제 개황 4년(584)~ 수 문제 개황 10년(590) / 194

[附 錄]
1.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2≫ 연표 / 283
2.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2≫ 지도 / 297
3. 진陳나라 세계표 / 304
4. 북제北齊 세계표 / 304
5. 북주北周 세계표 / 305
6. 수隋나라 세계표 / 305
7.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2≫ 참고서목 / 306
8.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2≫ 도판목록 / 310
9.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총목차(QR) / 311
10.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해제(QR) / 311

저자소개

주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주자의 이름은 주희(朱熹, 1130∼1200)이며, 자는 원회(元晦) 또는 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 시호는 ‘문(文)’이어서 ‘주문공(朱文公)’이라 부른다. 원적은 흡주(翕州) 무원[婺源, 지금의 장시성(江西省) 우위안시]인데, 흡주가 남송 때 휘주(徽州)로 개칭되었고, 휘주(지금의 안후이성) 아래쪽에 신안강(新安江)이 흘러서 그의 본관을 ‘신안’이라고 한다. 주자는 공자와 맹자 이후로 중국 역대 최고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북송 5자[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소옹(邵雍)]의 유가 학문을 집대성하면서, 주돈이의 ‘태극(太極)’을 정호의 ‘천리(天理)’와 같은 것으로 보고, 정이의 ‘성즉리(性卽理)’ 사상을 발전시켜 성리학을 완성했다. 또 중국 유가 경전을 정리해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을 4서로, ≪시경(詩經)≫, ≪상서(尙書)≫, ≪주역(周易)≫, ≪예기(禮記)≫, ≪춘추(春秋)≫를 5경으로 분류했다. 19세 때 진사에 급제한 이후, 고종(高宗), 효종(孝宗), 광종(光宗), 영종(寧宗) 등 네 임금이 차례로 바뀌는 동안 실제로 벼슬을 한 기간은 지방 관리로 8년 여, 황제에게 조언과 강의를 하는 벼슬인 궁중 시강으로 46일, 도합 9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는 관직 생활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무이산과 부근의 숭안, 건양 등지에서 보냈다. 주자는 강경한 성격과 단호한 태도로 인해 여러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았는데, 결국 당시 실세인 한탁주(韓侂冑)의 의도적인 배척과 호굉이 작성하고 심계조(沈繼祖)가 올린 탄핵문에 의해 1196년 시강과 사당 관리직에서 해임되었으며, 1198년에는 ‘위학(僞學)’으로 내몰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일절 금지되었다. 물론 ‘위학’ 규정에 따라 벼슬도 하지 못했다. 그는 향년 71세의 나이로 1200년 음력 3월 9일에 건양 고정(孤亭) 마을의 창주정사(滄州精舍)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후인 1208년에 시호를 받았고, 정치적인 탄압 때문에 1221년이 되어서야 겨우 행장(行狀), 즉 전기가 나올 수 있었다. 그의 사위인 황간(黃榦, 1152∼1221)이 썼다. 1227년에는 ‘태사(太師)’라는 칭호를 받아 ‘신국공(信國公)’에 추봉(追封)되었으며, 이듬해 ‘휘국공(徽國公)’으로 개봉(改封)되었다. 그가 편찬한 책은 80여 종, 남아 있는 편지글은 2000여 편, 대화록은 140편에 달하며, 총 자수로는 2천만 자나 된다. 주요 저서로는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注)≫, ≪초사집주(楚辭集注)≫, ≪시집전(詩集傳)≫,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 등이 있으며, 그의 제자들이 편찬한 ≪주자어류(朱子語類)≫, ≪문공가례(文公家禮)≫, ≪주회암집(朱晦庵集)≫ 등이 있다. 그리고 여조겸과 공동 편찬한 ≪근사록(近思錄)≫은 주돈이(周敦頤), 정호(程顥), 정이(程頤), 장재(張載)의 글과 말에서 622개 항목을 가려 뽑아 14개의 주제별로 분류 정리한 책으로, 이후 성리학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문헌 중 하나가 되었다. 주자는 경학, 사학, 문학, 불학(佛學)뿐만 아니라 ‘이(理)’가 물질세계의 근원에 존재한다는 차원에서 심지어는 자연과학 서적까지도 고증을 거치고 훈고를 행해 올바른 주석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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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선 (옮긴이)    정보 더보기
겸산兼山 안병탁安秉柝, 송담松潭 이백순李栢淳, 용전龍田 김철희金喆熙 선생 사사師事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학사, 석사, 박사 선문대학교 교양학부 교수(現) 논문 및 역서 논문 <王士禎의 文學批評 연구> 등 역서 ≪歷代詩話≫ ≪秋史派의 글씨≫ 등 공역 ≪譯註 貞觀政要集論≫ ≪日省錄≫ ≪毅庵集≫ ≪秋史 金正喜 硏究≫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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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구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기 과천 출생 용전龍田 김철희金喆熙, 수송秀松 양대연梁大淵 선생先生 사사師事 중앙대학교 교육학과 국어국문학 부전공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석사, 박사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단국대학교 한중관계연구소 연구원(現) 전통문화연구회 강사(現) 논문 및 역서 논문 <經書諺解 硏究> <說文解字에 나타난 漢字字源 硏究> 등 역서 ≪東山先生奏議≫ ≪선비 安潚 日誌≫ ≪小學集註≫ ≪註解千字文≫ 등 공역 ≪國譯 治平要覽≫ ≪增補四禮便覽 譯註本≫ ≪譯註 國語≫ ≪譯註 貞觀政要集論≫ ≪爾雅注疏≫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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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주 (옮긴이)    정보 더보기
홍익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민족문화추진회 상임연구원 수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現) 전통문화연구회 연구위원(現) 논문 및 역서 역서 ≪譯註 揚子法言≫ 공역 ≪承政院日記≫ 仁祖 10․20․26․55․58․69집 등, ≪承政院日記≫ 英祖 22․43․63․67․76집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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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용 (옮긴이)    정보 더보기
영남대학교 한문교육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 석사, 박사 한국고전번역원 전문과정 수료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고전번역연구실 선임연구원(現) 논문 및 역서 <조선후기 江華學派 漢詩硏究-全州李氏 德泉君派 八匡을 중심으로> 공역 ≪譯註 貞觀政要集論≫, ≪國譯 通鑑節要增損校註Ⅰ≫, ≪自著實紀≫, ≪樂全堂集≫, ≪寒溪日記≫, ≪晝永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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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옮긴이)    정보 더보기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 절강대학 대학원 역사계 박사과정 수료 한국고전번역원 고전번역교육원 연구과정 수료 한국고전번역원 역사문헌번역위원(현) 전통문화연구회 연구원(현) [논문 및 역서] 논문 <濮議(1065-1066)와 臺諫 세력의 대두> 공역 ≪승정원일기(영조대)≫, ≪세종실록≫, ≪단종실록≫, ≪세조실록≫, ≪성종실록≫ ≪역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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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재 (옮긴이)    정보 더보기
동국대학교 사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동양사학 석사, 박사 수료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연수부 수료 전통문화연구회 연구원(현) [논문 및 역서] 논문 <唐太宗期 西北遊牧君長의 宿衛와 對外遠征 從軍>, <7세기 東突厥系 蕃將과 蕃兵의 활동 - 麗唐戰爭 시기 활동을 중심으로> 공역 ≪은대조례 참고자료집 1, 2≫, ≪역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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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북제北齊의 기둥이 쓰러지다
<곡률광斛律光은> 군영軍營을 어디에 세울지가 결정되지 않으면 끝내 군막軍幕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 하루 종일 앉지 않았고, 몸에서 갑옷과 투구를 벗지 않고서 늘 사졸士卒보다 앞장섰으며, 사졸이 죄를 지은 경우에는 큰 막대기로 등을 내리치기만 하고 함부로 죽인 적이 없었으니, 군사들이 모두 앞장서서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 하여 성년成年이 되어 군대에 몸담은 이후로 패배한 적이 없었다.……곡률광이 양풍당涼風堂에 이르자 유도지劉桃枝가 뒤에서 그를 가격하니, 쓰러지지 않고 돌아보며 말하기를 “유도지 너는 늘 이와 같은 일을 하지만, 나는 나라에 죄를 짓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유도지가 세 명의 힘센 무사와 함께 그를 때려죽이니, 피가 땅에 흘러 핏자국을 깎아내었으나 흔적이 끝내 없어지지 않았다.
-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제35권 상 태건太建 4년(554) 중에서


