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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23

역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23

주희 (지은이), 오규근, 남현희, 이승준, 이효재 (옮긴이), 사정전
전통문화연구회
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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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23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역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23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고대사(선사시대~진한시대)
· ISBN : 9791157945672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23-12-30

책 소개

주희의 ≪자치통감강목≫은 성리학에 입각한 정통론적 입장에서 쓰인 강목체 사서로 조선시대 학자들의 역사에 대한 논의, 평가, 서술에 있어서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서거정은 훈의에 대해, 당시 중국의 여러 서책을 참조하였으며 글자의 음과 해석, 구두까지 상세히 갖추었는데, 이는 모두 세종대왕의 재량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며 그 정밀함은 고금에 없었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목차

동양고전역주총서를 발간하면서
범 례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제36권 중
수 문제隋文帝 개황開皇 11년(591)~수 문제 개황 20년(600) / 11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제36권 하
수 문제 인수仁壽 원년(601)~수 양제隋煬帝 대업大業 3년(607) / 87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제37권 상
수 양제 대업 4년(608)~ 수 양제 대업 10년(613) / 175

[부 록]
1.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3≫ 연표 / 255
2.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3≫ 지도 / 272
3. 수나라 세계표 / 280
4.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3≫ 참고서목 / 281
5.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3≫ 도판목록 / 286
6.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총목차(QR) / 288
7.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해제(QR) / 288

