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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한국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91159258015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3-07-28
책 소개
목차
범유진: 최애빵 구출 레시피
박하루: 학교의 흉터
정마리: 사굴기담
김영민: 서울에듀학원전설
그린레보: H골 여우 누이 설화 변이형에 관한 한 가지 해석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어릴 적의 기억이란 그런 법이다. 무언가 충격적인 장면은 폭죽처럼 터져 나오지만, 그 장면의 앞뒤는 어딘가에 파묻혀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르곤 한다. 그날이 그랬다. 떠오른 것은 화재 사건이 일어났던 전날, 평화로운 집 안의 풍경이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자신에게 책을 들이밀며 겁을 주는 작은 오빠의 얼굴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뉴스에서는 샌드위치 패널을 끼워 만든 가건물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했고, 패널이 얼마나 쉽게 불타는지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뉴스 속 불길이 어릴 적의 기억에 섞여 들었다. 노지연은 입을 한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날부터 노지연은 더 이상 ‘허실동의 아이’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우린 이걸 읽어야 돼. 여자는 희생양이야. 만일 이 이야기의 다른 판본이 있다면 왜 여자가 희생 돼야 하는지 구구절절 읊었을 거야. 그게 희생양 설화의 규칙이니까. 그렇지만 그게 본질이 아니야.
본질은, 희생양은 무고하다는 거야. 이 이야기의 불합리하고 개연성 없는 전개가 오히려 가장 중요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야.
도대체 어느 희생양이 진심으로 희생되는 것을 즐기겠어?
만일 자기가 희생되지 않고 다른 누구도 다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굳이 희생을 택하겠어?
이 호랑이는 심성이 매우 고운 호랑이야. 누가 더 다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자기가 해친 사람들을 치료하는 약을 알려줄 정도야. 그 결과 죽는 건 호랑이 하나뿐이야.
이 이야기는 착한 호랑이 하나가 일방적으로 희생되고 다른 모두가 행복해지는 매우 불쾌한 이야기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른다. 어차피 여자가 희생되는 결말이라면 어떤 이유를 갖다 대든 불합리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아예 적당히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대화 주제가 아무리 바뀌어도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 생각뿐이었다. 사라진 여자. 머릿속에서 그게 약 동희였다면, 하는 가정이 반복되었다. 나는 뒤섞이고 흐릿해진 지난 사건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첫 번째 사건의 실종자는 24세 대학생이었고, 두 번째 사건의 실종자는 고2였다. 둘 다 홀로 상가 건물에 들어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사람이 연기처럼 사라진 특이한 사건이었다.
특히 두 번째 사건은 피해자가 미성년자여서 경찰들이 초동 수사*에 열을 올렸으나, 별다른 흔적을 찾아내지 못해 주민들의 공분을 샀다.
허실동에서 특이한 사건이 벌어지면 늘 그래왔듯이, 허실동의 호사가들은 이 두 사건이 귀신 짓이 아니냐고 쑥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