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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사상/사회사상사 > 민주주의
· ISBN : 9791166844508
· 쪽수 : 472쪽
· 출판일 : 2025-11-07
책 소개
오늘날, 위기의 민주주의를 다시 묻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가장 보편적이고 당연한 정치 체제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작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성찰하지 않는다. 저자 손병석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이 익숙함의 이면을 파헤치며 ‘최초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고대 아테네로 거슬러 올라가 탐구한다. 민주주의의 기원을 이해하는 일은 단순한 역사 공부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믿는 제도의 본질을 다시 묻는 사유의 여정이기도 하다.
민주주의가 완전한 제도가 아님을 가장 솔직하게 인정한 말로 흔히 인용되는 처칠의 문장은 이 책의 문제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체이지만, 역사상 존재했던 다른 형태의 정체보다는 더 나은 정체이다.” 비록 완벽한 정체는 아니지만 과거의 다른 여러 정체들보다는 믿을 수 있는 정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여전히 민주주의를 신뢰하며, 세계는 왜 그 가치를 포기하지 못하는지, 저자는 그 답을 ‘최초의 민주주의’, 즉 아테네의 실험과 사유 속에서 찾아 나선다.
스스로를 통치하는 시민,
참여의 정치와 자유의 경험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첫 번째 핵심적 원리는 ‘주권재민’, 즉 민주주의는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 아테네 시민들은 아테네의 정치 의사 결정 기구였던 민회와 시민 법정 그리고 평의회에서 공동체의 중대 사안을 직접 결정하고 사법 주권을 행사하였으며 행정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정치는 위임이나 대리의 영역이 아니라 삶의 실천이자 책임의 현장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원리가 오늘날 민주주의가 잃어버린 본질임을 지적한다. 투표 한 장으로 정치적 의무를 다했다고 믿는 현대의 시민과 달리, 아테네인은 ‘참여’ 그 자체를 민주주의의 조건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대의제 민주주의의 현실적인 효율성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시민 참여가 배제된 정치적 자유는 진정한 자유로 보기 어렵다. 아테네의 경우 정치 과정에서 모든 시민이 발언할 수 있었고, 누구도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자유롭지 않았다. 이러한 참여의 평등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근본이자 민주정의 정신적 기초다. 민주주의가 제도로만 남을 때, 실질적인 주권재민 원리는 사라지고 시민은 정치적 판단력을 행사하는 능동적 주체가 아니라 수동적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평등을 제도로 실현하다
추첨제와 정치적 책임의 문화
두 번째 핵심적 원리는 ‘추첨제’를 통한 정치적 평등의 실현이다. 부유한 집안이나 명문가 출신이 아니더라도 모든 시민에게 공직의 기회를 열어 둠으로써, 정치 권력을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동의 책무로 만들었다. 추첨제는 특정 집단의 권력 독점과 그로 인한 다수 시민의 정치적 권력 분배에서의 소외 문제를 방지하고, 권력을 수단으로 이익을 얻고자 하는 타락, 부패 문제를 차단하였다. 나아가 시민의 책임감과 공공선 지향 의식을 강화하였다. 저자는 추첨제가 정치 엘리트의 독점을 방지하고, 시민 각자가 공공의 문제를 자신의 일처럼 책임지게 만든 핵심 장치였다고 분석한다.
오늘날 우리는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지만, 선출된 권력은 종종 시민의 뜻과 괴리된다. 저자는 아테네의 추첨제가 현대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근본적 문제들, 즉 시민의 정치적 불신과 무관심, 대표성 부족, 정치 엘리트주의, 포퓰리즘, 과두제적 경향을 극복할 제도적 보완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대의제가 시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강화한다면, 아테네의 추첨제는 정반대의 효과를 낳았다. 정치란 곧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이라는 깨달음이 공동체를 지탱한 것이다.
말의 힘으로 세운 정치,
설득과 토론으로 만든 민주정의 정신
세 번째 핵심적 원리는 ‘말의 자유에 근거한 토론과 설득’이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폭력이나 명령이 아닌 ‘말’의 힘으로 운영되었다. 민회와 법정에서 시민들은 동등한 자격으로 발언했고, 공동의 결정을 위해 상대를 설득했다. 설득의 여신 ‘페이토(Peitho)’가 있을 정도로 설득하는 일은 아테네 정치의 핵심이었다. 저자는 설득이 무너질 때 정치적 양극화, 혐오, 독재적 정치가 판을 치게 된다고 말한다. 시민의 자발적 동의와 설득에 기반한 통치가 참된 민주주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설득보다 혐오와 분열이 앞서는 시대적 위기에 놓여 있다. 저자는 고대 아테네의 말의 자유와 토론 문화 그리고 설득을 통한 합의의 도출은 단순한 이상향이 아니라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가 재고해야 할 실질적 원리임을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대화의 기술’ 즉 서로를 설득하고 책임지는 시민적 성숙이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다시 사유하는 민주주의,
고대의 통찰로 오늘을 비추다
이 책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최초 민주주의의 실험과 도전, 그리고 이상』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하는 삶의 방식이다. 참여, 평등, 설득과 같은 축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저자는 아테네 시민들의 경험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민주주의의 핵심을 되찾고자 한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철학적 실천이다.
