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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신화/종교학 > 종교학 > 종교학 일반
· ISBN : 9791166843334
· 쪽수 : 492쪽
· 출판일 : 2024-11-15
책 소개
목차
◎ 참고도서 약어표_26
◎ 일러두기_43
4책 - 제1부(제1장~제10장) IV. 남경 수도원(1597년 7월 20일부터 1600년 5월 19일까지)
제1장 마태오 리치가 상서 왕충명(王忠銘)의 도움으로 라자로 카타네오 신부와 함께 남경으로 돌아가게 된 것에 대해(1597년 7월 20일부터 1598년 7월 10일경까지) 50
제2장 신부들이 처음으로 북경 황궁에 가고, 마태오 리치가 어떻게 남경 총독의 부름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북경으로 가는 길에서 겪은 일에 대해(1598년 7월 10일경부터 1598년 9월 7일까지) 66제3장 신부들이 이번에는 북경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몰라 다시 남경으로 되돌아가게 된 일에 대해서(1598년 9월 8일부터 1598년 12월 5일까지) 88
제4장 라자로 카타네오 신부가 어떻게 짐을 가지고 임청(臨淸)에서 겨울을 났는지, 마태오 리치 신부가 소주와 남경에서 어떻게 거주하게 되었는지에 대해(1598년 12월 5일부터 1599년 2월까지) 110
제5장 마태오 리치가 어떻게 남경에서 수학 강의를 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공신력을 안겨 주고 열매를 가져다주었는지에 대해서(1599년 2월 6일 이후부터 1600년 5월 19일 이전까지) 135
제6장 남창의 많은 주요 인사들이 마태오 리치와 대화하고 싶어 한 것에 대해(1599년 초) 166
제7장 마태오 리치가 우상 종파의 한 유명한 승려와 거룩한 신앙에 관해 논한 것에 대해(1599년 초) 182
제8장 임청에서 겨울을 지낸 우리 형제들이 황제에게 줄 물건을 가지고 어떻게 남경에 도착하게 되었는지, 남경에서 어떻게 좋은 집을 매입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1599년 2월부터 6월 5일경까지) 197
제9장 라자로 카타네오 신부가 마카오에 어떻게 귀환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남창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점차 생겨나기 시작한 것에 대해서(1599년 6월 20일 무렵부터 1600년 3월경까지) 210
제10장 마태오 리치 신부가 디에고 판토하 신부와 두 명의 수사 종명인 페르난도와 에마누엘레 페레이라와 함께 어떻게 다시 북경으로 돌아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산동의 제녕에 도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해(1600년 3월부터 6월까지) 227
제2부(제11장~제20장) V. 북경 수도원(1601년 1월 21일부터 1602년 9월 21일까지)
제11장 우리가 임청(臨淸)과 천진위(天津衛)에서 겪은 일에 대해(1600년 6월부터 1601년 1월까지) 242
제12장 어떻게 중국의 황제가 신부들에게 진상품을 가지고 북경에 들어오라고 했는지, 첫 입성에서 일어난 일에 관해(1601년 1월부터 2월까지) 265
제13장 우리가 어떻게 주객사(主客司)의 지시를 받게 되었고, 외국 사절단들이 묵는 사이관(四夷館)에 들어가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거기에서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해(1601년 2월 25일경부터 5월 28일까지) 297
제14장 신부들이 직접 황제에게 탄원서를 쓰게 된 경위, 예부의 관리들이 신부들에게 사이관 밖에 거주하도록 허락하고 북경의 고위 인사들이 방문하여 위로하다(1601년 6월부터 12월까지) 324
제15장 우리가 북경에서 사귄 풍모강(馮慕岡)과 이아존(李我存), 이 두 인사와의 깊은 우정(1601년 6월부터 12월까지) 341
제16장 이 시기에 우상 종파가 겪은 커다란 수치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닥쳐오는 엄청난 고통으로부터 구해 주신 것에 대해(1602년부터 1604년 5월 25일까지) 369
제17장 그동안 소주(韶州) 수도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1599년 7월 초부터 1603년까지) 389
제18장 그동안 소주(韶州) 수도원에서 겪은 몇 가지 어려움에 대해(1599년부터 1603년까지) 418
제19장 남경 수도원의 발전과 서 바오로 박사의 개종에 대해(1600년 5월부터 1604년 2월까지) 450
제20장 마카오 콜레지움의 새 원장 발렌티노 카르발료 신부가 어떻게 마누엘 디아즈 신부를 중국 내륙으로 보내게 되었는지에 대해, 마태오 리치가 그의 편으로 선교 물품을 보내기 위해 그를 북경으로 부르게 된 것에 대해, 황궁에서 그리스도교가 순조롭게 출발하게 된 것에 대해(1600년 2월 1일부터 1602년 9월 21일까지) 470
책속에서
왕 상서는 우리의 일과 관련해서, 남경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면서, 신부들로부터 받은 선물이 많은데다 그들과의 약속을 물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 함께 북경으로 가기로 했다. 거기에서 친분이 있는 태감들을 통해 선물을 주고 황제를 알현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는 남경성의 여섯 상서의 축하를 모아 황제의 생일에 맞추어 북경으로 길을 재촉했다. 그의 짐과 선물은 하인 두 명과 함께 수로로 운반했다. 그는 신부들에게 자기 식구들과 함께 짐을 싣고 가는 배에 올라 수로로 갈 것을 제안했다. 그들이 탄 배는 매우 빠른 배로 가볍다고 해서 마선(馬船)이라고 불렀다. 가는 동안 배 안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큰 방이 있는 배를 빌렸다. 신부들과 자기 식구들이 넓게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조 총독은 친구 왕 상서가 잘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의 풍습에 따라 선물을 보냈는데, 거기에는 자기가 인쇄한 이 〈세계지도〉도 한 장 있었다. 왕 상서는 그것을 보고 마태오 신부가 보여 준 것과 너무도 비슷하여 즉시 사람을 보내 신부를 자기 관저로 불렀다. 그리고 다른 여러 문인 학자들에게 ‘지도’를 보여 주며 “보시오, 우리 중국에도 그대의 지도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세계의 전 지역에 대한 정보와 그 외의 것들에 대한 설명이 적힌 지도가 있소. 그러니 중국에서 그대가 이 분야의 첫 번째 저자는 아니오”라고 말했다. 신부는 ‘지도’를 보고 즉시 자신의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자기가 그 저자임을 밝히고, 모든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신부가 조경에 있을 때 세계지도를 인쇄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소주 수도원에는 론고바르도 신부가 혼자서 프란체스코 마르티네스[황명사(黃明沙)] 수사와 있었고, 다른 한두 마카오 출신의 젊은이들은 오랫동안 신부가 중국에 오지 않는 것을 보고 자기들 외에는 동반할 사람이 없다고 느꼈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또 남경과 북경 두 황실에서 우리가 얻은 공신력 덕분에 그곳[소주]에도 그리스도교가 발전할 수 있도록 관청에서 거룩한 복음을 선포하는 데 가장 필요한 권한을 우리에게 주었다. 이에 그 도시의 주요 인사 몇 사람이 그리스도교를 믿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매우 드문 경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