저자소개

주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주자의 이름은 주희(朱熹, 1130∼1200)이며, 자는 원회(元晦) 또는 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 시호는 ‘문(文)’이어서 ‘주문공(朱文公)’이라 부른다. 원적은 흡주(翕州) 무원[婺源, 지금의 장시성(江西省) 우위안시]인데, 흡주가 남송 때 휘주(徽州)로 개칭되었고, 휘주(지금의 안후이성) 아래쪽에 신안강(新安江)이 흘러서 그의 본관을 ‘신안’이라고 한다. 주자는 공자와 맹자 이후로 중국 역대 최고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북송 5자[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소옹(邵雍)]의 유가 학문을 집대성하면서, 주돈이의 ‘태극(太極)’을 정호의 ‘천리(天理)’와 같은 것으로 보고, 정이의 ‘성즉리(性卽理)’ 사상을 발전시켜 성리학을 완성했다. 또 중국 유가 경전을 정리해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을 4서로, ≪시경(詩經)≫, ≪상서(尙書)≫, ≪주역(周易)≫, ≪예기(禮記)≫, ≪춘추(春秋)≫를 5경으로 분류했다. 19세 때 진사에 급제한 이후, 고종(高宗), 효종(孝宗), 광종(光宗), 영종(寧宗) 등 네 임금이 차례로 바뀌는 동안 실제로 벼슬을 한 기간은 지방 관리로 8년 여, 황제에게 조언과 강의를 하는 벼슬인 궁중 시강으로 46일, 도합 9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는 관직 생활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무이산과 부근의 숭안, 건양 등지에서 보냈다. 주자는 강경한 성격과 단호한 태도로 인해 여러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았는데, 결국 당시 실세인 한탁주(韓侂冑)의 의도적인 배척과 호굉이 작성하고 심계조(沈繼祖)가 올린 탄핵문에 의해 1196년 시강과 사당 관리직에서 해임되었으며, 1198년에는 ‘위학(僞學)’으로 내몰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일절 금지되었다. 물론 ‘위학’ 규정에 따라 벼슬도 하지 못했다. 그는 향년 71세의 나이로 1200년 음력 3월 9일에 건양 고정(孤亭) 마을의 창주정사(滄州精舍)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후인 1208년에 시호를 받았고, 정치적인 탄압 때문에 1221년이 되어서야 겨우 행장(行狀), 즉 전기가 나올 수 있었다. 그의 사위인 황간(黃榦, 1152∼1221)이 썼다. 1227년에는 ‘태사(太師)’라는 칭호를 받아 ‘신국공(信國公)’에 추봉(追封)되었으며, 이듬해 ‘휘국공(徽國公)’으로 개봉(改封)되었다. 그가 편찬한 책은 80여 종, 남아 있는 편지글은 2000여 편, 대화록은 140편에 달하며, 총 자수로는 2천만 자나 된다. 주요 저서로는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注)≫, ≪초사집주(楚辭集注)≫, ≪시집전(詩集傳)≫,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 등이 있으며, 그의 제자들이 편찬한 ≪주자어류(朱子語類)≫, ≪문공가례(文公家禮)≫, ≪주회암집(朱晦庵集)≫ 등이 있다. 그리고 여조겸과 공동 편찬한 ≪근사록(近思錄)≫은 주돈이(周敦頤), 정호(程顥), 정이(程頤), 장재(張載)의 글과 말에서 622개 항목을 가려 뽑아 14개의 주제별로 분류 정리한 책으로, 이후 성리학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문헌 중 하나가 되었다. 주자는 경학, 사학, 문학, 불학(佛學)뿐만 아니라 ‘이(理)’가 물질세계의 근원에 존재한다는 차원에서 심지어는 자연과학 서적까지도 고증을 거치고 훈고를 행해 올바른 주석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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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희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 석사, 박사 전통문화연구회 번역연구관리실장(현) [논문 및 역서] 논문 <高麗後期 山水遊記 연구>, <服齋 奇遵의 <六十銘> 창작의도와 구성>, <服齋 奇遵의 <六十銘>에 대한 연구> 역저서 ≪일득록≫, ≪조선 선비, 일상의 사물들에게 말을 걸다≫, ≪우리말․한자 사전≫(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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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근 ()    정보 더보기
강원 평창 대화 출생 남산南山 정찬鄭鑽 선생, 조부 하서鳳西 선생, 가친 연청硏靑 선생에게 수학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졸업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강사 전통문화연구회 고전연수원 강사 [논문 및 역서] 역서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중종실록≫≪백호전서白湖全書≫, ≪순암집順庵集≫, ≪승정원일기≫(고종조高宗祖) 등 교감표점 ≪한국문집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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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옮긴이)    정보 더보기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 절강대학 대학원 역사계 박사과정 수료 한국고전번역원 고전번역교육원 연구과정 수료 한국고전번역원 역사문헌번역위원(현) 전통문화연구회 연구원(현) [논문 및 역서] 논문 <濮議(1065-1066)와 臺諫 세력의 대두> 공역 ≪승정원일기(영조대)≫, ≪세종실록≫, ≪단종실록≫, ≪세조실록≫, ≪성종실록≫ ≪역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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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재 (옮긴이)    정보 더보기
동국대학교 사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동양사학 석사, 박사 수료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연수부 수료 전통문화연구회 연구원(현) [논문 및 역서] 논문 <唐太宗期 西北遊牧君長의 宿衛와 對外遠征 從軍>, <7세기 東突厥系 蕃將과 蕃兵의 활동 - 麗唐戰爭 시기 활동을 중심으로> 공역 ≪은대조례 참고자료집 1, 2≫, ≪역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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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전 ()    정보 더보기
조선朝鮮 세종世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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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양광楊廣의 두 얼굴
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태자(양광)가 황제(수 문제)와 궁인들을 대면할 적에는 숨이 끊어질 듯이 애통해하여 마치 상사喪事의 슬픔을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방에 있을 때에는 마시고 먹고 말하고 웃는 것이 평소와 같았다. 또 아침마다 두 줌의 쌀을 올리게 하고 몰래 살진 고기와 포, 식해를 취하여 대통 속에 넣고 밀랍으로 입구를 막고 보자기로 싸서 들여오게 하였다.
-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제36권 상 인수仁壽 2년(602) 중에서


을지문덕의 활약
을지문덕乙支文德은 우문술의 군사들에게 굶주린 기색이 있음을 보고 일부러 그들을 지치게 하려고 싸울 때마다 번번이 달아나니 우문술이 하루 동안 일곱 번을 싸워 모두 이겼다. 마침내 살수薩水를 건너 평양성平壤城과 30리 거리를 두고서 산을 끼고 진영을 만들었는데, 을지문덕이 다시 사자를 파견하여 우문술에게 거짓으로 항복하며 “만약 군대를 철수한다면 응당 고원高元(영양왕嬰陽王)을 모시고 행재소에 가서 황제를 조현하겠소.” 하였다.
우문술이 사졸을 보았더니 지쳐서 다시 싸울 수 없겠는 데다가 평양은 지세가 험하고 수비가 견고하여 대번에 함락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군대를 돌려 살수에 이르러 군사들이 반쯤 강을 건넜을 즈음 고구려 군대가 뒤에서 공격하니, 신세웅이 전사하고 여러 군대가 모두 궤멸되어 장수와 사졸이 도망쳐 돌아갈 적에 하루 밤낮으로 450리를 행군하여 압록수에 이르렀다.
-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제37권 상 대업大業 8년(61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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