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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사 일반
· ISBN : 9791159921216
· 쪽수 : 572쪽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1 농업과 음식
2 술, 차, 설탕, 담배
3 방직과 복장
4 건축과 가구
5 교통수단
6 야금
7 옥기.칠기.자기
8 문구, 인쇄, 악기
9 무장 도구
10 과학 기술
후기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감자의 보급은 중국의 식량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시켰다. 중국의 인구는 서한 때 이미 6천만에 도달했다. 그러나 명나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1억에 그쳤다가 청나라 때 급속도로 증가하여 건륭乾隆 때에 2억이, 청나라 말기에는 4억 인구가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신대륙에서 전해진 옥수수·감자 및 기타 고효율 작물의 역할은 상당했다. 북경대학에 다닐 때 장정량張政烺 선생은 늘 이 점을 강조했는데, 농담을 즐기는 사람들은 ‘유물사관唯物史觀’이라는 말에서 ‘物(물)’대신 감자를 뜻하는 ‘薯(서)’를 써서 ‘유서사관唯薯史觀’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서한 때는 이미 성진城鎭 지방에서 밀가루 떡을 파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한나라 초에 유방이 부친을 황궁으로 맞아들여 태상황으로 삼았는데, 이 노인은 “기쁘지 않고 처량한 표정”이었다. 노인의 취미는 “백정 소년들과 술 사오고 밀가루 떡 사고 투계하고 축구하며 노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중 생활이 너무 적막하다고 싫어했다. 《한서·선제기宣帝紀》에서 선제가 민간에 있을 때 밀가루 떡을 살 때마다 “파는 사람이 많이 주었다”라고 한 것도 모두 증거가 된다.
바로 당나라 때 피일휴皮日休가 《차중잡영茶中雜?·서序》에서 말한 대로 “육우陸羽 이전의 차 마시는 것을 말할 경우에는 섞어서 끓이는 것으로, 채소를 데쳐서 마시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당나라 때 양화楊華 역시 《선부경수록膳夫經手錄》에서 “진晉·송 이래 오 사람들은 잎을 채취하여 삶았으며, 이것이 명죽茗粥이다”라고 했다. 육우는 죽차에 매우 불만이었다. 그는 차를 끓일 때 “파·생강·대추·귤껍질·수유茱萸··박하 등으로 여러 번 끓여, 매끄럽게 하거나 거품을 없앤 것은 마치 도랑에 버린 물과 같았다”라고 보았다. 찻잎을 각종 보조 재료, 심지어 자극성 양념까지 넣어 같이 끓인 것을 보아 이 탕의 맛은 후세의 차의 맛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