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생활풍속사
· ISBN : 9791166843723
· 쪽수 : 152쪽
· 출판일 : 2024-12-02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4
들어가는 말 10
1. 호조의 기본 구조 17
호조(戶曹) 19
호조의 업무 21
호조 사람들 24
호조 판서의 역할 29
2. 왕대별 호조 판서들 33
광해군의 호조 판서 35
인조의 호조 판서 44
효종의 호조 판서 56
현종의 호조 판서 61
숙종의 호조 판서 70
경종의 호조 판서 87
영조의 호조 판서 91
정조의 호조 판서 99
순조의 호조 판서 121
3. 호조 판서를 고민하게 만든 문제들 127
대동법의 시행과 호조 판서의 자리 129
청 사신의 접대와 호조의 대책 132
국장 재원의 마련과 호조 판서의 역할 135
호조와 평안감영의 줄다리기 137
나오는 말 148
주석 150
참고문헌 151
책속에서
호조가 평시에 수행하는 업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녹봉과 급료를 지급하는 일이었다. 이때 지출하는 경상비 규모는 대략 쌀 12만 석이었다. 우리가 호조 재정이 대략 10-12만 석이라고 할 때의 그 비용은 녹봉과 급료에 한정된 것이다. 국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관료들의 인건비를 모두 호조가 담당했기 때문에 재정적인 책임은 막중했으나, 전체 국가 재정의 경상비 규모만 보면 국가재정을 총괄하는 호조의 위상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호조의 재정 업무와 책임은 사실 경상비 이외의 지출에서 잘 나타났다.
과거시험이 치루어지면 항상 종이값이 문제가 되었다. 원임대신들은 시지(試紙)의 품질을 문제로 삼았으나 호조 판서 민진장은 종이값은 조정에서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다만 이번 과거에만 한하여 종이의 품질에 대하여 구애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과거 시험에 사용하는 종이는 매우 두꺼운데 그 제한을 풀어 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1689년 9월에는 평안도의 청북 지방과 함경도, 강원도에 한하여 한전(旱田)에 급재(給災)를 허락하도록 요청했다. 보통 급재는 수전에만 적용하는데, 이들 세 지역의 밭농사가 매우 흉년이었기 때문에 면세를 허락한 것이다.
박문수가 호조 판서가 된 것은 1748년(영조 24) 4월의 일이었다. 그러나 호조 판서로서 박문수의 관직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대간(臺諫)에서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는 대의를 저버리고 대론(大論)을 주장한 훈재(勳宰)들을 비난하였다고 하여 배척을 받았다. 박문수는 당론을 비호하거나 유현(儒賢)을 업신여긴다는 말을 평소 자주 듣고 있었다. 그가 관직에 제수되면 대간의 공척(攻斥)은 늘 있는 일로 여겨진 정도였다.
그는 호조 판서에 있으면서 매우 강력하게 일을 추진하였다. 1748년(영조 24) 9월, 그가 대간의 배척으로 면직되고 다시 호조 판서에 제수되었을 때 사관은 “박문수가 탁지에 부임하여 강력하게 일을 해 나가면서 심력(心力)이 있게 헛된 비용을 절감했으므로 백성들에게 약간의 칭예(稱譽)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