친히 군사를 이끌고 전장에서 나가 싸운 황제
북주北周 무제武帝는 성품이 절약하고 검소하여 항상 베로 만든 옷을 입었고 베로 만든 이불을 덮고 잤으며 후궁後宮은 10여 명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때에 이르러 조서詔書를 내려 <후궁은> 오직 비妃 2명과 세부世婦 3명, 어처御妻 3명만 두고 이외에는 모두 줄이라고 하였다. 군사를 움직일 때마다 직접 군대의 대열 속에 있고 산과 골짜기를 걸어서 건너니, 보통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장수와 병사를 어루만져 은덕을 베풀고, 밝게 살피고 과감하게 결단하였으며, 법을 아주 엄격하게 적용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장수와 병사들이 그의 위엄을 두려워하였으나 기꺼이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제35권 상 태건太建 9년(577) 중에서


북주北周의 정권을 찬탈하는 양견楊堅
양견楊堅은 선제宣帝의 가혹한 정치를 개혁하여 고쳐서 관대하게 하고, 옛날의 법률을 없애고 생략하여 ≪형서요제刑書要制≫를 만들어 주청하여 시행하였으며 몸소 근검절약을 실천하니, 조정 안팎의 사람들이 기뻐하였다. 양견이 밤에 태사중대부太史中大夫 유계재庾季才를 불러 묻기를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어떠한가?”라고 하니, 유계재가 대답하기를 “천도가 정밀하고 미묘하니 헤아리기가 어렵지만, 인사로 점을 쳐보니 조짐이 정해졌습니다.”라고 하였다. 독고부인獨孤夫人도 양견에게 말하기를 “호랑이의 등에 타고 있는 형세라 반드시 내려올 수가 없으니, 힘써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제35권 하 태건太建 12년(58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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