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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967086
· 쪽수 : 116쪽
· 출판일 : 2025-09-08
책 소개
19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권애숙 시인의 두 번째 시조집 『하루입디다』가 가히 시선 016으로 출간되었다. 권애숙의 시는 유쾌하고 매력적이며 재기발랄하다. 정형률을 기본으로 하는 시조에서 까슬거리는 봉합선 하나 없이 매끈하게 펼쳐지는 권애숙 시의 리듬과 운율과 호흡은, 언어의 나열로부터 발명되는 또 다른 체험적 감각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신명’과 ‘희열’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녀의 시는 단순한 흥이나 즐거움을 넘어, 한(恨)과 같은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고 삶의 활력을 되찾는 역동적인 상태로 시의 에너지를 증폭시킨다. 시가 삶의 경험을 해석하는 양식이라고 할 때, 이 시집은 ‘여전히’ 삶의 절정인 오늘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긍정적 해석의 한 양식이다. 새벽보다 붉은 황혼을 노래하는 절창이다.
목차
제1부
괄호를 풀다·13/한 끗·14/읽지 않는 구역·15/섬이 뜨는 날·16/뜨신 별·17/여기는 옥성·18/귀소의 노래·20/역광의 힘·21/느린 전보·22/신화가 오는 방향·23/계단을 내려서며·24/송년·25/야생화 가문·26/Together·27/신청곡 받습니다·28
제2부
사철 갑부·31/찔레꽃 이야기·32/게릴라 콘서트·33/구만산 뻐꾸기·34/아득하다, 달밤·35/기척을 쓰다가·36/곡신谷神의 편지·38/저물녘·39/6호가 지나갈 때·40/동백섬 한 바퀴·41/카페, 영도일보·42/천년의 언덕·43/저쪽·44/목요일·45/능금꽃·46
제3부
너머에서 왔어예·49/눈보라 드로잉·50/백야·51/다이아몬드 브리지·52/편도를 앓다·53/비린내가 익는 동안·54/여자꽃·55/먼동의 시간·56/토성지구·58/파도타기·59/비상구·60/플랜·61/꽃 짐·62/풋풋풋·63/아침·64
제4부
명화의 환속·67/break time·68/기다릴게요, 입춘·69/포대기를 샀어예·70/구석이 깊다·71/야외무대·72/무안한 시절·73/눈뜬 달·74/분홍을 읽다·75/장미 송·76/강, 꼬리가 길다·78/하구에 닿아·79/여가 거다, 하늘소·80/심사평·81/버스킹·82
제5부
이런 공고·85/감속운행지역·86/는개·87/나이테 청청·88/사인회·89/하루입디다·90/봄, 로그인·91/이런 류·92/칼랑코에 한 소쿠리·93/비 그친 뒤·94/손·96/별 볼 일 많다·97/하모니카 저녁·98/물목·99/철이 없다·100
해설 신상조(문학평론가)·101
저자소개
책속에서
[해설 엿보기]
가락의 자연스러움을 바탕으로 하는 『하루입디다』는 구르고 멈추고 다시 움직이는 동태성(動態性)으로 충만하다. 이러한 시의 에너지는 ‘신명(神明)’과 ‘희열(Bliss)’의 경계를 넘나든다. 신명은 한국인의 내면에 깊이 자리 잡은 독특한 정서이자 문화적 에너지로, 단순한 흥이나 즐거움을 넘어, 한(恨)과 같은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고 삶의 활력을 되찾는 역동적인 정신 상태를 의미한다. 이성적 논리를 초월하게 하는 신명은 개인적인 감정에서 시작되지만, 굿, 농악, 탈춤 등과 같은 공동체적 활동을 통해 집단 전체로 확산된다. ‘신바람’이라는 표현처럼, 한 사람이 일으킨 흥이 모두에게 전달되어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적, 문화적 현상으로 나아감은 한국적 신명의 특징이다. 이후에 살펴보겠지만 불특정 다수의 청자를 대상으로 말 건넴과 청유형의 화법이 잦은 권애숙의 시는 분명 공동체적 신명과 관련한다. 신명이 한국인이 가진 “문화적 기호 체계”라는 면에서 그의 시는 형식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전통을 탁월하게 계승한다.
권애숙 시의 밑바탕을 이루는 ‘주체의 고독’은 완전하고 자족적인 주체가 ‘홀로 서 있음’으로써 갖추게 된 자존의식으로, 자신이 진정으로 온전한 현재에 존재하고 있음을 아는 데서 오는 깊은 만족감이다. 이는 자기 정체성과 이타성이라는 대립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인 원리에서 후자 쪽으로 기우는 시의 양상으로 입증된다.
