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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희곡 > 외국희곡
· ISBN : 9791159922626
· 쪽수 : 160쪽
책 소개
책속에서
아마노: 말했잖아, 개념을 수집한다고. 근데, 덤으로 웃기는 일이 생기더라. 인간은 그걸 잃게 되나 봐.
사쿠라이: 그게 무슨 말이야?
아마노: 우린 대화를 하다가 모르는 개념이 나오면 질문을 해. 그래서 상대방이 그 개념을 머릿속에 정확하게 그려내는 순간, 그걸 학습하는 거거든. 굳이 말로 안 해도.
사쿠라이: 말로 안 해도?
아마노: 말로 하면 복잡하잖아. 그 개념을 이해하는 게 목적이니까, 이해 자체를 가져와버려. 그게 우리 능력이야.
사쿠라이: 그렇구나, 그런데 덤은 뭐야?
아마노: 우리가 가져오면, 상대방은 그 개념을 잃어버리나 봐, 완전히.
사쿠라이: 잃어버리면 어떻게 돼?
아마노: 그냥 조금 고장 나는 거야.
사쿠라이: 개념을 뺏는다. 그건 꽤 쓸모 있겠는데?
아마노: 당연하지. 어떤 아저씨가 자꾸 시간 없다, 시간 없다 그러길래 시험 삼아 시간 개념을 뺏었거든.
사쿠라이: 그래서? 어떻게 됐어?
아마노: 멈추더라. 지금은 천천히 가려나? 아, ‘천천히’도 시간인가?
아마노: 그럼 설명해봐, 왜 나랑 당신이 다른지, 더 근원적으로 설명해봐. 알기 쉽게. 마지막 부탁이야, 그것만 가르쳐주면 진짜로 갈게. 당신과 저, 그쪽과 이쪽, 너랑 나, 그 구별, 그 관계, 뭐냐고! 말 좀 해봐!
쿠루마다: …학생-
아마노: 진지하게 생각해!
쿠루마다: …
아마노: 됐다, 좋아. 그거, 가져갈게.
사쿠라이: 뭐 한 거야?
아마노: 나와 남을 구별하는 개념이랄까. 그렇지? (쿠루마다를 민다)
그 자리에 무릎 꿇는 쿠루마다. 눈물을 흘린다. 구역질이 날 것 같다.
아마노: 이건 효과가 있나 본데?
사쿠라이: 선생님? 선생님? (쿠루마다를 부축한다)
쿠루마다: 윽윽… (소리 내어 운다)
사쿠라이: 왜 우세요? 선생님?
아마노: 눈물만 나는 거야. 슬퍼서 그러는 거 아니야.
사쿠라이: 선생님!
쿠루마다: … 아아, 미안해요. 응? 아아, 뭐였더라? 음?
사쿠라이: 일어설 수 있겠어요?
아마노: 이제 이해가 됐을 텐데. …선생님, 아키라 병실로 가죠. 난 걔가 너무 걱정돼. (아첨을 하듯이)
쿠루마다: 아아아, 그렇지. 걱정돼. 가자.
신지: 나루미, 끝났어! 이제 다 끝났어!
나루미: …어?
신지: 끝났다. 끝났어, 고마워.
나루미: 아. (눈물을 닦는다) … 어? 하하. …나 뭘 잃은 거지?
신지: 사랑.
나루미: 알아 그건.
신지: 넌 단어만 알고 있는 거야. 이제 알았어. 너한테 제일 소중한 걸 빼앗았어.
나루미: …그렇구나. 괜찮아. 나 아주 말짱해. 하하…
나루미는 자신이 잃은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신지는 이제야 알게 된 사랑을, 나루미와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나루미: 어머. 왜 그래, 신지? (웃음) 버림받는 건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