이 책은 고대 아테네의 정치 제도를 다루지만 그 논의의 초점은 철저히 현재에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역사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의 과제’로 인식한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 준 역사적 실험이었다. 그 강점과 한계는 오늘의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한다.
목차
책머리에
들어가며: ‘최초의 민주주의’ 아테네에서 배우는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
1장 민주주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1. 최초의 민주주의의 이념적 기원
1) 기원전 8세기와 7세기의 원시 민주주의
2.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태동과 발전: 세 번의 개혁과 한 번의 혁명
1) 솔론의 개혁
2)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3) 기원전 508/507년의 아테네 시민 혁명
4) 에피알테스 개혁
2장 아테네 참여 민주주의의 철학적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1. 자유와 평등
1) 자유(eleutheria)
2) 평등(to ison)
2. 다수 통치의 철학적 원리
1) 프로타고라스의 인간 본성 평등론
2) 아리스토텔레스의 다수의 집합적 지혜론
3장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는 시끄러운(thorybos) 소리의 정치인가?
1. 말의 자유로서의 이세고리아와 파레시아
2. 말의 자유와 관련된 아포리아와 그에 대한 답변
1) 이세고리아와 파레시아는 아테네 민주정에서만 인정되었는가?
2) 이세고리아와 파레시아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순기능으로 작용했는가?
3) 민회에서의 데모스의 토뤼보스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4장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는 책임 정치를 구현했는가?
1. 아테네 민주정과 책임 문화
2. 정치 기구와 책임성
1) 민회와 시민 법정 그리고 평의회
2) 세 정치 기구의 책임성 강화 조치와 그 의미
3. 책임성 구현을 위한 정치 제도 및 법적 조치
1) 도편추방법
2) 도키마시아와 에우튀나
3) 에이산겔리아
4) 그라페 파라노몬
5) 정치 제도 및 법적 조치의 책임 민주주의적 의미
5장 고대 아테네 민주정은 우중정체인가?
1. 데모스의 정치적 판단은 신뢰할 만한가?
1) 플라톤의 데모스의 정치적 판단 능력에 대한 부정적 견해
2) 비극과 시민 교육
2. 역사적 사건을 통해 본 데모스의 우중정치에 대한 비판적 평가
1) 아르기누사이 장군들 재판
2) 소크라테스 재판
6장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는 어떤 유형의 민주주의인가?
1. 세 가지 유형의 아테네 민주주의
1) 페리클레스 유형 민주주의
2) 알키비아데스 유형 민주주의
3) 니키아스 유형 민주주의
2. 좋은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나가며: 우리는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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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테네 민주주의가 어느 날 갑자기 어떤 한 천재나 혁명가인 고대 그리스인에 의해 발명되거나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 이것은 최초의 민주주의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초월적인 능력을 소유한 어떤 영웅이 하루아침에 완성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함을 의미한다. 최초의 민주주의는 기원전 6세기와 5세기, 아니 그 이전의 아테네 정체가 직면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또는 국제적인 차원의 다양한 ‘도전’에 대해 아테네 시민이 ‘응전’하는 역사적 실험과 지난(至難)한 진화적 과정을 거쳐 완성된 것으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테네 시민 혁명을 고려할 때 우리는 클레이스테네스의 데모스를 위한 민주주의적인 혁신적 개혁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데모스는 최초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단순히 수동적으로 방관자의 입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싸워 쟁취하였기 때문이다. (…) 특정의 지도자 없이 순수하게 아테네 시민의 집단적 실천에 의해 성공한 혁명이라는 점에서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보다 더 위대한 시민 혁명이라 말할 수 있다.
아테네인들은 민회와 법정에 참여하지 않는 행위는 사인의 행위로서 이것은 자신을 ‘타인의 의지’에 맡기는 것과 같다고 간주한다. 즉 민회와 법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행위는 자신의 운명을 타인의 활동에 맡기는 것으로서 마치 자기 자신을 노예로 간주하는 것과 같은 행위가 된다. 따라서 아테네 민주정은 이소노미아, 즉 법 앞의 평등 원리와 이세고리아, 즉 ‘동등하게 말할 수 있는 원리’에 따라 민회와 법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적 참정권을 동등하게 인정하는 정체이다.



