시인은 “바닥이란 이름마저 까마득한 관념”(「읽지 않는 구역」)이라며 아무도 읽지 않는 구역을 주목하거나, “꽃의 울음을 바다의 이면에서 듣”(「시인의 말」)기 위해 귀 기울인다. ‘꽃’과 ‘바다’는 섬이라는 매개물이 불가피한 이질적 대상들이다. 전자의 울음을, 그것과 공간을 함께할 수 없는 후자의 이면에서 듣는 일이란 앞서, 관념에 오염되지 않은 구역을 주목하는 행위와 통한다. 요컨대 타인에 대한 공감과 동감의 시적 가치를 실천하려는 노력은 말 건넴과 청유형 화법의 잦은 출현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함께 읽을 「곡신(谷神)의 편지」는 이타성 중에서도 모성을 본질로 하는 여성 신화적 모티프가 활달하게 운용된 작품으로, ‘식솔들’로 지칭하는 대상들에게 건네는 말 건넴의 화법이 두드러진다.
내 오늘 버선발로 골짝을 딛고 선다
적삼 앞섶 풀어놓고 작심하여 부르노니
어쩌다 여기까지 왔노 가깝거나 먼 식솔들아
피었다 지는 일도 얼었다 녹는 일도
건너편 뒤편마저 속절없이 꺾였더나
마라이, 미리 손 놓는 거 뒤척이는 계산 같은 거
물릴 곳 많겠다고 온몸에 단 젖꼭지들,
고픈 배 부르튼 발 뒤편까지 물려놓고
세상을 살려내는 건 엄마라는 장르잖아
골골마다 깊은 뿌리 마를 일은 없을 끼라
뒤집어쓴 어둠 털고 울음통 터뜨리며
새 생명 오시는 기척 새벽보다 더 붉어야지
― 「곡신(谷神)의 편지」 전문
인용 시는 시인이 즐겨 찾는 계곡의 형태와 노자의 도덕경 6장에서 착상이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노자는 비움을 설명하기 위해 계곡과 여성의 자궁을 비유로 든다. “谷神不死곡신불사 是謂玄牝시위현빈 玄牝之門 是謂天地根현빈지문 시위천지근 綿綿若存 用之不勤면면약존 용지불근” 즉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 이를 일러 현빈이라 한다. 현빈의 문은 천지의 근원으로, 계곡이나 풀무, 바퀴통 등과 같이 존재의 본질로써 도의 세계가 가지는 비움과 무한성이다.
반면 권애숙 시의 ‘곡신’은 텅 비어서 무한한 충만이 아니라 꽉 차 있음으로써 저절로 흘러넘쳐 빈 곳을 채우고, 마른 것을 살려내는 충만이다. “고픈 배 부르튼 발”을 가진 대상들을 대하는 곡신은 “버선발로 골짝을 딛고” 서는 데서 우선 그 태도의 자발성과 적극성이 드러난다. ‘버선발로 뛰쳐나온다’란 상대방을 매우 반갑게 맞이하거나, 어떤 소식에 놀라 급하게 달려 나갈 때 사용하는 관용적 표현이다. 이러한 화자이기에 그의 사랑과 연민은 “미리 손 놓는” 나약함이나 “뒤척이는 계산 같은” 손익계산과는 상관이 없다. “마라이”라는 방언은 ‘하지 말라’는 명령어이면서 이리저리 재는 태도를 혐오스러워하는 탄식이다. “가깝거나” 멂을 따지지 않고 저고리 “앞섶 풀어” 골고루 젖을 먹이는 곡신은 모성을 상징한다. “세상을 살려내는 건 엄마”다. “물릴 곳 많겠다고 온몸에 단 젖꼭지들”은 노자의 발상에서 차오르는 ‘물’의 상징성은 빌리되 자궁에서 유방으로의 신체 이동을 통해 흘러넘치는 동태적 현상을 새로이 부각한다. 노자의 곡신이 어떤 근원이나 토대를 연상시킨다면, 권애숙 시의 곡신은 품고 먹이고 자라게 하는 흐름과 운동 발생 이후의 이미지를 함의한다.
― 신상조(문학평론가)
저물녘을 부려놓고
장르별로 바쁩니다
두근두근 둘러앉아 궁금한 속 만집니다
깍지들 터지는 소리
튀어 오르는 알콩달콩
칸칸이 꽉 찬 향기
삶아 볼까 볶아 볼까
큰 괄호 작은 괄호 열었다 닫았다가
더듬어 읽고 또 읽어
박수 소리 터집니다
― 「괄호를 풀다」 전문
가던 길 문득 멈춰 도랑 길섶 들춰봤나
엎드려 물든 발밑 뜻밖을 펼쳐봤나
행운은 꺾이고 접힌
솔기 사이 안 살겠나
바닥에서 버틴 시각 기형으로 변종으로
덤인 듯 나투시어 핏물 다시 돌릴 거라
손발로 가닿은 우리
낮과 밤도 그럴 거라
보일 듯 안 보일 듯 넌지시 열어놓은
이쪽저쪽 앞쪽 뒤쪽 동색으로 겹친 감쪽
환호다 웃음보따리
한 이파리 한 끗 차이
― 「한 끗」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