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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한국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91163168249
· 쪽수 : 252쪽
· 출판일 : 2023-01-25
책 소개
목차
서윤빈 「폐허의 신사에 자리 잡은 인형의 유령」
청 예 「찬란한 죽음」
김정민 「공모자들」
유현윤 「어둠의 오선지, 빛의 음표」
김미영 「붉은 벽돌」
박계현 「자귀꽃」
저자소개
책속에서
“저는 언제…… 죽을 수 있나요?”
“그런데 신비 씨, 아직 20대인데 죽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상담사가 대뜸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이보세요, 선생님! 6개월을 기다렸다고요, 무려 180일이요!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호소했다.
“안 돼요! 저 진짜 그만 살고 싶어요. 사는 게 너무 고통이란 말이에요. 제발, 제발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하지만 상담사는 쉽게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정말로 죽음을 원하나요? ‘사는 게 힘들어요’랑 ‘죽고 싶어요’는 결코 동의어가 아니랍니다.”
“아녀요. 저 죽고 싶어요. 제발요…….”
“여기는 삶이 팍팍해서 찾아오는 한풀이 장소가 아니에요. 저희는 가치 있는 죽음만을 취급하는데 신비 씨의 죽음에 가치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지금 죽을 바에야 차라리 힘을 내서 열심히 살아보시는 게 어떨까요? 이대로 끝내기엔 젊음이 아깝습니다.”
“네?”
가치 있는 죽음? 내 죽음에는 가치조차 없어?
이런 미친 여자를 봤나.
자각하지 못한 순간, 눈물이 터져나왔다. 삶을 끝내려는 순간까지 모욕당하는 내 인생이 너무나 하찮았다. 여기까지 와서도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고작 말 몇 마디 나눠놓고서는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내 인생 겪어봤어? 직접 살아봤어? 죽고 싶다는 마음에는 기준이 없다. 누군가는 육체의 일부를 잃어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지만, 또 어떤 누군가는 망친 헤어스타일 하나로 인해 끝없는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삶은 모두 다르다.
- 「찬란한 죽음」 중에서
― 나는 과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사이언스 테크를 만들었어요. 환경오염? 인구 증가에 따른 음식 고갈. 그런 모든 걸 과학이 다 해결했어요. 여기에 살고 있는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것들로. 밖을 봐요.
박사는 베란다 앞의 커튼을 활짝 걷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랬다. 베란다 천장은 그물이 쳐져 있고 강한 햇빛이 내리쬐었다. 그 아래로 나무들이 정글처럼 가득했다.
― 아마, 당신 아버지가 어렸을 적엔 지구온난화다 뭐다 지구를 살려야 한단 말들을 귀에 딱지 앉듯 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저 하늘을 봐요. 오염됐나요? 우리가 만들어낸 거죠. 식물들이 공기를 정화시키고 핵융합이 더 나은 자원을 주고 있어요. 과학은 우리 삶에 빛이죠.
햇볕이 내 발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해결하지 못하는 게 있을 거예요. 질병도 그렇고, 인간의 마음도.
나의 질문에 박사는 목젖이 보이게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그녀가 오만하게 느껴졌다. 수리를 하며 만났던 과학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연구로 인해 관리부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 「자귀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