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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후기(영조~순종)
· ISBN : 9791166842757
· 쪽수 : 196쪽
· 출판일 : 2023-11-20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들어가는 말
1. 궁궐에서 하직하고, 한강나루에서 이별하다
궁궐에서, 관왕묘에서 사신의 임무를 되새기다
이별의 한강나루
2. 배 띄우기 전, 부산을 유람하다
동래와 부산진에서의 통신사 맞이, 그들의 ‘축제’
통신사선(通信使船)을 점검하다
부산진성(釜山鎭城)의 풍광과 일상
영가대에서의 해신제(海神祭)와 전별연(餞別宴)
부산 명소(名所) 유람
배를 띄운 후, 바람을 기다리며 보내는 일상
3. 일본 사행로의 첫 기착지, 쓰시마섬
부산에서 쓰시마섬 후추로의 항해
통신사들의 숙소 ‘세잔지[西山寺]’, 막부를 대신한 감찰기관 ‘이테이안[以酊庵]’
후추에서 행해지는 통신사 하선연(下船宴)
1811년 역지통신 접대를 전담한 쓰시마섬
4. 이키섬을 거쳐 일본 본섬 시모노세키에 이르다
11차 사행까지 필수 경로였던 이키섬[壹岐島], 배로 만들어 낸 육지
대한해협을 뒤로하고 바라본 아이노섬[藍島](현재 相島)의 등불
바닷길의 관문 시모노세키[下關](아카마가세키[赤間關])로
시모노세키의 숙소 아미다지[阿彌陀寺]와 안토쿠천황 사당
번주의 화려한 다옥(茶屋)에 가려진 가미노세키[上關]에서의 식수 조달
5. 일본의 바닷길, 세토나이카이를 가로지르다
세토나이카이의 첫 방문지, 가마가리[蒲刈]
명승절경 도모노우라[鞆浦](韜浦)
넓고 고요한 바다를 품은 우시마도[牛窓]
6. 바닷길과 육지길이 만나는 번화한 도시, 오사카
바닷길의 끝
오사카에서 갈아탄 화려한 누선
넓은 숙소와 번화한 도시, 오사카
7. 천황의 역사가 스민 교토를 밟다
요도우라에서 교토로 들어가는 길
천년 사찰을 숙박지로 삼고
조선인의 귀와 코로 만든 무덤
8. 무사들의 격전과 평온함의 시대를 동시에 보여 준 히코네와 오가키
망호루(望湖樓)에서 바라보는 비와호[琵琶湖]
세키가하라와 오가키성
9. 성신교린의 도시 나고야, 배로 다리를 잇다
배를 잇대어 만든 다리로 강을 건너고
번성한 거리와 아름다운 여성들
통신사와의 시문창화가 활발한 나고야
10. 통신사의 유묵이 있는 세이켄지를 품은 시즈오카
물살 센 오이강[大井川]을 건너고
아름다운 풍광과 통신사의 유묵이 남아 있는 세이켄지
험난한 사타[薩陲] 고개를 넘어 후지산을 바라보다
11. 하코네의 절경은 통신사들의 시가 되고
험준한 하코네 고개를 넘어 하코네 호숫가 숙소로
시로 승화된 하코네의 산수
12. 사행의 종착지, 에도에 입성하다
에도에 들어서 니혼바시를 거닐다
에도에서의 숙소, 히가시혼간지
에도성의 화려함, 국서전달 의례
일본의 연회 문화
13. ‘천하명승지 유람’으로 둔갑한 닛코 방문
닛코산[日光山] 유람, 억지유람이었을까?
닛코에서 지내는 제례
나오는 말
책속에서
사신단은 대체로 배를 띄우기 전에 부산에서 40-50여 일을 머물렀다. 이렇게 머무는 동안에는 대체로 본연의 업무를 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배가 출발하려면 해류나 바람 등 모든 조건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했기 때문에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을 부산에서 보내야 할 경우도 있었다. 이 기간에는 업무 외에 휴식을 하며 긴장감을 늦추기도 했지만, 부산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치를 찾아 돌아다니기도 했다.
세토나이카이에 있는 항로 중 조수를 타기 원활하고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이 도모노우라이다. 도모노우라에서는 통신사들이 평균 1박을 머물렀는데, 도모노우라로 들어갈 때는 밀물을 타고, 이곳에서 나올 때는 썰물을 이용해 배를 움직였다고 한다. 도모노우라는 통신사들에게 훌륭한 경치로 많이 알려진 곳이었다. 1617년, 오윤겸은 “세토나이카이에는 경치가 훌륭한 곳이 많이 있지만 도모노우라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라고 하였다. 1711년, 조태억도 “도모의 경치가 참으로 아름답다고 들었는데, 일본에 와서 쓰시마섬에서 관동까지 둘러본 중에 여기 경치가 가장 훌륭하다”라고 했다.
통신사들은 히코네를 지나면 이마스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세키가하라를 거쳐서 저녁 즈음에는 오가키에 도착했다. 세키가하라는 센고쿠시대를 마무리한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과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력이 격전을 벌인 장소이다. 통신사들도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유심히 보았던 곳 중 하나였다. … 이곳을 본 통신사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으로부터 승리를 거두고 조선에 화호를 청한 일에 대해 도리에 맞은 일이었다고 평가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